초고속인터넷TV(IP TV), 광대역통합망(BcN) 등 통방융합 서비스가 동시다발로 등장하는 가운데 통신과 방송 두 진영의 사업자가 초고속인터넷 시장에서 충돌해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KT는 지난 2003년 방송용으로 임대한 관로와 전주를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가 초고속인터넷 사업에 사용했다는 이유로 소송을 제기, 지난 9월 30일 대법원으로부터 '승소' 판결을 받았다.
이에 따라 아름방송은 더 이상 KT의 통신시설을 이용해 초고속인터넷 사업을 할 수 없게 됐고, 자체적으로 관로와 전주를 설치해 초고속인터넷 사업을 해야한다.
이는 통신사업자 중심의 초고속인터넷 시장에서 방송사업자인 SO들의 영향력이 높아졌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 KT 역시 소송이라는 극단의 '카드'를 꺼내야할 만큼 SO들을 '위협적 존재'로 인식하고 있다는 얘기다.
◆ KT, "정당한 방어일 뿐"
KT는 아름방송과의 소송건에 대해 "당연한 조치"라는 입장이다.
KT는 현재 총 31개 SO에 방송을 목적으로 관로와 전주 등 통신시설을 임대하고 있다. KT에 따르면 그 중 아름방송을 제외한 9개 SO가 초고속인터넷 사업용으로 통신시설을 사용하고 있다.
KT는 이 SO들에 대해서도 소송 등 강경한 입장을 취할 예정이다. 현재 SO가 전주 하나당 KT에 지불하는 임대료는 월 180원. KT는 이 금액이 원가의 10%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KT는 "설사 SO들이 임대료를 더 지불하겠다고 해도 초고속통신용으로 관로와 전주를 임대할 생각은 전혀 없다"고 딱 잘라 말하고 있다.
이는 방송사업자인 SO를 초고속인터넷 경쟁자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름방송은 98년부터 KT로부터 이 통신시설을 임대해왔으며 KT는 2003년 아름방송이 방송 목적 외 초고속인터넷 사업용으로 시설을 사용한다는 이유로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2003년은 SO들의 초고속인터넷 시장 진출이 활발해지기 시작한 시기로 당시 SO들은 전체 초고속인터넷 시장의 약 4%를 차지하고 있었다.
초고속인터넷 총 가입자가 1천만명을 넘어서면서 시장의 정체기는 이미 예견됐던 일이다. 이처럼 포화된 시장에서 저가 정책으로 점유율을 높여가는 SO들을 KT가 그냥 두고볼 수만은 없었던 것.
또한 KT가 IP TV와 BcN 등 통방융합 서비스 추진 시 번번히 방송위와 방송사업자들의 반대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 대한 경고의 의미로도 풀이된다.
◆ SO, "독점적 지위 이용한 횡포"
SO들은 이번 사건에 대해 "KT가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 SO의 초고속인터넷 사업을 막는 횡포"라는 주장이다.
아름방송이 KT로부터 임대받은 관로와 전주 등을 초고속인터넷용으로 사용했다는 것은 개별기업간 계약상의 문제라고 칠 수 있지만 사실상 KT가 케이블TV 사업자들의 '초고속인터넷 사업 죽이기'를 하고 있다는 얘기다.
케이블TV 업계 관계자는 "KT가 공기업 시절 설치된 국가 인프라를 민간 기업이 됐다고 해서 설비 이용료를 '500%', '1천%'씩 올리거나 경쟁기업이라는 이유로 임대조차 거부하는 것은 횡포로 밖에 볼 수 없다"고 강조했다.
케이블TV 업계에 따르면 KT는 최근 관로 및 전주 임대료 현실화를 이유로 재계약 시 월 180원의 임대료를 월 887원으로 인상했다. 계약 초기에 비해 5배 가까이 인상된 것.
다른 관계자 역시 "결국 KT 설비를 임대해 쓰는 케이블TV 사업자들이 관로나 전주 설치를 위해 불필요한 중복투자를 해야하는 것은 사회적 자원낭비"라며 "소비자들 역시 번들 상품으로 싸게 구입할 수 있는 서비스를 따로 비싸게 구매하는 불편을 겪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소송으로 더 이상 KT의 관로와 전주를 초고속인터넷용으로 사용할 수 없게 된 아름방송은 300억원을 투자해 오는 11월말 관로 및 전주 설치를 완료할 계획이다. 아름방송은 관로와 전주 설치가 완료될때까지는 매일 1천만원씩 손해배상금을 물어야 한다.
아름방송 기획조정실 관계자는 "계약 당시 KT 관로 밖에 쓸 수 없던 상황이었고 불공정한 계약이라도 맺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며 "거래를 거절하거나 불공정한 계약을 강요한다면 이는 공정거래법 위반이며, 공정거래위원회에 KT 제소를 검토중'이라고 말했다.
◆ 통방대립, 사업자 갈등 수면 위로
통방융합을 둘러싼 통신업계와 방송업계의 대립은 그 동안 정통부와 방송위, 두 부처의 갈등이 주축이 되어 왔다.
특히 IP TV와 관련해 두 정책당국은 IP TV의 도입의 필요성에는 동의하면서도 사업자들의 이해관계와 부처힘겨루기 등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BcN 서비스의 경우 정통부가 4개 시범사업 컨소시엄 중 통신사업자가 주가 되는 3개의 컨소시엄은 방송사업자라는 지위를 얻지 못했다. 결국 지상파, 케이블 재전송을 하지 못해 방송 콘텐츠가 빠진 반쪽짜리 BcN 시범서비스를 실시 중이다.
반면 초고속인터넷 사업허가를 받은 케이블 진영은 공중파 방송을 비롯한 다양한 부가서비스를 선보이기도 했다.
정통부와 방송위는 "방송통신 융합서비스를 위해서는 서비스의 규정 등에서 협의할 필요성은 공감한다"면서도 융합을 관장할 방송통신위원회 설치를 위한 규제개편위원회 설치를 '대통령 직속이냐 총리실 산하로 두느냐'를 두고서도 한치의 양보가 없는 양상이다.
통방융합이 차세대 통신과 방송 서비스의 핵심으로 등장하면서 두 진영간의 갈등과 대립은 앞으로도 치열하게 전개될 전망이다.
/강호성기자 chaosing@inews24.com, 함정선기자 mint@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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