㊹ 유선망 2위 사업자 ‘파워콤’ 인수전…하나로 vs 데이콤 ‘격돌’ [김문기의 아이씨테크]


[다시 쓰는 이동통신 연대기] 8부. 3G 시대 개막

우리나라가 정보통신강국으로 성장하기 위한 첫발인 한국전기통신공사(KT), 한국데이터통신(LGU+), 한국이동통신서비스(SKT)가 설립된 지 꼬박 40여년이 흘렀습니다. 그간 이동통신 역시 비약적으로 성장해 슬로우 무버에서 패스트 팔로우로, 다시 글로벌 퍼스트 무버로 도약했습니다. 5G 시대 정보통신 주도권 싸움은 더 격렬해졌고, 다시 도전에 나서야할 절체절명의 시기를 맞이했습니다. 과거는 미래를 비추는 거울입니다. 부족하지만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이동통신 연대기를 다시 시작합니다. 재밌는 에피소드가 담긴 독자의 제보도 받습니다 [편집자주]
MSN메신저로 전화하는 모습 [사진=LG데이콤]
MSN메신저로 전화하는 모습 [사진=LG데이콤]

[아이뉴스24 김문기 기자] 2000년 6월 29일. 정보통신부는 통신시장을 뒤흔들 발표를 한다. 파워콤에 대한 동일인 지분 10% 제한규정을 철폐하기로 했다. 단순히 공기업 자회사의 민영화를 염두에 둔 조치이기는 하나 파장은 상당했다. 그도 그럴것이 파워콤은 유무선통합 3대 통신기업을 가기 위해 놓쳐서는 안될 중요한 요충지였다.

파워콤은 한국전력 자회사다. 본래 한국전력이 가진 통신사업군이었으나 2000년 1월 정부 공기업 구조조정 계획에 따라 자회사로 분리됐다. 한전이 보유한 광통신망과 케이블TV전송망을 그대로 들고 나왔다.

당시 파워콤의 유선망을 이용하는 주요 고객은 LG텔레콤을 비롯해 SK텔레콤, 한솔엠닷컴, 신세기통신, 데이콤, 하나로통신, 두루넷, 드림라인, 온세통신 등 한국통신과 한국통신프리텔을 제외한 대부분의 통신기업들이 망라돼 있다. 공기업으로 출발한 한국통신이 최다 유선망을 보유한 것과 마찬가지로 전국 곳곳의 전력을 제공한 한국전력의 통신망은 탄탄할 수밖에 없었다.

즉, 정보통신업계에서는 가장 매력적인 매물인 셈이다. 한국통신에 이은 2위 유선통신망사업자로 그만큼 파워콤의 향방은 통신업계에서 중요한 화두였다.

한국전력은 7월 24일 민영화 일환으로 파워콤 지분 20%에 대한 국내법인 대상 입찰을 실시했다. 한전의 목표가격보다 높은 가격을 적어내는 곳을 우선 낙찰자로 정했다. 목표가에 미치지 못하면 입찰은 무산된다.

입찰결과 SK텔레콤과 포항제철이 상한선인 5%를 각각 확보했다. LG와 삼성, 두루넷 등은 경쟁입찰에 참여하지 않고 눈치싸움을 이어갔다.

한전은 이어 9월 전체 지분의 30%를 매각하고자 했으나 정부부처간 이견이 발생하면서 막혔다. 정보통신부와 기획예산처, 산업자원부가 입찰 자격제한을 결정하지 못한 것. 당초 통신망이용업체나 국내외통신업체 또는 컨소시엄에 넘기자 했으나 정보통신부가 이를 기간통신사업자로 축약하자는 입장을 보였다. 이렇게 되면 한국통신을 제외한 SK텔레콤과 LG텔레콤이 유력시 된다. 반대로 포철의 참여는 막힌다.

