⑭ ‘선경·포철·코오롱’ 각축전…제2이통사 확정 [김문기의 아이씨테크]


[다시 쓰는 이동통신 연대기] 제2이동통신사 大戰편

우리나라가 정보통신강국으로 성장하기 위한 첫발인 한국전기통신공사(KT), 한국데이터통신(LGU+), 한국이동통신서비스(SKT)가 설립된 지 꼬박 40여년이 흘렀습니다. 그간 이동통신 역시 비약적으로 성장해 슬로우 무버에서 패스트 팔로우로, 다시 글로벌 퍼스트 무버로 도약했습니다. 5G 시대 정보통신 주도권 싸움은 더 격렬해졌고, 다시 도전에 나서야할 절체절명의 시기를 맞이했습니다. 과거는 미래를 비추는 거울입니다. 부족하지만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이동통신 연대기를 다시 시작합니다. 재밌는 에피소드가 담긴 독자의 제보도 받습니다 [편집자주]

[아이뉴스24 김문기 기자] ‘대한텔레콤 vs 신세기통신 vs 제2이동통신’

1992년 7월 29일 체신부(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제2이동통신 허가와 관련한 1차 심사결과로 3개 컨소시엄을 선정했다. 예상했던 대로 심사 발표 전후 내외부로 수많은 갈등을 야기시켰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 불린 이동통신 제2의 적임자를 찾는 작업이었기에 그만큼 치열한 공방이 계속됐기 때문이다. 공모는 총 6개 컨소시엄이 도전했으나 결과적으로 3개사가 먼저 자리를 떠나야 했다.

제2이동통신사업자를 선정하기 위한 3개 그룹의 치열한 다툼이 지속됐다 [사진=SKT]

◆ 1차 심사로 베일 벗은 컨소시엄들

접수를 통해 그간 컨소시엄 별로 가려져 있던 사업계획의 윤곽이 어느 정도 드러났기에 그에 따른 가채점(?)을 통한 승패를 저울질하기도 했다. 이는 체신부가 공정한 심사를 위해 자료공개를 사실상 막았기에 그에 따른 추측이 난무한 경향도 있다.

선경이 주도한 대한텔레콤은 가장 적은 주주 구성이기는 하나 전문성은 남달랐다. 대부분이 정보통신사업과 밀접한 연관이 있었다. 유공이 31%의 지분을, 한전과 럭키금성그룹의 부산투자금융이 각각 10%, 남성과 한국컴퓨터가 각각 5% 수준으로 구성됐다. GTE와 보다폰, 허치슨은 약 20% 정도의 지분율을 보유했다.

가장 화려한 라인업은 포항제철이 이끌고 있는 신세기통신이다. 22%의 지분으로 대주주 역할을 하는 가운데 삼성과 현대 대우, 삼양이 각각 8.25%를 차지했다. 대한전선과 한진그룹, 맥슨전자 등도 이름을 올렸다. 팩텔, 만네스만, 퀄컴 등 해외 사업자는 약 25%를 가져갔다.

코오롱 그룹의 제2이동통신은 30%로 대주주 역할을, 태광산업과 대한화재해상보험, 부산파이트, 일신방직 등 주요 7개 주주사가 3~9.5%의 지분을 각각 보유했다. 나이넥스가 19%를 차지해고, 브리티시텔레콤은 간접 참여 방식으로 선회했다.

쌍용의 미래 이동통신은 쌍용그룹이 28%를, 해태제과와 한국화장품, 백양, 종근당 등 9개 주주들이 1~10% 가량의 지분을 가져갔다. 사우스웨스턴벨이 20%, 스웨디시텔레콤이 3%를 보유했다.

심사평가단은 통신정책실장을 단장으로 통신정책심의관을 부단장으로 자격심사와 심사평가, 심사평가지원반 등 3개 반으로 구성했다. 서류의 법적인 문제 등을 점검했다. 필요하다면 법제처와 법무부 등 관계 기관에 협조를 요청했다.

자격심사반은 35명으로 7개조로 나뉘어 심사를 진행했다. 심사평가반은 계량심사평가반과 비계량심사평가반으로 구분했다. 계량평가는 당시 컴퓨터 디스켓(휴대용 저장장치)을 이용했다. 비계량평가는 주관적 평가이기에 대학교수나 전문가 등이 참여했다.

1차 심사 기준은 주주구성의 적정성과 주주의 재무상태건전성, 자금조달능력, 설비투자계획의 적정성, 수용충족도, 이용자 보호 수단의 적정성, 서비스 구성 원가, 요금수준의 적정성, 서비스품질과 운용기술의 우수성 등을 평가하기로 했다.

