㉔ ‘디지털·스피드 011’ 탄생…세계 최초 CDMA 쾌거 [김문기의 아이씨테크]


[다시 쓰는 이동통신 연대기] ‘CDMA 세계 최초 상용화’ 편

우리나라가 정보통신강국으로 성장하기 위한 첫발인 한국전기통신공사(KT), 한국데이터통신(LGU+), 한국이동통신서비스(SKT)가 설립된 지 꼬박 40여년이 흘렀습니다. 그간 이동통신 역시 비약적으로 성장해 슬로우 무버에서 패스트 팔로우로, 다시 글로벌 퍼스트 무버로 도약했습니다. 5G 시대 정보통신 주도권 싸움은 더 격렬해졌고, 다시 도전에 나서야할 절체절명의 시기를 맞이했습니다. 과거는 미래를 비추는 거울입니다. 부족하지만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이동통신 연대기를 다시 시작합니다. 재밌는 에피소드가 담긴 독자의 제보도 받습니다 [편집자주]

SKT 1996년 CDMA 상용화 [사진=SKT]

[아이뉴스24 김문기 기자] 1995년 크리스마스를 앞둔 어느 날.

한국이동통신 직원들은 인천과 부천을 오고가며 부산하게 움직였다. CDMA 상용화의 불확실성이 내부에서도 뿌리 깊게 자리잡고 있었기에 본격적인 마케팅 이전에 직원들의 신뢰를 얻어야 했다. 직원들이 직접 상용화 초기 지역을 돌아다니며 CDMA 시험통화를 시도한 이유다. 다행스럽게 CDMA 통화는 직원들을 만족시킬만큼 흡족한 결과물을 내줬다. 이에 힘입어 한국이동통신은 대대적인 마케팅 작업에 착수했다.

한국이동통신은 상용화 이전인 1995년 12월 26일 정부로부터 상용 서비스를 위한 형식 승인을 완료받고 최종 시험통화를 대비했다. 적체현상을 대비하기 위해 정부로부터 유휴 주파수 대역까지 할당받았다.

CDMA 상용화 하루 전인 1995년 12월 31일 한국이동통신은 마지막 최종 시험통화를 실시했다. 시험통화는 손길승 SK그룹 부회장과 서정욱 한국이동통신 사장 등이 참석했다. 인천 톨게이트에서 차량에 탑승한 손길승 부회장은 인천 주안역(1호선)까지 이동하면서 최종현 SK그룹 회장에게 전화(CDMA 방식)를 걸어 상황을 보고 했다. 이 때 역시도 단말기를 번갈아가며 쓰는 동안 단 한차례도 끊기지 않고 명료한 통화품질을 보여줬다.

그리고 세계 최초 타이틀을 확보한 우리나라 제1이통사 한국이동통신의 CDMA 상용화날인 1996년 1월 1일이 밝았다.

1996년 신문 광고 속에 등장한 LG정보통신 프리웨이 LDP-200 [사진=지면광고]

◆ LG정보통신 '프리웨이 LDP-200' 최초 CDMA 휴대폰

이동통신 상용화 조건은 크게 3가지다. 네트워크 인프라, 이동통신 서비스, 단말이 꼽힌다. 단말을 보유한 고객이 서비스에 가입해 네트워크 인프라를 사용할 수 있어야 완전한 상용화로 인정된다.

가령 인프라가 갖춰졌다고 하더라도 100대의 단말기로 100명의 가입자만 받아 운영하는 방식은 상용화라기보다는 시험통화와 다를 바 없게 된다. 누구나 쓸 수 있는 서비스가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이동통신이 CDMA 인프라를 차곡차곡 쌓아올릴 때 한편에서는 CDMA 단말기 개발이 한창이었다. 국내서 CDMA 단말기를 개발했던 기업은 삼성전자와 LG정보통신(현 LG전자), 현대전자, 맥슨전자 등 4곳이었다. CDMA는 한정된 지역에서 서비스를 시작해 점진적으로 커버리지를 늘려가야 했기에 단말은 기존 아날로그 통신과 CDMA 디지털 통신이 모두 가능한 듀얼모드로 설계돼야 했다.

그렇다면 세계 최초 CDMA 단말은 어떤 제품이었을까. 애석하게도 지난 2021년 단말사업을 접은 LG정보통신(현 LG전자)이 그 주인공이다.