포철은 단독 입찰이 아닌 컨소시엄 구성을 고려하면서 이같은 장애를 넘는다는 전략이었으나 입찰을 유보하겠다는 쪽으로 선회했다. 이에 따라 SK와 LG의 경쟁으로 좁혀졌다. 하지만 LG가 파워콤 인수전을 포기하는 대신 IMT-2000 선정에 집중하는 한편, LG전자를 분사 상장할 방침을 정하면서 무게추가 SK쪽으로 기울었다.

하지만 SK 역시 난색을 표했다. 파워콤의 주식이 너무나 높다는 것. 막대한 현금을 투입해 직접 경영할 필요성을 못 느끼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에 따라 사실상 3강 모두가 파워콤 인수에 등을 돌리게 됐다.

이같은 상황은 IMT-2000 사업자 선정 발표로 인해 반전됐다. 비동기 IMT-2000 사업권을 따낸 SK텔레콤으로서는 함께 선정된 한국통신을 견제하기 위해 유선망을 보강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됐다. 선정에 실패한 LG텔레콤 입장에서도 통신 3강 구도 형성을 위해서는 파워콤이 필요한 상태였다.

다만, SK나 LG 모두 섣불리 나서지 않았다. SK텔레콤은 파워콤 지분 5%만으로 충분하며, 이미 유선협력업체가 있기 때문에 무리한 인수전에 나설 필요가 없다는 점을 밝혔다. LG그룹 역시 IMT-2000 선정 실패로 인한 패닉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했다.

◆ 1차 격돌…하나로 ‘부상’ SK·LG ‘불참’

2001년 2월. 정보통신부는 대통령께 통해 국내 통신산업을 3개 그룹으로 개편하겠다는 안을 보고했다. 유무선정보통신통합 3강을 구성하겠다는 의도였다. 이 계획에는 이미 유무선 통합이 완성된 한국통신과 SK통신그룹이 자리하고 있었다.

남은 한자리는 한국통신과 SK텔레콤 등 2개 그룹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통신관련기업들을 모으기로 했다. 그 중심에는 포항제철과 LG텔레콤 중 하나를 결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당시만 해도 포철에 좀 더 기운 형국이었으나 인수 참여는 전체적으로 미미했다.

연내 파워콤 매각이 사실상 어려워지자 산자부는 5월 28일 정보통신부, 기획예산처, 한국전력 등과 만남을 갖고 기존 기간통신사업자뿐만 아니라 비통신사업자 또는 외국기업에게도 인수의 길을 열어줬다. 또한 정보통신부는 연내 민영화 허가조건을 완화해 산자부, 기획예산처와 함께 매각 시기를 결정하기로 했다.

한국전력은 6월 29일 파워콤 전략적 지분 30%에 대한 매각 일정을 발표했다. 8월 10일까지 투자의향서를 받고 9월말 매각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포철과 SK텔레콤, LG텔레콤 등 잠정인수자들을 위한 설명회도 개최했다.

그 사이 SK텔레콤이 사실상 유선망사업에 손을 떼겠다고 발표한다. 하나로통신 지분 6.12%를 전량 매각하는 한편, 수익중심의 재편을 통해 무선 서비스에 집중하겠다고 선언했다. 다만, 유선망에 대한 최소한의 전략적 관계를 가져가기 위해 파워콤 지분 5%는 유지하기로 했다. 이는 SK텔레콤이 유선망 사업에서 한국통신과 하나로통신과 경쟁하기 보다는 포털 사업에 집중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자연스럽게 파워콤 입찰에서 한발 물러난 셈이다.

5월 합의를 도출한 것으로 보였던 정통부와 산자부는 계속해서 힘겨루기를 이어갔다. 정보통신부는 유무선종합통신 3강 구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하나로통신과 LG텔레콤, 파워콤 등이 모여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산자부는 이와 관련없이 한전이 파워콤 매각을 예정대로 진행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통부가 3강 구도 속에 파워콤을 지속적으로 언급하자 당사자인 파워콤의 불만이 커졌다. 무엇보다 인수대상자가 하나로통신으로 모아지는 분위기였다. 파워콤은 하나로통신의 인수 의향만으로도 기업가치가 훼손되고 있다며 맹비난했다.

