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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KT 2G 종료 '삼고초려' [김문기의 아이씨테크]


[다시 쓰는 이동통신 연대기] 11부. 4G LTE 시대 개막

우리나라가 정보통신강국으로 성장하기 위한 첫발인 한국전기통신공사(KT), 한국데이터통신(LGU+), 한국이동통신서비스(SKT)가 설립된 지 꼬박 40여년이 흘렀습니다. 그간 이동통신 역시 비약적으로 성장해 슬로우 무버에서 패스트 팔로우로, 다시 글로벌 퍼스트 무버로 도약했습니다. 5G 시대 정보통신 주도권 싸움은 더 격렬해졌고, 다시 도전에 나서야할 절체절명의 시기를 맞이했습니다. 과거는 미래를 비추는 거울입니다. 부족하지만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이동통신 연대기를 다시 시작합니다. 재밌는 에피소드가 담긴 독자의 제보도 받습니다 [편집자주]

LG전자 핫라인폰 2G폰 [사진=LG전자]
LG전자 핫라인폰 2G폰 [사진=LG전자]

[아이뉴스24 김문기 기자] LTE 서비스를 위한 가용 주파수가 마련된 SK텔레콤, LG유플러스와 달리 KT는 2G 서비스를 운용 중인 1.8GHz 대역에 대한 정리가 필요했다. 즉, LTE 상용화를 위해서는 2G 종료가 불가피했다. 만약 주파수 경매를 통해 신규 주파수를 획득한다고 하더라도 경쟁사 대비 늦을 수 있다는 불안감이 팽배했다.

이에 따라 경쟁사가 지목한 LTE 상용화일인 2011년 7월 1일에 맞춰 KT는 2G 종료 수순을 밟아 나갔다. 가시적으로 2G 종료가 선언된 떄는 2011년 4월 19일 KT가 방송통신위원회에 2G 서비스 종료 신청서와 이용자 보호 대책을 제출하면서부터다. 요약하자면 6월 30일 2G 서비스를 종료하고, 그에 따른 혜택을 주겠다는 방책이었다.

KT가 2G 서비스를 종료하기 위해서는 전기통신사업법 제19조에 따라 방통위로부터 기간통신사업 폐지승인을 받아야 한다. KT가 방통위에 2G 종료 승인신청을 해 2G 종료 계획을 승인 받은 뒤, 이용자 보호조치 등 완료 신고를 하고, 이에 대해 방통위가 서비스 중단 승인을 하는 절차를 거쳐 2G 서비스를 최종 중단하게 되는 절차를 밟는다.

방통위는 법률과 통신 등 전문가와 소비사단체 등 자문단을 구성해 2차례에 걸친 의겸수렴에 나섰다. 그 결과 방통위는 6월 24일 전체회의를 개최해 2G 서비스 폐지를 유보하기로 의결했다. 5월말 기준 2G 서비스 가입자는 81만명으로 종료하기에는 너무 많은 고객이 이용 중이었기 때문. 게다가 통지기간도 짧았다는 점에 발목을 잡혔다. 즉, 사업자 편의를 위함일뿐 고객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없다는 판단이다.

결국 KT는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가 7월 1일 LTE 첫 전파를 쏠 때 함께하지 못하게 됐다.

◆ 절치부심 재도전

LTE 첫 상용화 기회를 놓친 KT는 두 번째 도전에 나섰다. 방통위에 7월 25일 2G 서비스 폐지 승인을 신청했다.

7월 기준 2G 서비스 가입자는 42만명으로 약 2배 가량이 줄어 들었다. 종료 시점은 LTE 단말이 출시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9월 30일로 잡았다. 이 시점은 KT 입장에서 경쟁사와 같은 출발선에 설 수 있는 마지노선이었다.

2G 종료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KT는 주파수 경매를 통해 또 한번 고배를 마시면서 LTE 사업에 적신호가 켜졌다. 1.8GHz 주파수 20MHz 대역폭 경쟁에서 SK텔레콤에 밀려 입찰을 포기하게 된 것. 만약 KT가 이 경매에서 승리했다면, 비록 LTE 상용화에서는 늦었을지 몰라도, 가장 좋은 품질의 광대역 LTE 서비스를 할 수 있는 가장 빨리 실행할 수 있는 이통사로 거듭날 수 있었다.

KT의 시련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방통위가 9월 19일 전체회의에서 2G 종료를 다시 한번 유보하기로 의결했다. 2G 서비스 종료에 따라 11월에라도 LTE를 상용화하고자 했던 KT의 희망은 꺾일 수밖에 없었다. 다시 폐지 신청을 하더라도 방통위에서 이를 검토할 최소 2개월의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 미래 불확실성을 점점 더 커졌다.

