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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룡 후보작이 말하는 여성영화의 현실


제작 규모도 표본도 적은 女주연 영화, 환경 아쉬운 이유

[조이뉴스24 권혜림 기자] 매해 열리는 영화 시상식의 후보작 리스트는 그해 높은 완성도를 보여준 영화들의 집합이다. 한 해 개봉한 영화들 중 각 부문에서 빼어난 성과를 이룬 작품들을 선별하는 과정이 곧 수상 후보작들을 추리는 일이기도 하다. 해당 부문 후보작들의 면면은 그 해 한국영화가 각 부문에서 얼만큼의 성장과 성취를 이뤘는지 보여주는 지표다.

때로는 하나의 지점으로 귀결되는 후보작들의 특징이 영화계 각 부문의 고질적 문제들을 의도치 않게 드러내기도 한다. 지난 23일 열린 제39회 청룡영화상 시상식은 한국영화계 여성 주연 영화의 부재가 사후적으로 드러난 예였다.

이날 시상식에서 주연상 트로피를 두고 경합한 배우들은 남녀 부문 각 5명이었다. 중복된 작품으로 후보에 오른 배우가 없었으니 총 10명의 배우들이 주연상 부문에서 경쟁했다. 남우주연상 부문에서는 수상자 김윤석('1987')을 비롯해 하정우('신과함께-죄와 벌'), 이성민('공작'), 주지훈('암수살인'), 유아인('버닝')이 후보에 올랐다. 여우주연상 부문에서는 김태리('리틀 포레스트'), 김희애('허스토리'), 이솜('소공녀'), 박보영('너의 결혼식'), 한지민('미쓰백')이 트로피를 노렸다. 여우주연상은 '미쓰백'을 통해 강렬한 연기 변신을 선보인 한지민에게 돌아갔다.

흥미로운 것은 주연상 남녀 각 부문의 후보작들이 보이는 체급 차이다. 영화계에 관심이 큰 관객들이라면 단번에 알아차렸을 법하다. 물론 '1987'에는 김윤석 외에도 김태리가, '버닝'에는 유아인 외에도 전종서가 주연으로 출연했으니 이들 영화를 각각 '남성 주연 영화' '여성 주연 영화'라고 기계적으로 분류하긴 어렵다. 하지만 두 영화 모두 주조연 인물 중 여성 캐릭터의 비중이 적은 작품인 것은 분명하다.

여우주연상 후보작 중 가장 큰 제작비가 투입된 작품은 박보영의 '너의 결혼식'(이하 총제작비, 약 50억 원)이었다. 김태리의 '리틀 포레스트'가 약 35억 원, 김희애의 '허스토리'가 약 25억 원으로 제작됐다. 이솜을 후보에 올린 독립영화 '소공녀'에는 3억5천만 원 가량, 수상자 한지민의 영화 '미쓰백'은 16억 원 가량이 투입됐다.

이들 영화의 제작비를 합산하면 채 150억 원이 되지 않는다.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배우들의 출연작 중 가장 큰 제작비가 투입된 '공작'(제작비 약 190억 원)이나 '신과 함께-죄와 벌'(제작비 약 180억 원) 중 한 편도 완성할 수 없는 수준이다. '버닝'과 '암수살인'은 각 80억 원 가량의 제작비로 완성됐다. 올해 청룡 남우주연상 후보작 중 가장 적은 수준의 제작비가 투입된 셈이다. 하지만 올해 여우주연상 후보작 중 어느 영화도 80억원 수준의 높은 제작비를 유치하진 못했다.

제작 규모가 영화의 완성도, 혹은 주연 배우의 연기력을 보장하는 자원이 될 수는 없다. 하지만 자본은 산업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는 지표가 되기도 한다. 지난 한 해 한국영화계에서 만들어진 여성 주연 영화들의 산업적 입지가 남성 주연 영화들 대비 얼마나 열악한지는 간단히 알 수 있는 셈이다.

한국영화계 여성 주연 영화가 상대적으로 적다는 사실은 이미 수 년 전부터 지적돼 온 고질적 문제였다. 상업영화계에서 여성 주연 영화의 수가 적은 배경으로 가장 많이 언급되는 데이터는 흥행 성과다. 흥행작들의 대부분이 남성 주연 영화들이라는 이야기다. 파고들수록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도돌이표 싸움 같지만, 여성 주연작들의 표본과 자본이 애초에 턱없이 적다는 사실에 반기를 들긴 어렵다. 남성 주연 영화들과 흥행 퍼센테이지를 비교하는 것은 시작부터 그 결론이 정해진 무의미한 논쟁이다.

한지민은 올해 '미쓰백'으로 제38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여우주연상, 제3회 런던동아시아영화제 여우주연상, 제39회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까지 3관왕의 영예를 안았다. 그는 수상자로 호명되자마자 눈물을 쏟기 시작했다. 무대에 오르기 전부터 울기 시작한 한지민의 소감에서는 저예산 안에서 여성 감독과 여성 주연에 의해 한 편의 영화가 만들어지기까지 겪은 녹록치 않은 시간들이 녹아있었다.

한지민은 "배우에겐 새로운 캐릭터에 도전할 수 있는 시간, 그리고 그 시간 동안 겪는 어려움과 고충이 감사하게 다가오지만 이 영화가 세상에 나오기까지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있었던 어려움이 제게 큰 무게감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고 고백했다. 이어 "그 무겁고 힘들었던 시간 끝에 제가 이 자리에 설 수 있는 것은 '미쓰백'이 가진 영화의 진심 덕 같다. '미쓰백'으로 배우로서 어떤 욕심보다는 우리 사회 어둡고 아픈 면을 영화를 통해 보여주려는 마음이 컸다"며 "같은 마음으로 영화를 함께 응원해주고 힘 실어 준 모든 분들께 이 상이 보답이 되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이날 시상식을 진행한 김혜수, 함께 후보에 오른 김희애 등 여성 선배 배우들을 향해 특별한 감사의 말을 덧붙인 것 역시 눈길을 끌었다. 한지민은 "늘 본보기가 되어주는 김혜수 선배가 늘 응원의 말을 해주신다. 감사하다. 함께 후보에 오른 김희애 선배께도 감사하다"고 말했다.

세계 3대 영화제로 불리는 칸(전도연)과 베니스(강수연, 문소리), 베를린(김민희)에서 연기상의 영예를 안았던 한국 배우들은 공교롭게도 모두 여성이었다. 한국영화계의 여성 배우 자원은 꽤 훌륭했던 셈이다. 흔한 말이지만 관객은 좋은 영화를, 좋은 연기를 알아본다. 여성 주연 영화의 제작 터전이 넓어지는 일은 관객에게도 즐거움이 될 법하다.

조이뉴스24 권혜림기자 lima@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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