이와 달리 하나로통신은 파워콤 인수에 보다 역량을 집중시켰다. 초고속인터넷 4위 사업자인 드림라인을 인수하고, SK텔레콤으로부터 유선사업을 양도받는 한편, 두루넷과 LG에 컨소시엄 참여를 요청했다. 하나로통신의 드림라인 인수는 11월 13일 1대주주인 제일제당 지분 28.97%와 당시 이재현 제일제당 부회장 지분 3.21%를 인수하면서 마무리됐다.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파워콤의 목소리는 더 높아졌다. 서사현 파워콤 사장은 7월 20일 하나로통신과 시너지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못 박은 뒤, 오히려 파워콤에 통신 소매업을 허가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파워콤은 LG텔레콤과 두루넷, SK텔레콤 등을 대상으로 한 유선망도매제공사업자였기에 그들과 동일한 고객 대상 초고속인터넷사업을 영위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도였다. 소매업이 가능하다면 기업가치는 더 오를 수 있다는 게 파워콤의 설명이었다.

약속된 8월 10일. 파워콤의 새 주인 찾기가 시작됐다. 파워콤 지분 30%에 대한 입찰의향서를 제출한 곳은 하나로통신과 두루넷, 외국계 투자금융회사 등 총 5곳으로 알려졌다. 예상대로 SK텔레콤은 불참했다. LG텔레콤 역시 발을 뺐다. 한전측은 9월 1차 입찰 결과를 통보하기로 했다.

◆ 2차 격돌…자동 유찰로 마감

8월 25일 정보통신부가 정보통신정책심의회를 개최하면서 변수가 발생했다.

파워콤의 기업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는 경쟁역량을 끌어올릴 필요가 있었다. 그 중 하나가 사업영역 확대였다. 회선임대뿐만 아니라 한국통신, 하나로통신, 두루넷, 드림라인과 마찬가지로 통신소매업, 즉 소비자 대상 인터넷사업(B2C)을 영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를 결정할 심의회가 부가통신사업자와 별정통신사업자를 대상으로 한 회선임대를 허용하면서도 통신소매업 제공에 대해서는 추후에 논의하자는 유보적인 결론을 내린 것.

한전 측과 산자부는 업무영역을 확대하지 못하면 투자자들의 미래 불확실성이 증가하고 기업가치가 훼손될 수 있다고 주장했으나 정통부는 통신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섣불리 소매업에 길을 열어줘서는 안된다고 맞받아쳤다.

9월 7일. 결국 한국전력은 파워콤 민영화 일정 연기를 공식화했다. 입찰 참여의향서를 제출한 기업들에게도 입찰 일정을 잠정 중단하겠다고 통보했다. 이에 따라 두루넷 등은 입찰재개를 촉구하면서 불만을 드러냈다.

10월 29일. 정보통신부는 다시 한번 정보통신정책심의회를 열어 파워콤의 역무조정에 대한 안건을 심의했다. 기존과 크게 달라진 내용은 없으나 민영화에 따라 파워콤 지분의 51% 이상이 민간에 매각되면 통신소매업을 허용하겠다는 조건이 달렸다. 산자부와 합의를 이룬 셈이다.

이에 따라 입찰 절차가 재개됐다. 초반 지연되기는 했으나 실사도 순조롭게 마쳤다. 이해관계가 얽히면서 다툼이 있기는 했으나 하나로통신과 두루넷이 막판 합의에 이르면서 신한맥쿼리금융자문 등과 함께 3사 단일 컨소시엄이 구성됐다. 이에 따라 하나로-두루넷 컨소시엄과 미국 뉴브리지캐피탈, 호주 연기금 CDP 등 3개 사업자로 축약됐다.

