㉒ 한국통신·데이콤 ‘TDMA’ vs 한국이통·신세기 ‘CDMA’ [김문기의 아이씨테크]


[다시 쓰는 이동통신 연대기] ‘CDMA 세계 최초 상용화’ 편

우리나라가 정보통신강국으로 성장하기 위한 첫발인 한국전기통신공사(KT), 한국데이터통신(LGU+), 한국이동통신서비스(SKT)가 설립된 지 꼬박 40여년이 흘렀습니다. 그간 이동통신 역시 비약적으로 성장해 슬로우 무버에서 패스트 팔로우로, 다시 글로벌 퍼스트 무버로 도약했습니다. 5G 시대 정보통신 주도권 싸움은 더 격렬해졌고, 다시 도전에 나서야할 절체절명의 시기를 맞이했습니다. 과거는 미래를 비추는 거울입니다. 부족하지만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이동통신 연대기를 다시 시작합니다. 재밌는 에피소드가 담긴 독자의 제보도 받습니다 [편집자주]

2G폰 [사진=LGU+]

[아이뉴스24 김문기 기자] 1995년을 뜨겁게 달군 개인휴대통신(PCS) 기술표준 논란은 이전해인 199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체신부는 1차 통신구조 개편방향에 대한 마무리 작업인 제2이동통신사 선정 전후로 2차 통신사업구조 개편을 준비 중이었다. 앞서 1차 개편이 국가 주도에서 민간 자율경쟁으로 변화를 야기했다면 2차 개편은 민간 경쟁을 보다 확산시키는데 주안점을 뒀다.

체신부가 준비 중인 2차 통신사업 개편의 핵심은 경쟁력 있는 강력한 통신사업자를 육성 하는 데 있었다. 이를 위해서는 기존 통신사업 영역에 대한 파괴적 혁신이 따라야 했다. 즉 유선과 무선, 정보통신 등에 대한 가림막을 해제하고 누구나 통신사업을 영위할 수 있어야 한다는 복안이었다.

가령 일반통신사업자에 속했던 한국통신(현 KT)과 데이콤(현 LG유플러스), 특정통신사업자인 한국이동통신(현 SK텔레콤)과 신세기통신 등을 구분해 상호 사업영역을 침범하지 못하게 했으나 이같은 제한을 없애고 거시적 경쟁을 도입한다는게 핵심이다.

당연히 시장은 들썩였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에 비유되는 통신사업을 영위하기 위해 이미 재벌 기업들이 한바탕 전쟁을 치루고 있는 상태였다. 또한 지분제한으로 인해 참여하지 못하고 있는 4대 재벌기업들 역시 두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체신부는 주파수공용통신(TRS)과 무선데이터통신, 발신전용휴대전화(CT2), 저궤도위성 이동통신과 개인휴대통신(PCS)에 대한 로드맵을 짜느라 분주했다.

이중 TRS 사업은 교통방송과 경찰청 등이 자가통신용으로 썼다. 적은 주파수로 동시에 여러 가입자가 통신할 수 있는 이동통신 서비스였다. 현재까지도 재난에 대비하고자 쓰이고 있으나 PS-LTE 등으로 넘어간 서비스다.

무선데이터통신은 전담사업자가 있었으나 일반사업자뿐만 아니라 특정사업자에게도 기존 통신망을 이용해 서비스할 경우 허가 없이도 쓸 수 있도록 문호를 개방했다.

CT2는 우리에게 익숙한 일명 ‘시티폰’ 서비스다. 발신전용휴대전화로 불렸다. 일정구역 내에서 상대방에게 발신만 할 수 있고 수신은 불가했다. 최근 드라마에서 간간히 등장하는 시티폰은 ‘응답하라 1994’에서 성동일(배우)이 주식으로 대박을 노리는 장면이 나오기도 했다. 한국통신이 서울 여의도 지역을 대상으로 시범서비스를 시작해 확산을 노렸으나 삐삐가 몰락하면서 자연스럽게 무대 뒤로 퇴장했다.

