③ '삐삐' 무선호출기(下)…’012 vs 015’ 경합과 몰락 [김문기의 아이씨테크]


[다시쓰는 이동통신 연대기] 무선호출기

우리나라가 정보통신강국으로 성장하기 위한 첫발인 한국전기통신공사(현 KT)가 설립된 지 꼬박 40년이 흘렀습니다. 그간 이동통신 역시 비약적으로 성장해 슬로우 무버에서 패스트 팔로우로, 다시 글로벌 퍼스트 무버로 도약했습니다. 5G 시대 정보통신 주도권 싸움은 더 격렬해졌고, 다시 도전에 나서야할 절체절명의 시기를 맞이했습니다. 과거는 미래를 비추는 거울입니다. 부족하지만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이동통신 연대기를 다시 시작합니다. 재밌는 에피소드가 담긴 독자의 제보도 받습니다 [편집자주]

[아이뉴스24 김문기 기자] 1990년초는 체신부가 이동통신 사업 육성 계획을 발표하면서 시작부터 관련 시장이 뜨겁게 달아 올랐다. 이동통신 사업분야의 민간업체 신규 참여를 개방키로 했기에 ‘제2이동통신사업자'가 누가 될지 관심이 집중됐다. 단독보다는 3~4개 통신관련업체 공동출자의 의한 1개 사업체를 뽑는 규칙에 따라 대기업 재벌들의 눈치싸움이 계속됐다.

이와 함께 무선호출기 시장 역시 급속도로 성장했다. 제조사의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됨에 따라 비약적인 발전을 이룬 무선호출기는 성능뿐만 아니라 휴대성도 높아지는데 비해 가격은 점차 내려가면서 대중화를 위한 조건을 모두 구비하게 됐다.

다만, 무선호출기 보급이 늘어날 수록 사회적 문제를 야기했다. ▲대학 부정 입학 ▲시험 부정 행위 ▲노동강도 심화 ▲자율성 박탈 ▲범죄 악용 등 무선호출기를 활용한 여러 잘못된 행위들이 꼬리를 물고 발생했다. 그 정도가 얼마나 심화됐는가 하면 무선호출기를 허리에 차고 다니면 전자파에 의해서 딸만 낳게 된다는 악성 루머까지 퍼질 지경이었다.

수도권에서 경합을 벌인 한국이동통신 012(좌)와 나래이동통신 015 광고 포스터 [사진=SKT, 나래이동통신]

◆ 3차 전환기 : 012 vs 015

1991년 4월 체신부는 무선호출 폭발적 수요 증가로 가입자 수용량을 늘리기 위해 별도 식별번호를 부여한 무선호출전용망을 구축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전국 어느 지역에서나 ‘012’ 번호만 돌리면 곧바로 무선호출전용교환망에 연결돼 호출할 수 있게 됐다. 시외 가입자의 경우 해당지역의 지역번호를 눌러야 했으나 지역에 관계없이 012로 통일 된 것. 당시 한국이동통신보다 더 유명한 상징적 숫자, ‘012’가 대중화되는 시작점이다.

이후 체신부와 한국이동통신은 1992년 7월 언제 어디서나 일반전화를 통해 음성메시지를 녹음해 저장하고 이를 무선호출 가입자가 직접 들을 수 있도록 하는 ‘음성사서함 서비스’ 시범 가동에 돌입했다.

1993년은 무선호출시 시장의 3차 전환점이 마련된 때다. 사실상 한국이동통신의 독주였던 무선호출기 시장은 제2무선호출사업자의 등장으로 인해 본격적인 경쟁체제로 전환됐다.

같은해 5월 가장 빨리 호출 신호를 쏴 올린 제주이동통신을 시작으로 충남과 대전지역을 대표하는 충남이동통신, 수도권을 아우를 나래이동통신과 서울이동통신, 부산과 경남을 책임지는 부일이동통신, 충북의 우주이동통신, 전북이동통신, 대구와 경북은 세림이동통신이 각각 서비스 상용화에 돌입했다. 이로써 10개 사업자가 무선호출 시장을 두고 경합에 나서게 됐다.