2002년 2월 21일 드디어 파워콤 지분매각 입찰이 실시됐다. 입찰가격과 사업계획, 자금조달 계획 등을 종합 평가해 28일 우선협상 대상자를 선정하기로 했다.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3월말에는 최종계약까지 완료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순탄하게 흘러가지 않았다. 당초 3파전이 될 것으로 예상됐으나 하나로-두루넷 연합만 단독 입찰에 응했다. 절차상 1곳만 입찰하게 되면 자동 유찰된다. 타 컨소시엄의 경우 한전이 제시한 매각가격이 맞지 않아 발을 뺀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시 민영화의 꿈은 뒤로 미뤄졌다.

◆ 3차 격돌…데이콤 참전

파워콤 유찰과 관계없이 하나로통신과 두루넷 합병이 점차 가시화됐다. 두루넷 최대 주주로 소프트뱅크가 앉으면서 협상 창구도 단일화됐다. 하나로통신은 이미 초고속인터넷 5위 사업자 드림라인을 인수했고, 3위 사업자인 두루넷과 합병되면 1위 사업자인 KT에 맞서 2강 체제를 구축할 수 있다. 게다가 파워콤까지 합세한다면 유무선종합통신사업자 3강에도 진입할 수 있게 된다.

이 상황을 면밀하게 살펴보고 있던 기업은 LG그룹이었다. 동기식 IMT-2000 사업을 함께 따낸 LG그룹은 자칫하면 하나로통신에 밀려 3강 사이에서 제외될 수 있었다. 이에 따라 데이콤의 파워콤 인수가 수면 위로 부상했다. 데이콤을 통한 파워콤 인수가 추후 LG텔레콤 합병으로 이어진다면 이 역시 종합통신사 3강에 한발 더 나아갈 수 있게 되기 때문. 게다가 파워콤의 최대 고객이 다름아닌 LG텔레콤이었기에 그에 따른 시너지 효과도 톡톡히 누릴 수 있었다.

3월 29일 한국전력은 3차 입찰공고를 내고 다시 매각 작업에 돌입했다. 4월 11일 입찰의향서 제출일이 밝자 예상 외의 접수 상황이 발생했다. 합병을 추진 중이었던 하나로통신과 두루넷이 잠시 결별을 선언하고 각자 의향서를 제출했다. 신한맥쿼리투자금융도 마찬가지다. 3개사가 입찰의향서를 제출하기는 했으나 데이콤의 움직임은 없었다.

마감일인 4월 17일. 장막 뒤에 숨었던 데이콤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이날 캐나다 연기금 CDP와 소프트뱅크아시아와 공동으로 컨소시엄을 구성해 파워콤 입찰에 나서겠다고 선언했다. LG계열인 데이콤은 단숨에 가장 강력한 낙찰자로 떠올랐다.

업계는 LG그룹의 위기 의식이 작용했을 것이라 분석했다. SK텔레콤과 KT에 대적하기에는 열세에 놓여 있는게 사실이었다. 부동의 이동통신 1위 사업자인 SK텔레콤과 유무선을 고루 갖춘 최대 인프라 보유자 KT, KTF에 맞선 LG그룹은 이동통신 3위인 LG텔레콤과 시외, 국제전화 사업자 데이콤 이외에는 마땅히 맞수라 부를 게 없었다. 파워콤마저 뺏긴다면 통신사업에서 퇴출될 수 있었다. 반대로 파워콤을 인수하게 되면 유선사업자인 데이콤과의 시너지뿐만 아니라 무선 LG텔레콤과의 융합으로 유무선에서 기반을 닦을 수 있게 된다.

마침내 6월 21일 파워콤 3차 지분매각 입찰이 시작됐다. 결과적으로 하나로와 두루넷, 데이콤이 참여했다. 두루넷의 경우 전략적 입찰이었기 때문에 사실상 하나로통신과 데이콤의 2파전 양상을 보였다.