당시 이창희 방통위 과장은 “사업자와 이용자 양쪽의 이해를 균형 있게 고려해야 하는 입장"이라며 "궁극적으로는 국민 권익을 보호하라고 정부가 있는 것 아니냐”고 설명했다. 국내외 기존 사례를 보더라도 이렇게 빠르게 가입 전환을 서둘렀던 경우도 없고, 적어도 2~3년 걸려 전환작업이 필요했다는 것. KT 일정을 조정한 것도 현재 이용자 입장에서는 최소 2개월의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게 방통위의 판단이었다.

그 사이 경쟁사인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는 첫 LTE 스마트폰을 출시했다. 가입자는 하루가 다르게 늘어갔다. 연내 100만명 돌파도 예상됐다. WCDMA(3G)와 와이브로, 와이파이 등 3W 전략을 구사하기는 했으나 LTE 등쌀에 밀렸다.

게다가 SK텔레콤은 확보된 1.8GHz 주파수 대역에 대한 투자를 단행하면서 2012년 전국망뿐만 아니라 LTE 고도화에도 나설 수 있었다. LG유플러스는 3G 사업에 뛰어들지 못했던 울분을 LTE에서 토해내고 있었다. 그만큼 사활을 걸고 앞서 나갔다. 바람 앞에 등불은 KT쪽으로 점점 더 가까이 다가갔다.

2G 종료는 시점이 불명확할뿐 예견된 일이었기 때문에 가입자는 빠르게 전환됐다. 물론 그 전환 속도는 KT가 좀 더 가속화시키기도 했다. 당시 2G 소비자들은 KT의 가입자 전환 요청 때문에 불만을 터트리기도 했기 때문. 심지어는 직접 고객을 찾아 응대했다는 소식이 인터넷상에 빠르게 퍼져 나갔다. 각각 이런저런 혜택을 주겠다는 사례들이 속속 입소문을 탔다.

그도 그럴 것이 방통위가 2번째 유보를 통보하면서 이용자 통보와 가입자 전환 추진 등이 이뤄져야만 승인이 가능하다고 하달했기 때문이다. 방통위는 유예기간 경과 여부와 KT의 가입 전환 노력 등을 검토해 최종 승인여부를 결정하겠다고 강조했다. KT가 온오프라인을 가릴 것 없이 2G 이용자를 찾아야 하는 이유였다.

◆ 2G 종료 삼세판

11월 21일 KT는 3번째 2G 서비스 이용 종료 신청을 방통위에 제출했다.

어느 정도 종료에 대한 조건이 내려졌기에 방통위의 판단은 빨랐다. 23일 전체회의를 개최한 방통위는 KT의 2G 종료 신청을 승인하기로 의결했다. 당시 KT 2G 가입자는 11월 21일 기준 15만9천명으로 줄어든 상태였다. 이에 따라 방통위는 이용자 통지 기간을 둬 14일 동안 KT에게 2G 고객을 대상으로 우편 안내 등 최소한 2가지 방법을 활용해 종료 사실을 알릴 것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방통위의 즉각적 판단은 국내외 사례와 비교했을 때 적은 2G 가입자수와 지난 3월부터 가입자 전환을 위한 KT 노력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물론 경쟁사 대비 늦은 LTE 도입 역시 영향을 미쳤다.

KT는 "3G로 전환하지 못한 2G 이용자가 서비스 종료에 불편을 겪지 않도록 다양한 보호 방안을 시행할 예정이다”라고 그간의 소회를 밝혔다.

이후 KT는 2G 이용자 보호방안으로 6개월 동안 6개월 동안 KT 3G 전환 지원 프로그램 연장 운영하고, 7일동안 3G 임대폰 무료 제공 및 국내통화료 미과금, 6개월 동안 2G 번호 보관 서비스 등을 운영치로 했다. 정확한 2G 서비스 종료 시점은 해를 넘긴 2012년 8월 0시 이후부터로 점찍었다.

2G 종료 승인은 KT에게는 또 다른 도전의 시작이었다. 우선 2G 가입자들의 3G 전환이 반드시 KT를 통해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었다. 고객이 원한다면 SK텔레콤이나 LG유플러스로 변경할 수 있었다. 더욱이 경쟁사는 이미 LTE 서비스를 통해 한발 더 나아간 상태였기 때문에 경쟁상 불리했다.

게다가 고객의 반대가 만만치 않았다. 2G 가입자들은 KT 2G 서비스 종료를 반대하며 서울지방행정법원에 집행정지를 신청했다. 그 수는 대략 900여명으로 적기는 했으나 법원판결 여하에 따라 2G 종료가 다시 막히기에는 충분했다.