‘012’를 보유한 한국이동통신과 ‘015’ 식별번호를 부여받은 9개의 제2무선호출사업자 구도가 탄생된 셈이다.

특히 가장 치열한 경합을 벌인 곳은 수도권이다. 한국이동통신과 함께 나래이동통신과 서울이동통신이 양보 없는 싸움을 이어갔다. 당시 한국이동통신은 22개 기지국을 운영하고 있었으나 나래와 서울의 경우 50개 기지국을 통해 음영지역을 최소화했다. 이에 따라 1992년 200만을 돌파한 무선호출기 가입자는 1993년 8월 300만 돌파라는 기염을 토했다.

◆ 15년만에 정점에 올랐지만…너무 빠른 퇴장

제2무선호출사업자가 등장함에 따라 서비스 경쟁도 치열하게 전개됐다. 무선호출과 컴퓨터 통신을 결합한 서비스, 음성 지원, 팩시밀리 자료 전달, 컴퓨터 문서를 저장해 수신할 수 있는 사서함 서비스, 증권정보와 생체리듬, 운세뿐만 아니라 일기예보까지 전송하는 등 각 사업자들은 차별화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또한 제2사업자들은 대부분 주문자부착생산방식(OEM)을 통해 국산 무선호출기를 대량 구입해 보급하면서 당시 높은 점유율을 보유한 모토로라의 가격 인하를 이끌었다. 계속해서 저렴해지는 사용료와 기기 가격뿐만 아니라 가입자 유치를 위한 사업자들의 경쟁에 불이 붙으면서 급속한 시장 성장을 이뤘다.

특히 1997년 5월 1일 동원산업이 이끌던 해피텔레콤이 수도권 제3무선호출사업자로 참여하면서 가뜩이나 첨예했던 수도권 경쟁이 더 극심해졌다. 가입자 1천500만명이라는 대업을 이룬 시기도 이때다.

급속한 성장에는 진통이 따르기 마련이다. 가입자 유치 경쟁이 치열해지자 불법개통도 판쳤다. 부모 몰래 자녀가 주민등록등본과 도장만 가져가도 무선호출기를 개통해주기도 했다. 각종 할부상품을 내걸고 고객을 유혹하기도 했다.

또한 10대 청소년 사이에서 무선호출기가 일대 붐을 이루면서 사회적 지탄이 쏟아지기도 했다. 학교에서는 학업방해를 이유로 학생들이 삐삐를 가지고 다니지 못하도록 하거나 체벌까지도 이뤄졌다. 게다가 법원에서는 삐삐소음을 명목으로 과태료 100만원을 내야 한다는 처벌까지 공식화됐다.

물론 무선호출기가 당대 감성을 표현할 수 있는 징검다리가 돼 주기도 했다. 제한된 숫자로 은유적 표현들이 생겨나게 된 것. 최근까지도 숫자 조합을 통한 의미 전달 방식은 ‘삐삐 감성’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486(사랑해), 0179(영원한친구), 1004(천사), 17175(일찍일찍와), 8282(빨리빨리), 827(파이팅)’ 등 꽤 많은 조합을 현재도 찾아볼 수 있다.

15년간 최정점에 이른 무선호출기는 단짝으로 불린 발신전용휴대폰인 시티폰의 몰락과 1세대에서 2세대로 넘어오며 대중화를 이룬 휴대전화에 밀려 급속하게 시장 뒤켠으로 물러났다. 1997년 1천500만 가입자를 보유한 무선호출기 가입자는 1999년 무려 300만명으로 감소하기에 이르렀다.

2000년에 이르러 견디지 못한 사업자들은 폐업하거나 피인수됐으며, 그나마 명맥을 잇던 012는 리얼텔레콤이 2009년 폐업을 알리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무선호출기 연대기 [사진=김문기 기자]

▲ 다시쓰는 이동통신 연대기

① '삐삐' 무선호출기(上)…청약 가입했던 시절② '삐삐' 무선호출기(中)…‘삐삐인생' 그래도 좋다
/김문기 기자(moon@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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