하지만 이번에도 주인을 찾지 못했다. 표면적으로는 가격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파워콤 자체가 인수대상이었기에 시간이 흐를수록 가치는 떨어졌다. 그에 비해 한전이 바라는 매각가격이 있었고, 시장이 원하는 가격이 있었기에 서로 맞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입찰기업이 인수 후에도 한시적으로 적자 리스크를 한전이 감내하는 조건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유찰시킬 수밖에 없었다고 분석했다.

표면적 이유와 달리 내면적 이유로는 한전과 산자부, 정통부의 갈등이 작용했을 것이라 예상했다. 한전은 매각을 결정한 2000년 파워콤의 주가를 계산해 매각을 바랐지만, 산자부는 공기업 민영화에 따른 성과를 얻어야 했기 때문에 접근하는 관점이 달랐다. 정통부도 통신산업 구조조정이 궁극적 목표이기 때문에 분산되기보다는 하나로통신과 LG그룹이 그랜드 컨소시엄을 결성해 종합통신사 3강의 한 축이 되기를 바랐다. 서로가 바라보는 목표가 달라 합의안을 도출하기 쉽지 않았다.

◆ KT 완전 민영화…SK텔레콤 깜짝쇼

2002년 5월 18일. 통신시장에 깜짝 놀랄 일이 발생한다.

KT 완전 민영화를 위해 진행된 지분공모에서 SK가 전략적 투자자에게 배정된 5% 지분을 모두 청약하는 상황이 발생한 것. 이 때문에 1%를 청약한 삼성과 LG가 배정순위에서 밀려 각각 0, 1% 이하의 지분만을 가져갈 수 있게 됐다. SK가 그간 KT 입찰에 소극적인 면모를 보였던 만큼 당사자뿐만 아니라 시장도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당초 삼성과 LG, SK가 비슷한 비율로 KT 지분을 가져가면서 균형을 맞출 것으로 기대했던 정보통신부 역시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 소위 SK의 일방적 승리로 끝났다. KT 민영화 작업은 15년간 이어졌으며, 사실상 완전 민영화를 이룰 수 있는 마지막 단추에서 SK가 최대 주주로 부상하게 된 셈이다. SK텔레콤의 KT 지분은 당시 9.55%였다. 교환사채 인수분까지 더하면 총 11.34%다.

정보통신부는 즉각 SK텔레콤 견제에 나섰다. 양승택 정통부 장관은 SK텔레콤이 2대 주주로 지위를 내려야 할 것이라며 날선 압박을 가했다. 다만, SK텔레콤이 법적 테두리 내에서 입찰에 성공한만큼 자본주의 시장에 반하는 정부 행위라는 비판을 감내해야 했다. 즉, 정부의 KT 민영화 정책 실패라는 오명을 쓸 수 있었다. 재정경제부 등 타 부처에서도 시장 개입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청와대가 나서 이번 지분 인수 백지화를 주장하고 나섰다. 안타깝게도 임기말이어서 제대로된 힘을 받지 못했다. 정통부는 하릴없이 사실상 백기를 들었다. 7월 3일 양승택 장관은 기자간담회를 통해 SK텔레콤이 KT에 대한 경영권을 행사하지 않는다면 단순 재무적 투자로 간주하겠다는 의미의 발언을 이어갔다. 시장은 정통부가 그간 주장했던 바를 1개월만에 뒤집은 것에 대해 따가운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KT는 8월 20일 주주총회를 통해 공식적으로 완전 민영화됐다. 기존 자리를 지켰던 이상철 KT 사장은 정보통신부 장관에 올라섰다. 민영화된 KT의 첫 대표는 이용경 사장이 선임됐다.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이상적 회사를 구축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당시 미국 버클리대학에서 공학박사를 취득한 이 사장을 두고 ‘전형적인 테크노 CEO’라고 평하기도 했다. 아울러 정관변경을 통해 지분매각에 따라 최종 9.95%를 보유한 SK텔레콤의 경영권 침해를 방지할 수 있도록 했다.