◆ PCS 사업자 선정 ‘술렁’…정보통신부 신설

체신부의 2차 통신개편안 중에 눈에 띄는 부분은 단연 ‘개인휴대통신(PCS)'이다. PCS는 영국 브리티시텔레콤(BT)의 레이몬드 스틸 박사가 제안한 방식으로 개인마다 고유 이동전화번호를 부여받아 초소형 단말기를 이용해 언제 어디서나 이동전화를 할 수 있는 첨단 서비스를 가리켰다. 스틸 박사는 PCS 번호가 마치 주민등록번호와 마찬가지로 개인에게 부여돼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초기 PCS는 개인소통시스템(personal communication system)으로 불렸으나 망 기술 개념을 중심으로 유럽에서는 PCN(personal communication Network)로 명명하기도 하고, 미국에서는 벨코아 콕스 박사의 제안으로 쓰임새에 착안해 PCS(personal communication Service)라 말하기도 했다. 약간의 차이가 있으나 이들을 꿰뚫는 의미는 비교적 간단하다. ‘개인이 언제 어디서나 이동전화를 쓸 수 있다’ 라는 목적은 동일하다.

이같은 PCS가 1995년 한국이동통신과 신세기통신, 한국통신과 데이콤, 그리고 정부 간의 갈등을 야기한 데는 PCS 그 자체가 아니라 PCS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행주체에 대한 의견이 엇갈렸기 때문이다.

‘PCS’가 일종의 개인휴대 개념이라고 한다면 그 개념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실제 구현되는 기술이 있어야 한다. 어떤 조직에 명령을 내리는 보스가 있다면 직접 수행에 나서는 행동대장이 있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즉, 행동대장을 누구를 선택할지에 대한 의견이 갈린 셈이다. 주요 후보군은 크게 시분할다중접속방식(TDMA)과 코드분할다중접속방식(CDMA)이 꼽힌다.

우리나라에서 PCS를 구현하는데 어떤 기술표준을 채택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앞으로 관련 생태계가 어떤 방향으로 갈지, 나아가 이떤 기업이 선점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이정표 구실을 한다. 간단하게 자기 것이 되는 게 제일이다. 기업 스스로가 자신있는 기술표준, 또는 준비하고 있는 기술표준이 PCS 기술표준이 돼야 한다.

PCS 기술 표준 선정문제가 더 뜨겁게 타올랐던 또 다른 이유로는 PCS 사업자를 지정하겠다는 체신부 발표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말은 곧 이동통신사업을 영위하는 사업자에게는 경쟁 역량을 강화해 시장 선점에 힘을 실을 수 있다는 의미이며, 이동통신사업을 하지 않고 있는 통신사업자가 이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는 셈이다.

1994년 5월 30일 윤동윤 체신부 장관은 오전 국회 당정협의회에서 PCS와 관련해 우선적으로 1개 사업자를 선정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어 같은해 6월 30일 체신부가 2차 통신사업구조 개편방향을 최종 확정면서 보다 구체적으로 PCS 1개 사업자를 1995년 중반께 선정하겠다고 일정까지 공개했다. 선정 여부에 따라 1997년부터 시범서비스를 도입하겠다는 계획이었다. 관련된 법과 제도 정비도 끝마쳤다.

한편, 1994년말에는 정보통신의 중요성이 다시 한번 부각되는 큰 사건이 발생한다. 새로운 문민정부가 들어섬에 따라 정부조직법이 개정되면서 그간 정보통신분야를 이끌었던 체신부를 뒤로 하고 ‘정보통신부’가 신설됐다. 이전 우편 업무는 소속기관인 체신청(신설)이 관할하게 됐다.

비록 현재 정보통신부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과거 정보통신분야를 하나로 모아 일관된 정책을 추진하면서 우리나라 IT 발전에 크게 이바지한 정부 조직으로 추억된다. 여러 차례 시련을 겪은 후 우려곡절 끝에 미래창조과학부로 이관됐으며, 현재의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그 이름과 명맥을 잇고 있다.

◆ 한국통신·데이콤 ‘TDMA’ vs 한국이동통신·신세기통신 ‘CDMA’

PCS 사업자를 선정하겠다는 소식에 한국통신은 들 뜬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이동통신 분야를 한국이동통신에게 넘겨 준 후 제2이동통신사 선정에서도 뜬 눈으로 바라봐야 했던 한국통신으로서는 다시 이 시장에 발을 들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이미 국가기관으로 탄탄히 쌓아올린 유선 네트워크 인프라가 탄있었기에 이동통신분야는 언제가는 가야 할 길이었다.

한국통신은 1995년초 이상철 단장을 중심으로 무선통신사업추진단을 구성해 PCS 사업자 선정을 대비했다. 이동전화보다 낮은 요금과 20만원대 단말기로 전국을 재패하겠다는 야심에 불타 올랐다. 국내 통신장비 업체인 삼성전자, LG정보통신, 대우통신 등과 PCS 공동개발협약을 체결했다.

