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 '삐삐' 무선호출기(中)…‘삐삐인생' 그래도 좋다 [김문기의 아이씨테크]


[다시쓰는 이동통신 연대기] 무선호출기

우리나라가 정보통신강국으로 성장하기 위한 첫발인 한국전기통신공사(현 KT)가 설립된 지 꼬박 40년이 흘렀습니다. 그간 이동통신 역시 비약적으로 성장해 슬로우 무버에서 패스트 팔로우로, 다시 글로벌 퍼스트 무버로 도약했습니다. 5G 시대 정보통신 주도권 싸움은 더 격렬해졌고, 다시 도전에 나서야할 절체절명의 시기를 맞이했습니다. 과거는 미래를 비추는 거울입니다. 부족하지만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이동통신 연대기를 다시 시작합니다. 재밌는 에피소드가 담긴 독자의 제보도 받습니다 [편집자주]
모토로라에서 출시된 무선호출기 [사진=SKT]

[아이뉴스24 김문기 기자] 초기 무선호출기는 회선과 기기 등에 따른 제약으로 보편화가 더뎠다. 그러다보니 관공서나 국회, 병원, IT기업과 유통 시장 등 서비스 기업들이 주로 애용했다.

가령 특정 기업에서는 무선호출기를 장착한 CS팀을 꾸려 신속한 AS를 지원했다. 외무부는 사건사고 이후 기동력을 높이기 위해 국장급 이상 간부 대상 무선호출기를 허리에 차도록 제도화했다. 연예인 역시 무선호출기를 활용했는데 매니저가 삐삐를 호출해 스케쥴 소화를 도왔다.

소위 ‘삐삐인생'이라는 신조어가 탄생한 배경이다. 언제 어디서나 호출할 수 있기에 24시간을 대기해야 했다. 당시 30대의 설움이 담겨 있는 단어기도 하다. 다만, 단점보다는 일의 능률이 오르고 보다 기민하게 대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커, 대중적으로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서울 지역에서만 한정적으로 사용이 가능하다는 제한이 있기는 하나, 바꿔 말하면 수신자가 서울에 있기만 하면 전국 어디서나 호출이 가능했다. 중계지점까지만 전달된다면 서울 시내 기지국에서 수신자에 호출 신호만 보내면 된다.

다만, 수신자는 지정된 곳에서의 호출만 받았기 때문에 전국적으로 무선호출기 사용에 대한 요구가 높아졌다. 이에 따라 이후 부산 지역을 대상으로 무선호출기 도입이 확산됐다.

한국이동통신서비스 주식회사(현 SKT) 현판식 [사진=SKT]

◆ 한국이동통신서비스 설립

한국전기통신공사는 1984년 4월 30일 자동차다이얼전화(카폰)과 무선호출기 업무를 전담할 자회사 ‘한국이동통신서비스’를 설립한다. 수권자본금 5억원, 납입자본금 2억5천만원, 서울 성동구 구의동 소재 광장전신전화국 청사내 사무실을 마련했다. 초대 사장으로는 유영린 전 전기통신공사 원주지사장이 선임됐다.

직원수는 불과 32명 수준으로 작았다. 업계 관계자는 "당시 한국이통서비스는 차량에 길다란 안테나를 달아주는 곳 정도로, 혹자는 주요 인사들이 좌천돼 오는 곳이라 여길 정도로 크게 부각되지 않는 업체였다"고 회상하기도 했다.

◆ 1차 전환기 : 디스플레이 기반 무선호출기 등장

1986년 무선호출기 서비스 1차 전환점이 마련된다. 지정된 호출만 가능했으나 디스플레이가 장착되면서 발신자 누구나 원하는 내용을 수신자에게 보낼 수 있게 됐다. 즉, 수신자가 발신자를 알 수 있게 된 셈이다.

같은해 2월 1일 체신부와 한국전기통신공사는 문자가 표시되는 디스플레이 기반 무선호출기를 도입했다. 기기값은 20만원, 월 사용료는 동이한 가입비 1천500원, 사용료 월 1만2천원, 회선을 추가하면 개당 8천원을 내야 했다.

신제품의 출현은 구제품의 가격인하를 유도했다. 디스플레이가 없는 전통적 무선호출기 서비스는 월 1만2천원에서 25% 인하한 9천원, 회선 추가는 9천원에서 33% 인하한 6천원으로 하향 조정됐다.

디스플레이 도입에 따라 무선호출기는 신호음 이외에도 호출자의 전화번호나 부호가 표시됐다. 그러다보니 판매량이 급상승했다. 도입 후 2개월이 지난 3월말 가입을 했으나 대기를 해야 하는 상황까지 발생했다. 같은 기간 청약접수는 약 5천여대 수준, 이중 약 10% 가량이 청약승낙을 받았으나 기기를 받지 못했다.

그 사이 1987년 서울과 부산 지역에서 대전, 대구, 광주, 인천까지 무선호출기 서비스 지역이 확대됐다. 88 서울올림픽을 전후로 춘천과 제주로까지 뻗어 나갔다.

무선호출 10만 가입자 돌파 기념식 [사진=SKT]

◆ 2차 전환기 : 무선호출기 춘추전국시대

1988년 무선호출기 서비스는 2차 전환기를 맞이한다. 5월 1일 체신부는 무선호출수신기 공급제도를 공급자 중심에서 이용자 중심으로 개편했다. 한국전기통신공사가 일괄구매해 보급하는 이전 방식과 달리 제조업체가 자체 공급망을 활용해 무선호출기를 판매하면서 이용자 선택권이 강화됐다. 바야흐로 무선호출기 춘추전국시대가 열렸다.

무선호출기 내수시장 규모는 50억원 수준으로 성장했다. 점유율 경쟁은 한층 더 치열했다. 무선호출기 제조사인 현대전자와 맥슨전자, 삼성반도체통신, 금성반도체, 한국모토롤라 등이 다양한 기기를 선보이는가 하면, 대대적인 가격 인하도 서슴치 않았다. 15~20만원 수준의 무선호출기는 10~11만원으로 내려갔다.

또한, 이용자 중심 개편을 통해 가입비가 없어지고, 임대 사용이 도입되면서 비용 부담도 낮아졌다.

이에 따라 시장은 급속도로 성장했다. 연간수요는 4만2천대 수준, 시장 신장률은 30% 이상을 기록했다. 1982년 도입된 무선호출기는 1988년 12월 28일 가입자 10만을 돌파했다. 명실상부 이동통신의 한 획을 긋는 트렌트로 부상했다. 1986년 가입자가 3만8천에 불과했으니, 격세지감이 따로 없었다.

다만, 문제는 무선호출기 국산화가 더뎠다는 점이다. 시장에서 외산업체의 강세가 지속됐다. 한국모토로라의 시장 점유율은 대략 65% 기록할 정도로 높았다. 게다가 미국의 개방압력이 거세지면서 국산 무선호출기는 비상 상황에 놓였다.

무선호출기 연대기 [사진=김문기 기자]

▲ 다시쓰는 이동통신 연대기

① '삐삐' 무선호출기(上)…청약 가입했던 시절

/김문기 기자(moon@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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