SK텔레콤은 KT뿐만 아니라 두루넷의 전용회선 사업부문을 SK글로벌을 통해 인수하는 한편, 인터넷포털사업자인 라이코스코리아를 인수하기도 했다. 유선망 사업에 대해서는 선을 그었기는 했으나 그 위를 뛰노는 유선서비스사업만은 놓지 않겠다는 의도였다.

이같은 결정은 파워콤 인수전에도 영향을 미쳤다. 하나로통신과 두루넷의 합병은 사실상 물건너갔기 때문. 이와 관련해 하나로통신과 LG그룹의 파워콤 인수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게 됐다.

◆ 4차 격돌…데이콤 품으로

2002년 7월 30일 시작해 9월 4일 파워콤 4차 지분매각 입찰이 마감됐다. 두루넷이 빠지고 하나로통신과 데이콤에 이어 새롭게 온세통신이 합류했다. 결과적으로 두루넷과 연합전선을 꾸린 데이콤과 하나로통신, 온세통신 등 3개 컨소시엄이 경쟁에 나섰다.

9월 7일 우선협상대상자로 하나로통신이 선정됐다. 당연하게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던 LG그룹은 긴급대안 마련에 골몰했다. 당시 데이콤은 하나로통신의 자금력에 의문이 있어 반드시 다시 기회가 올 것이라 믿었다. 외부적으로는 하나로통신 지분 추가 확보 여부를 통해 압박하는 한편, 우선협상 결렬시 언제든지 나설 수 있도록 제반작업 준비에 돌입했다.

데이콤의 예상대로 기회는 다시 찾아왔다. 당초 우선협상기일인 10월 19일까지 협상이 이뤄지지 않았다. 이에 따라 차순위였던 데이콤에게도 협상 기회가 부여됐다. 이에 따라 파워콤 지분 매각은 하나로통신과 데이콤이 동시 추진하는 쪽으로 결정됐다. 두 기업 모두 자금 마련에 총력을 기울였다.

11월 29일. 드디어 파워콤 인수 결정의 날이 밝았다. 한국통신에 이은 2위 유선망 사업자를 품는다는 것은 곧 이어 발생할 종합통신 3강에 진입하는 관문을 통과했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결과적으로 그 문을 연 쪽은 데이콤이었다.

데이콤은 파워콤 지분 45.5%를 8천190억원에 확보했다. 나머지 8.5%는 추가 인수 선택권을 부여했다. 이로써 3년만에 파워콤은 주인을 찾았다. LG그룹으로서는 LG텔레콤과 데이콤, 파워콤으로 이어지는 유무선 인프라를 갖출 수 있게 됐다. 한전과 데이콤은 이틀날인 30일 지분매각에 대한 계약을 체결했다.

파워콤 인수에 실패한 하나로통신은 독자 생존을 위한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한전은 파워콤 매각에 따라 노조 달래기에 나섰다. 사실상 무리하게 인수를 추진한 데이콤 역시 내부 경각심 고취에 골몰했다.

12월 16일 인수대금을 납입하고 주식인도 절차를 마무리한 데이콤은 파워콤을 정식으로 품에 안았다. 하나로통신은 초고속인터넷 2위 사업자 위치를 공고히 하기 위해 기존에 추진했던 두루넷 인수를 추진해 12월 30일 확정했다.

파워콤은 2003년 1월 20일 임시주주총회를 개최하고 박운서 데이콤 회장을 파워콤 대표이사로 선임했다. 이로써 박 회장은 두 회사를 겸임하게 됐다.

파워콤을 안은 LG그룹은 내친김에 하나로통신에 대한 야욕을 보였다. 이로 인해 하나로통신을 이끈 신윤식 회장이 자진 사퇴하기도 했다. LG그룹의 하나로통신 지분은 15.92%로 1대 주주였기에 가능한 시나리오였으나 하나로통신의 반대가 만만치 않았다. 또한 경쟁사의 견제로 인해 결론적으로 무산됐다.