LG정보통신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금성전기는 1984년 일본 NEC와 기술제휴를 통해 카폰을 개발했으나 3년후 제휴가 종료되면서 금성통신으로 사업이 이관됐다. 1993년 휴대전화 '셀스타'를 출시하면서 최초 단말 브랜드가 생성됐다.

이듬해 금성통신은 금성사로 흡수되고, 1995년 금성이 사명을 LG전자로 바꾸면서 신규 휴대폰 브랜드 ‘화통(話通)’을 세웠다. 화통 브랜드는 오래가지 못했는데 CDMA 사업을 추진하면서 통신장비와 단말 개발이 계열사인 LG정보통신으로 이관됐기 때문이다. LG정보통신은 또 다른 신규 브랜드 '프리웨이'를 설정하고 세계 최초 CDMA 휴대폰인 ‘LDP-200’을 내놨다.

‘프리웨이 LDP-200’은 153x51mm 크기에 25mm 두께를 갖춘 모델로 무게는 238g이다. 통화시간은 CDMA 2시간, 아날로그는 1시간으로 통화대기시간 기준 CDMA는 30시간, 아날로그는 10시간이었다. CDMA가 전력효율이 더 뛰어났기에 이같은 차이가 발생했다.

현재는 형태와 디자인, 성능 등으로 하나의 메인 모델이 분할되는 방식이라면 CDMA 초기는 배터리 사용량으로 모델 기종을 다양화했다. 하지만 프리웨이 LDP-200의 경우 1종의 배터리 모델만이출시됐다.

12월 21일 정부로부터 형식 검증을 완료받은 LG정보통신의 ‘프리웨이’는 약 72만원의 가격의 고가 제품이었다. 이후 삼성전자 애니콜 SCH-100과 현대전자 HHP 200 등의 단말이 출시되기 전까지 약 4개월 가량을 독점했다.

◆ 인천·부천 CDMA 상용화

1996년 1월 1일.

한국이동통신은 인천과 부천 지역에서 CDMA 방식의 디지털 이동전화 서비스를 세계 최초로 상용화했다. 아날로그와 CDMA 듀얼방식으로 CDMA 가입자는 CDMA 커버리지와 상관없이 전국에서 이동전화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었다.

다만, 1월 1일이 신정 연휴인 관계로 1호 가입자는 휴일을 넘긴 1월 3일 탄생했다. 3일 오전 9시 1분 남인천영업소에 방문한 자영업자 정은섭 씨는 가입신청서를 제출하고 CDMA 1호 가입자라는 영예를 얻었다. CDMA 디지털 이동전화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 몇달을 기다렸다는 정 씨는 깨끗한 통화 감도에 감탄했다며 언론사들의 인터뷰에 응했다.

이 시점에서 ‘왜 서울 수도권이 아닌 인천과 부천에서 CDMA를 상용화했을까’라는 의문이 남는다. 사실 한국이동통신은 서울에서 먼저 CDMA 서비스를 시작하고자 했다. 하지만 주파수 추가 확보가 어려워 안정적 운영이 가능한 수도권 내 지역인 인천과 부천을 선택했다. 각 지역별로 주파수 운용폭이 달랐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다. 이후 800MHz 대역의 유휴 대역을 할당받은 한국이동통신이 수도권을 포함해 전국적으로 커버리지를 늘려 갔다.

1996년 4월 12일 서울 등 수도권 지역으로 CDMA 커버리지를 확대하고 7월에는 울산, 8월은 대구 경북, 9월은 부산, 경남과 광주 전남 지역으로 확대했다. 결과적으로 9개월만에 전국 주요 도시에 인구대비 약 79%에 이르는 CDMA 전국 커버리지를 달성했다.

CDMA 서비스 요금은 비쌌다. 우선 이동전화 판매점에서 디지털 단말을 구입해야 했다. LG정보통신 프리웨이 LDP-200 가격은 72만원선. 기본료 2만7천원. 10초당 25원의 통화료가 부과됐다. 15초를 이용하면 20초로 인정해 50원이 부과되는 방식이다.

단말뿐만 아니라 서비스 자체도 고가였기에 한국이동통신뿐만 아니라 신세기통신 역시 보급에 속도를 높이기 위해 직접 판매 활로를 모색했다. 정보통신부에 CDMA 단말기를 직접 판매하고자 ‘유통업겸업허가신청서’를 제출했다. 이 신청서는 1996년 1월 15일 정보통신부로부터 1년간 한시적용이라는 허가를 받았다. 기존 단말기 유통업체와의 관계 등을 고려한 조치였다.