◆ 2차 심사를 위한 고군분투, 그리고 암투

1992년 6월 26일 007 작전을 연상케 하는 제2이동통신사 허가 신청 접수를 마무리한 6개 컨소시엄은 본격적인 수주전에 돌입했다. 치열한 경쟁은 실제 심사에 돌입하는 심사위는 통신도 끊은 채 합숙을 진행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장외전 양상으로 전개됐다. 가장 불거진 장외전으로는 정치적인 연줄을 통한 논란 지피기 또는 줄을 대기 위한 로비설 등으로 경쟁 컨소시엄 견제하는 방식으로 불거졌다.

이 과정에서 철저한 준비를 했으나 불필요한 오해를 사기도 했다. 체신부는 접수가 끝나고 3일 뒤인 6월 29일 컨소시엄에 ‘자기자본지도비율’을 추가로 제출할 것을 요구했다. 자기자본지도비율은 기업 총자산에서 부채를 제외한 자기자본비율을 말한다. 이같은 추가 제출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한 이유는 1991년 은행감독원 조치로 유공의 자기자본지도비율을 낮아졌기 때문이다. 즉, 선경 주도의 대한텔레콤에 유리하게 작용할 공산이 컸다.

체신부는 이미 컨소시엄이 제출한 재무제표를 통해서 산출이 가능하기는 하나 자기자본비율 산정이 업체별로 복잡하기 때문에 평가작업에 정확성을 기하기 위해서라고 해명했다. 다만, 이같은 상황이 불거지자 3일 후인 7월 2일 자료제출을 돌연 취소했다.

단순 헤프닝으로 그칠 수도 있었으나 이같은 작은 불씨는 불신을 키워주는데 더 없이 좋은 트리거였다. 이번에는 정치권에서 특혜시비를 주장했다. 선경그룹의 2세 경영 밀어주기설, 포항제철의 회장 로비설, 동양그룹의 학연 지연 로비설, 코오롱그룹의 일본 대리로비설까지 파도파도 끊임없이 터져 나오는 통에 일부 민자당 의원들이 제2이동통신 사업을 연기해야 한다고 날 선 비판을 쏟아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대통령까지 나섰다. 7월 23일 노태우 대통령은 제2이동통신사업과 관련해 “특혜나 의혹이란 것은 있을 수 없다. 국가적인 사업은 철저하게 공정한 과정을 거쳐 계획대로 추진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창 시끌벅적한 장외전이 계속되기는 했으나 예정대로 결과가 발표됐다. 7월 29일 1차 발표에 생존한 컨소시엄은 대한텔레콤과 신세기통신, 제2이동통신으로 결정됐다. 대한텔레콤은 총점 8천127점으로 1위, 코오롱은 7천783점으로 2위, 신세기통신은 7천711점으로 3등을 기록했다.

결과를 받아든 컨소시엄은 이미 답은 정해져 있었다며 특혜시비를 옹호하기도 하고, 그간의 사업 계획 준비로 인해 허탈해하기도 했으나 정보통신사업을 계속해서 이끌어가겠다는 사업자들도 나타나는 등 제각각의 반응을 보였다.

손길승 대한텔레콤 대표는 “정부시책에 부응할 수 있는 최상의 사업계획서 작성을 위해 노력했다. 무더운 날시에도 성의껏 평가에 힘써준 각계 인사들에게 심심한 사의를 표한다”며 이동통신팀 모든 임직원에게에 감사 인사를 건냈다.

1차 심사 선정에 관련해서는 정보통신관련 우수업체들이 단순한 지분참여에 그치지 않고 역할 분담해 노력한 점과 해외협력사를 지역별로 안배해 기술 도입 다변화, 유공이 미국에서 이동통신사업을 실제 운영한 점 등이 주효했다고 자평했다.

이웅열 코오롱그룹 부회장도 그룹내 부장급 이상 간부들에게 다시한번 그룹전체의 힘을 합쳐 매진하자는 내용의 당부 서신을 발송했다. 이에 담당자들은 여름 휴가 반납하면서 다시 의지를 다지기도 했다.

비록 3위로 밀려났기는 하나 권혁조 신세기이동통신 대표 역시 “2차 심사를 눈앞에 둔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1차 심사보다 2차 심사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준비했다”고 자신감을 나타냈다. 기술계획에 비교적 높은 점수를 받은 점과 국산장비 활용계획 주효, 퀄컴과 팩텔 등 해외 협력업체의 적극적 협력뿐만 아니라 삼성과 대우, 현대 등 대기업들이 컨소시엄에 참여한 점이 좋은 평가를 이끌어냈다고 분석했다.