12월 7일 서울중앙행정법원은 KT가 아닌 2G 고객의 손을 들어줬다. 이렇게 되면 방통위가 승인한 2G 서비스 종료에 대한 집행이 정지된다. LTE 간담회까지 계획했던 KT로서는 난감한 상황에 놓인 것. KT는 즉각 "서울행정법원의 결정은 0시로 예정된 2G 종료 시행을 잠정 보류한 것으로, 2G 서비스 종료 자체를 중단하라는 것은 아니다””라며 항고에 나설 것이라 밝혔다.

이에 따라 KT는 12월 8일 2G 서비스 종료와 LTE 서비스를 공개하려던 기존 계획 대신 항소에 나설 수밖에 없게 됐다.

◆ KT 2G 종료…LTE 시작

또 다시 LTE로의 여정이 가로막힌 KT는 망연자실했다. 그렇다고 해서 가입자를 경쟁사에 눈 뜨고 빼앗길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역대 최초로 3G나 5G에서도 볼 수 없었던 프로모션이 시작됐다. 시장 초기 상위 세대 단말로 하위 세대 이동통신에 가입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 LTE 단말로 풀린 삼성전자 ‘갤럭시노트’와 ‘갤럭시S2 HD LTE’, 팬택 ’베가 LTE’ 등을 3G 요금제로 가입할 수 있게 한정 운영했다.

LTE폰으로 3G 요금제를 가입할 수 있는 곳은 KT가 유일했다. 전국망이 완성되지 않은 상태로 가격이 높은 LTE를 택하기 보다는 3G 무제한 데이터를 원했던 고객들의 마음이 들썩거렸다. KT는 향후 LTE 서비스 상용화에 따라 LTE 요금제로 전환할 수 있도록 해줬다. 대대적 요금 및 단말 혜택도 준비했다.

사실상 조삼모사식 정책이었기는 하나 KT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다음 세대 가입자를 끌어 모으기도 벅찬 상태에서 이전 세대 가입자를 유치하는 것은 영업상 향후 리스크로 작용할 것이 분명했으나 앞뒤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마침내 2011년 12월 26일 서울고등법원은 KT 2G 가입자 900여명의 2G 서비스 폐지를 승인한 방통위의 결정에 대한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의 항고심에서 원심을 취소하고 신청을 기각했다. 즉, 2G 서비스 종료가 위법하지 않다고 판단한 것.

KT는 환영의 입장을 밝혔다. "서울고등법원의 이번 항고심 결정은 국가 자원인 주파수의 효율적 활용 및 차세대 통신망 투자 활성화를 촉진해 고객들에게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국내 IT 산업 발전에 도움이 되는 바람직한 결정이다”라고 화답한 KT는 2012년 1월 3일 오전 10시 서울을 시작으로 2G 서비스를 단계적으로 종료하겠다고 밝혔다.

2012년 1월 3일. SK텔레콤 LTE 가입자 70만명. LG유플러스 LTE 가입자 50만명. 120만명의 LTE 시장에 KT가 참전을 선언했다. 타사보다 늦었기 때문에 대대적 공세가 예상됐다. 기존 2G 주파수가 LTE로 전환됐기 때문에 2G 종료는 서울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우선적으로 이뤄진 후 지방으로 퍼져 나갔다.

그로부터 3개월 후인 2012년 3월 19일 오전 10시. KT가 2G 서비스 완전 종료를 알렸다. 당시 남아있던 2G 서비스 가입자는 2만여명. 쓰던 번호만 유지할 수 있었다.

이 날 이석채 KT 회장은 올레경영 2기 출범식에 나서 “예전에 서울에는 전차가 다녔는데 자동차가 활성화되면서 운송수단으로서의 메리트를 잃었다. 전차가 달리던 곳을 버스전용차로로 하고 지하철을 건설하자고 해서 건설했다. 일부 사람들이 옛날 전차를 계속타고 싶다고 하면 어떻게 해야할까?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지만 분명 기존보다 혜택은 거 커질 것이다. 2G 종료는 이러한 과정 속에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회고했다.

▶ 다시쓰는 이동통신 연대기 목차

1편. 삐삐·카폰 이동통신을 깨우다

① '삐삐' 무선호출기(上)…청약 가입했던 시절

② '삐삐' 무선호출기(中)…‘삐삐인생' 그래도 좋다

③ '삐삐' 무선호출기(下)…’012 vs 015’ 경합과 몰락

④ '카폰' 자동차다이얼전화(上)…"나, 이런 사람이야!"