그에 앞서 한국통신은 시티폰(CT2) 시범 사업을 전개했다. 1995년 3월 8일 여의도 지역에 CT2 시범 서비스를 시작한 한국통신은 이후 시티폰을 위해 구축한 망 인프라를 PCS 기지국으로 전환하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

데이콤 역시 잠룡이었다. 1997년 6월 대도시 중심으로 PCS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2000년까지 R&D에만 무려 1조8천억원을 투입하겠다는 전략이었다. 국내 업체들과의 공동개발을 즉각 추진했다.

앞서 이동통신 사업권을 보유한 한국이동통신과 신세기통신으로서는 잘 나가는 형이나 다를 바 없는 한국통신과 데이콤의 참전 예고에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PCS 사업권을 반드시 가져와야 하는 형국이었다. 이미 개발 중인 CDMA 기술을 앞세워 PCS 사업 진출을 추진했다.

단순했던 판세는 보다 복잡해졌다. 한국통신이 시분할다중접속방식(TDMA)을 채택하고, PCS 기술 표준으로 밀어 붙였다. 데이콤 역시 TDMA로 기울었다. 이동통신시장에서 한국통신은 후발주자이기에 앞서 한국이동통신과 신세기통신의 CDMA를 채택하기 보다는 대척점에 있는 기술 표준을 통해 차별화에 나서야 한다고 판단했다. 전세계적으로 TDMA가 채택되고 있는 상황을 감안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여겼다.

한국통신의 우회전략으로 머리를 싸맨 곳은 정보통신부다. 정보통신부가 어떤 PCS 기술표준을 선택하는가에 따라 PCS 사업권 역시 따라갈 공산이 컸다. TDMA라면 한국통신이, CDMA라면 한국이동통신이 유리한 고지를 차지한다. 때문에 사업자들은 자신의 기술표준이 PCS 표준이 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세계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첨단의 CDMA와 전세계 범용성을 가지고 있으나 CDMA보다 뒤쳐진다는 TDMA 중 어느 하나를 쉽게 선택하지 못했다. 그간 꾸준히 국가 기술표준으로 수천억원을 쏟아 상용화를 앞에 둔 CDMA와 제3의 사업자가 당연지사 선택할 TDMA는 무엇을 선택하든 리스크를 감당해야 했다.

그 사이 정보통신부는 8월 통신사업허가계획 1차시안을 발표하고 PCS 사업자를 1곳이 아닌 3곳을 신규 허가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후 9월 7일 경상현 정보통신부장관이 기자회견을 열고 PCS 사업자 선정 일정을 무선접속방식 등 몇가지 사안에 대해 좀 더 의견을 수렴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며, 해를 넘긴 1996년 6월말까지 연기하겠다고 발표했다.

▶ 다시쓰는 이동통신 연대기 목차

1편. 삐삐·카폰 이동통신을 깨우다

① '삐삐' 무선호출기(上)…청약 가입했던 시절

② '삐삐' 무선호출기(中)…‘삐삐인생' 그래도 좋다

③ '삐삐' 무선호출기(下)…’012 vs 015’ 경합과 몰락

④ '카폰' 자동차다이얼전화(上)…"나, 이런 사람이야!"

⑤ ‘카폰’ 자동차다이얼전화(下)…’쌍안테나' 역사 속으로

2편. 1세대 통신(1G)

⑥ 삼통사 비긴즈

⑦ 삼통사 경쟁의 서막

⑧ 이동전화 첫 상용화, ‘호돌이’의 추억

➈ 이동통신 100만 가입자 시대 열렸다

⑩ 100년 통신독점 깨지다…'한국통신 vs 데이콤’

3편. 제2이동통신사 大戰

⑪ 제2이통사 大戰 발발…시련의 연속 체신부

⑫ 제2이통사 경쟁율 6:1…겨울부터 뜨거웠다

⑭ ‘선경·포철·코오롱’ 각축전…제2이통사 확정

⑮ 제2이통사 7일만에 ‘불발’…정치, 경제를 압도했다

⑯ 2차 제2이통사 선정 발표…판 흔든 정부·춤추는 기업

⑰ 최종현 선경회장 뚝심 통했다…’제1이통사’ 민간 탄생

⑱ 신세기통신 출범…1·2 이통사 민간 ‘경합’

4편. CDMA 세계 최초 상용화

⑲ ‘라붐’ 속 한 장면…2G CDMA 첫 항해 시작

⑳ 2G CDMA "가보자 vs 안된다"…해결사 등판

㉑ CDMA 예비시험 통과했지만…상용시험 무거운 ‘첫걸음’

/김문기 기자(moon@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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