◆ 산업의 정치화…선경 최종 선정

1차 심사결과였으나 그에 따른 파장은 한없이 컸다. 가장 큰 문제는 우리나라 정보통신 사업 경쟁력을 높이고자 추진한 제2이동통신 사업 추진이 1차 심사를 이후로 급속하게 정치화됐다는 것. 대통령과 차기 유력 대통령 후보가 맞붙으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특히 차기 유력한 여당 대통령 후보인 김영삼 민자당 대표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제2이동통신사업 연기론을 건의했다. 당시 증권시장 붕괴 우려 등의 경제적 상황이 좋지 않았을뿐만 아니라 이동통신사업자 선정으로 인해 특혜시비까지 거론되면서 국민 여론이 급격이 악화돼왔기 때문에 좌시할 수 없다는 입장으로 풀이됐다. 국내 언론 역시 심사 직후 특혜 시비를 주요 헤드라인으로 걸어두면서 비난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커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계획한 심사를 미룰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체신부는 거듭 공정한 심사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지를 다지는 한편, 2차 심사평가를 8월 3일부터 시작해 중순께 1개 컨소시엄을 최종 결정하겠다고 발표했다. 1차 심사 결과는 전혀 반영하지 않고 오로지 2차 심사평가로만 선정한다는 계획도 언급했다.

다만, 이 선정일자에도 많은 논란이 제기됐다. 사업자 공모를 시작할 때의 계획상으로 2차 심사 결과발표는 8월말이었으나 중순으로 앞당겨졌다는 지적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15일과 16일이 공휴일인 점과 12일 올림픽 대표팀이 귀국하는 일정 등을 고려해 14일 발표를 유력하게 점쳤다. 또한 특혜시비를 무마하기 위해 14일을 선택했다는 비난까지도 일었다. 물론 체신부는 14일 발표를 거론한 적이 없었다.

업계에서도 정치권에서 부는 제2이동통신사 선정 연기에 대해 주판을 두드리기 바빴다. 1차 심사에서 3위에 속한 포항제철의 경우 유보적 입장을 취하기는 했으나 백지화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는 게 업계 추측으로 떠돌았다. 탈락 컨소시엄의 경우 완전 백지화를 통해 차기 정권에서 다시 선정 절차를 시작해야 한다는 분위기를 연출했다. 1,2위에 안착한 선경과 코오롱은 막대한 인력과 자금의 낭비를 가져오기에 계획대로 공정한 심사를 진행해야 한다고 맞섰다.

막판까지 특혜시비로 인한 정치권의 줄다리기가 계속되기는 했으나 2차 심사 결과날은 오고야 말았다. 8월 20일 체신부는 최종 선정된 컨소시엄을 발표했다.

이 발표를 TV를 통해 지켜보던 대한텔레콤 이동통신팀은 일제히 환호했다. 제2이동통신사업자로 선경이 확정되는 순간이었다.

손길승 대한텔레콤 대표는 “제2이동통신 이동전화사업자로 최종 확정돼 기쁘다”는 소감과 함께 향후 계획에 대해 조목조목 밝혔다.

초기자본금 1천880억원 투자하고 1993년부터 모두 4천315억원을 투자, 1995년까지 자본금 3천500억원으로 늘리겠다고 선언했다.

내부적 능력 검토를 통해 1996년까지 전국 92% 커버하는 전국망 서비스를 목표로 했다. 우선적으로 1년 안에 전국 6대도시 포함 17개 도시에 이동전화 서비스 시작하기로 했다. 3년안에 전국 74개 도시를 포함한 전국 서비스망 구축을 실현하겠다는 포부였다.

아날로그통신에서 국산디지털장비 시범서비스를 실시해 1995년 3월부터 서울 인천 등 주도권 지역 디지털 이동전화 서비스 시작하기로 했다. 고객서비스센터도 설치 운영하기로 했다.

1996년부터 1998년까지 매년 매출액 10%를 연구개발(R&D)에 쏟기로 했다. 이를 위해 자체연구개발투자비로 매출액대비 연 평균 8% 이상을 책정했다. 계획대로라면 1998년까지 2천500억원의 R&D 투자가 이뤄진 셈이다.

한편, 2차 심사결과는 대한텔레콤 8388점. 신세기이동통신 7496점, 제2이동통신 7099점 순으로 나타났다.

▲ 다시쓰는 이동통신 연대기

1부. 삐삐·카폰…이동통신을 깨우다

① '삐삐' 무선호출기(上)…청약 가입했던 시절② '삐삐' 무선호출기(中)…‘삐삐인생' 그래도 좋다③ '삐삐' 무선호출기(下)…’012 vs 015’ 경합과 몰락 ④ '카폰' 자동차다이얼전화(上)…"나, 이런 사람이야!"⑤ ‘카폰’ 자동차다이얼전화(下)…’쌍안테나' 역사 속으로

2부. 1세대 통신(1G)…삼통사 라이즈

⑥ 삼통사 비긴즈⑦ 삼통사 경쟁의 서막⑧ 이동전화 첫 상용화, ‘호돌이’의 추억➈ 이동통신 100만 가입자 시대 열렸다⑩ 100년 통신독점 깨지다…'한국통신 vs 데이콤’

3부. 제2이동통신사 大戰

⑪ 제2이통사 大戰 발발…시련의 연속 체신부⑫ 제2이통사 경쟁율 6:1…겨울부터 뜨거웠다⑭ ‘선경·포철·코오롱’ 각축전…제2이통사 확정
/김문기 기자(moon@inews24.com)







포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