▶ 다시쓰는 이동통신 연대기 목차

1편. 삐삐·카폰 이동통신을 깨우다

① '삐삐' 무선호출기(上)…청약 가입했던 시절

② '삐삐' 무선호출기(中)…‘삐삐인생' 그래도 좋다

③ '삐삐' 무선호출기(下)…’012 vs 015’ 경합과 몰락

④ '카폰' 자동차다이얼전화(上)…"나, 이런 사람이야!"

⑤ ‘카폰’ 자동차다이얼전화(下)…’쌍안테나' 역사 속으로

2편. 1세대 통신(1G)

⑥ 삼통사 비긴즈

⑦ 삼통사 경쟁의 서막

⑧ 이동전화 첫 상용화, ‘호돌이’의 추억

➈ 이동통신 100만 가입자 시대 열렸다

⑩ 100년 통신독점 깨지다…'한국통신 vs 데이콤’

3편. 제2이동통신사 大戰

⑪ 제2이통사 大戰 발발…시련의 연속 체신부

⑫ 제2이통사 경쟁율 6:1…겨울부터 뜨거웠다

⑭ ‘선경·포철·코오롱’ 각축전…제2이통사 확정

⑮ 제2이통사 7일만에 ‘불발’…정치, 경제를 압도했다

⑯ 2차 제2이통사 선정 발표…판 흔든 정부·춤추는 기업

⑰ 최종현 선경회장 뚝심 통했다…’제1이통사’ 민간 탄생

⑱ 신세기통신 출범…1·2 이통사 민간 ‘경합’

4편. CDMA 세계 최초 상용화

⑲ ‘라붐’ 속 한 장면…2G CDMA 첫 항해 시작

⑳ 2G CDMA "가보자 vs 안된다"…해결사 등판

㉑ CDMA 예비시험 통과했지만…상용시험 무거운 ‘첫걸음’

㉒ 한국통신·데이콤 ‘TDMA’ vs 한국이통·신세기 ‘CDMA’

㉓ 한국이동통신 도박 통했다…PCS 표준 CDMA 확정

㉔ ‘디지털·스피드 011’ 탄생…세계 최초 CDMA 쾌거

㉕ ‘파워 디지털 017’ 탄생…신세기통신 CDMA 상용화

5편. 이동통신 춘추전국시대 개막

㉖ 제3 이동통신사 찾아라…新 PCS 선정 개막

㉗ ‘LG텔레콤 vs 에버넷’…‘한솔PCS vs 글로텔 vs 그린텔’

㉘ PCS 사업자 확정…‘한국통신·LG·한솔’

㉙ ‘016’ 한국통신프리텔·‘018’ 한솔PCS·‘019’ LG텔레콤

㉚ ‘PCS 경합’…64세 어르신도 번지점프 했다

㉛ 이동통신 5사 ‘각자도생’…춘추전국시대 개막

6편. 이동통신 혼돈의 세기말

㉜ 3G IMT-2000 향한 첫 항해 시작

㉝ 이동통신 1천만 돌파했으나 ‘풍요속 빈곤’…新 브랜드 ‘SKY’ 탄생

㉞ 스무살의 011 TTL·사랑은 움직이는 거야·묻지마 다쳐

㉟ ‘SK텔레콤+신세기통신’ 인수합병…사상 첫 점유율 낮추기

㊱ '한국통신프리텔+한솔PCS' 인수합병…춘추전국→삼국정립

7편. 3세대 이동통신(IMT-2000)

㊲ ‘SK·한통·LG·하나로’ IMT-2000 도전…춤추는 정부

㊳ 하나로통신 007 작전…’정부·재벌’ 허 찔렸다

㊴ SK텔레콤·한국통신 IMT-2000 입성…LG·하나로 ‘탈락'

㊵ LG텔레콤 vs 하나로통신…동기식 IMT-2000 주인 찾았다

8편. 3G 시대 개막

㊶ IMT-2000 표류…CDMA2000 비상

㊷ 연기 또 연기…3G WCDMA 초라한 등장

㊸ '011·016·019→010 통합' 논란…번호이동 패닉

/김문기 기자(moon@inews24.com)







포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