⑤ ‘카폰’ 자동차다이얼전화(下)…’쌍안테나' 역사 속으로

2편. 1세대 통신(1G)

⑥ 삼통사 비긴즈

⑦ 삼통사 경쟁의 서막

⑧ 이동전화 첫 상용화, ‘호돌이’의 추억

➈ 이동통신 100만 가입자 시대 열렸다

⑩ 100년 통신독점 깨지다…'한국통신 vs 데이콤’

3편. 제2이동통신사 大戰

⑪ 제2이통사 大戰 발발…시련의 연속 체신부

⑫ 제2이통사 경쟁율 6:1…겨울부터 뜨거웠다

⑭ ‘선경·포철·코오롱’ 각축전…제2이통사 확정

⑮ 제2이통사 7일만에 ‘불발’…정치, 경제를 압도했다

⑯ 2차 제2이통사 선정 발표…판 흔든 정부·춤추는 기업

⑰ 최종현 선경회장 뚝심 통했다…’제1이통사’ 민간 탄생

⑱ 신세기통신 출범…1·2 이통사 민간 ‘경합’

4편. CDMA 세계 최초 상용화

⑲ ‘라붐’ 속 한 장면…2G CDMA 첫 항해 시작

⑳ 2G CDMA "가보자 vs 안된다"…해결사 등판

㉑ CDMA 예비시험 통과했지만…상용시험 무거운 ‘첫걸음’

㉒ 한국통신·데이콤 ‘TDMA’ vs 한국이통·신세기 ‘CDMA’

㉓ 한국이동통신 도박 통했다…PCS 표준 CDMA 확정

㉔ ‘디지털·스피드 011’ 탄생…세계 최초 CDMA 쾌거

㉕ ‘파워 디지털 017’ 탄생…신세기통신 CDMA 상용화

5편. 이동통신 춘추전국시대 개막

㉖ 제3 이동통신사 찾아라…新 PCS 선정 개막

㉗ ‘LG텔레콤 vs 에버넷’…‘한솔PCS vs 글로텔 vs 그린텔’

㉘ PCS 사업자 확정…‘한국통신·LG·한솔’

㉙ ‘016’ 한국통신프리텔·‘018’ 한솔PCS·‘019’ LG텔레콤

㉚ ‘PCS 경합’…64세 어르신도 번지점프 했다

㉛ 이동통신 5사 ‘각자도생’…춘추전국시대 개막

6편. 이동통신 혼돈의 세기말

㉜ 3G IMT-2000 향한 첫 항해 시작

㉝ 이동통신 1천만 돌파했으나 ‘풍요속 빈곤’…新 브랜드 ‘SKY’ 탄생

㉞ 스무살의 011 TTL·사랑은 움직이는 거야·묻지마 다쳐

㉟ ‘SK텔레콤+신세기통신’ 인수합병…사상 첫 점유율 낮추기

㊱ '한국통신프리텔+한솔PCS' 인수합병…춘추전국→삼국정립

7편. 3세대 이동통신(IMT-2000)

㊲ ‘SK·한통·LG·하나로’ IMT-2000 도전…춤추는 정부

㊳ 하나로통신 007 작전…’정부·재벌’ 허 찔렸다

㊴ SK텔레콤·한국통신 IMT-2000 입성…LG·하나로 ‘탈락'

㊵ LG텔레콤 vs 하나로통신…동기식 IMT-2000 주인 찾았다

8편. 3G 시대 개막

㊶ IMT-2000 표류…CDMA2000 비상

㊷ 연기 또 연기…3G WCDMA 초라한 등장

㊸ '011·016·019→010 통합' 논란…번호이동 패닉

㊹ 유선망 2위 사업자 ‘파워콤’ 인수전…하나로 vs 데이콤 ‘격돌’

㊺ 휴대인터넷 세상 열겠다…와이브로 출항기

9편. 3G 삼국정립

㊻ SKT ’T 브랜드’ 탄생 vs KTF ”쑈(SHOW)를 하라”

㊼ “악법도 법이다”…LGT IMT-2000 사업권 반납

SK텔레콤, 하나로 품다…유무선 통합 1위 도전

㊾ KT-KTF 합병…이석채 회장 통합KT 시대 개막

㊿ ‘LG 삼콤사’ 텔레콤·데이콤·파워콤 = LGU+ 통합 출범

10편. 아이폰 쇼크

(51) ‘이통사 중앙집권화’…韓 단일 표준 플랫폼 ‘위피’ 몰락

(52) ‘아이폰’…韓 3년을 못봤다

(53)’아이폰' 스마트폰 깨우다…옴니아·베가·옵티머스, 그리고 갤럭시

(54) 모바일 OS 잡아라, 심비안 하락…안드로이드·iOS 부상

(55) 3G 데이터 무제한 시대…”무적칩을 아시나요”

(56) ‘와이파이·블루투스’ 재조명…3G와 ‘동반성장’

11편. 4G LTE 시대 개막

(57) SKT·LGU+ 국내 최초 LTE 상용화…과도기 ‘설왕설래'

(58) “LTE를 사수하라” 국내 첫 주파수 경매…’승자의 저주’

(59) ‘별정4호’…알뜰폰 비긴즈

/김문기 기자(moon@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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