SK텔레콤은 세계 최초 CDMA 상용화라는 성과를 이룩했다 [사진=SKT]

◆ CDMA 디지털 이동전화 최초 ‘축배’

성공적인 CDMA 상용화를 마무리한 한국이동통신은 1996년 3월 28일 세계 최초 CDMA 이동전화 상용화 성공 기념행사를 개최했다. 서울 힐튼호텔에서 개최한 이 행사는 최종현 SK그룹 회장뿐만 아니라 이수성 국무총리, 이석채 정보통신부 장관, 내외 귀빈과 법인, 우수고객 등 1천여명이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손길승 부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CDMA 방식 디지털 이동전화 서비스의 상용화 성공을 계기로 향후 한국이동통신은 차세대 통신 서비스와 멀티미디어 세계를 선도해나가겠다”고 말했다.

축사로는 이석채 정보통신부장관이 나서 “순수한 국내 기술로 상용화에 성공한 CDMA 디지털 이동전화 서비스는 국내 정보통신 서비스가 세계 시장에서 뒤지지 않도록 하는 기폭제가 될 것”이라고 추켜 세웠다.

또한 CDMA 세계 최초 공로를 인정해 윤동윤 전 체신부 장관과 경상현 전 정보통신부 장관 등 국무위원과 김광호 삼성전자 부회장, 정장호 LG정보통신 사장, 김주용 현대전자 사장 등 파트너사들, 조기영 고객 대표를 포함한 24명에게 감사패가 전달됐다.

특히, CDMA 최초 상용화를 사선에서 진두지휘했던 서정욱 한국이동통신 사장은 같은해 4월 8일 금탑산업훈장을 수훈했다. 서 사장은 “미지의 세계에 도전하는 어려운 연구에 몰두해 온 젊은 과학자들에게 영광을 돌리며, 세계에서 처음으로 CDMA 방식 이동전화 서비스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이동통신 기술과 서비스의 광복이나 마찬가지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기념 행사 이후 한국이동통신은 4월 12일 서울 수도권 CDMA 커버리지 확대를 통해 11월만인 4월 23일 가입자 1만명을 돌파했으며, 단말 수량이 부족할 정도로 폭발적인 가입자를 감내해야 했다. 식별번호인 011을 활용한 ‘디지털 011’ 브랜드는 1997년 속도를 보다 강조한 ‘스피드 011’로 전환되면서 고객의 대표적 상징으로 기록됐다.

▶ 다시쓰는 이동통신 연대기 목차

1편. 삐삐·카폰 이동통신을 깨우다

① '삐삐' 무선호출기(上)…청약 가입했던 시절

② '삐삐' 무선호출기(中)…‘삐삐인생' 그래도 좋다

③ '삐삐' 무선호출기(下)…’012 vs 015’ 경합과 몰락

④ '카폰' 자동차다이얼전화(上)…"나, 이런 사람이야!"

⑤ ‘카폰’ 자동차다이얼전화(下)…’쌍안테나' 역사 속으로

2편. 1세대 통신(1G)

⑥ 삼통사 비긴즈

⑦ 삼통사 경쟁의 서막

⑧ 이동전화 첫 상용화, ‘호돌이’의 추억

➈ 이동통신 100만 가입자 시대 열렸다

⑩ 100년 통신독점 깨지다…'한국통신 vs 데이콤’

3편. 제2이동통신사 大戰

⑪ 제2이통사 大戰 발발…시련의 연속 체신부

⑫ 제2이통사 경쟁율 6:1…겨울부터 뜨거웠다

⑭ ‘선경·포철·코오롱’ 각축전…제2이통사 확정

⑮ 제2이통사 7일만에 ‘불발’…정치, 경제를 압도했다

⑯ 2차 제2이통사 선정 발표…판 흔든 정부·춤추는 기업

⑰ 최종현 선경회장 뚝심 통했다…’제1이통사’ 민간 탄생

⑱ 신세기통신 출범…1·2 이통사 민간 ‘경합’

4편. CDMA 세계 최초 상용화

⑲ ‘라붐’ 속 한 장면…2G CDMA 첫 항해 시작

⑳ 2G CDMA "가보자 vs 안된다"…해결사 등판

㉑ CDMA 예비시험 통과했지만…상용시험 무거운 ‘첫걸음’

㉒ 한국통신·데이콤 ‘TDMA’ vs 한국이통·신세기 ‘CDMA’

㉓ 한국이동통신 도박 통했다…PCS 표준 CDMA 확정

/김문기 기자(moon@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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