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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결산]프리미어12 우승, 3인의 숨은 공헌자① 이순철


"선수들에게 내가 배웠다"…편안한 분위기 이끌며 한국 우승 밑거름

[정명의기자] 올 시즌 한국 야구에는 여러가지 환희의 순간이 있었지만 그 중 으뜸은 처음으로 열린 'WBSC 프리미어12'에서 우승을 차지한 것을 꼽을 수 있다. 당초 전력이 강하지 않은 것으로 평가됐던 대한민국 대표팀은 예상을 깨고 기적같은 우승을 차지하며 대회 초대 챔피언으로 기록됐다.

대회 MVP를 차지한 뒤 메이저리거가 된 김현수(28, 볼티모어), 주장을 맡아 팀을 한데 묶은 정근우(33, 한화), 고비마다 결정적 활약을 해낸 이대호(33), 마운드의 마당쇠 역할을 한 차우찬(28, 삼성), 한일 준결승전 대역전극의 시발점이 됐던 오재원(30, 두산) 등이 우승의 주역들이다. 물론 사령탑으로서 대표팀을 지휘했던 명장 김인식(68) 감독의 용병술 역시 큰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대회 기간 내내 묵묵히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한국의 우승에 힘을 보탰던 이들도 있다. 이순철(54) 대표팀 타격코치(이하 이 코치)도 그 중 한 명이다. 이 코치는 선수들이 최대한 좋은 분위기에서 훈련과 경기에 임할 수 있도록 모든 힘을 쏟았다.

대회 후에도 이 코치는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12월 들어서는 각종 시상식에 참석했고, 연말을 맞아 여러 모임에도 얼굴을 내밀고 있다. 그런 이 코치를 12월 어느날 서울 상수동의 한 카페에서 만나 프리미어12의 감동을 다시 한 번 떠올리는 시간을 가졌다.

◆꿈에도 상상 못한 일본과 준결승전 역전승 "이런 경기도 다 있구나"

-꼭 여쭤보고 싶은 것이 하나 있었다. 한일전이 끝난 뒤 그라운드로 나와 애써 웃음을 참는 듯한 표정이 보였는데.

"선수들도 세리머니를 크게 하지 않는 분위기였는데, 나도 기쁨을 표현할 수 없었다."

-한일전 역전 승리 후 어떤 기분이었나.

"꿈에나 상상을 했겠는가. 이런 야구도 있구나 싶었다. 일본 투수들이 만만치가 않은데, 그런 점수를 뒤집었다는 것이 놀라웠다. 그동안 우리가 당한 경기는 있었어도, 그렇게 통쾌하게 이길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김인식 감독님도 감독 생활 중 가장 짜릿했던 경기라고 하시더라."

-9회초가 시작될 때 역전을 어느 정도나 생각했었나.

"오타니가 내려가면 승산이 있겠다고는 생각했다. 예선 경기에서 일본에 고전했을 때도 오타니가 내려간 뒤 9회말에 찬스를 잡았었으니까, 그래도 우리 선수들이 할 수 있을 것이라 봤다. (일본 벤치가) 오타니를 의외로 빨리 뺐다는 생각도 했다. 어려운 볼을 치다가 상대적으로 스피드도, 각도도 칠 만한 공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대호의 말을 빌리면 오타니가 평소보다 시속 4~5㎞는 빨리 던졌다고 하더라. 리그 경기 때는 140㎞후반대, 150㎞, 이 정도로 던졌지 계속해서 160㎞를 던지지는 않았다고 했다. 그런데 대표팀에 와서는 계속 160㎞로 던졌으니 피로했을 수도 있다. 우리가 모르는 투구수 제한이 있었을 지도 모른다."

-그럼 오타니도 한일전을 의식해 전력투구를 했다는 뜻인가.

"그렇다. 특히나 3~5번 타순 김현수, 이대호, 박병호를 상대할 때는 '억, 억' 소리가 덕아웃까지 들릴 정도로 힘을 줘서 던지더라."

-미국과의 결승전도 은근히 부담이 됐을 것 같은데.

"다행히 예선에서 우리한테 잘 던졌던 스프루일을 멕시코와의 4강전에 써버렸다. 그 친구가 가장 까다로운 투수였다. 처음에는 걱정을 했는데, 4강전에서 일본을 이기고 나니까 기세를 탔다. 박병호의 3점 홈런이 나온 것이 결정타가 됐다."

-사실 대표팀 전력이 약하다는 평가가 많았다.

"약했다. 할 만한 선수들이 많이 빠졌다. 걱정도 했다. 그래도 선수들이 흐트러지지 않고 가진 힘 이상을 내줬다. 김인식 감독님의 리더십이 있었고, 정근우와 이대호 등 고참 선수들이 팀을 전체적으로 잘 끌어줬다. 그러다보니 큰 어려움 없이 좋은 경기력이 나타났다."

-특히 투수력이 약하다는 평가가 있었기 때문에 타격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을 것 같다. 부담스럽지 않았나.

"사실 타격도 그렇게 강하지는 않았다. 2009년 WBC 때도 타격코치를 했었는데, 그 때가 타격은 가장 강하지 않았나 싶다. 이번에는 이대호의 손목 부상도 있었고, 박병호도 대표팀 경험이 많지 않았다. 박병호는 대회 초반에는 조금 당황을 하기도 했다. 이대호, 김현수가 꾸준히 대표팀에서 뛰었지만 나성범, 허경민도 경험이 부족했다."

-도미니카공화국과의 예선 2차전 6회까지 점수가 나지 않았다. 일본과의 개막전 영봉패에 이어 15이닝 연속 무득점이었는데, 속이 좀 타지 않았나?

"그 때 이대호의 홈런이 나오지 않았다면 우승은 못했을 것이다. 그 때까지는 선수들이 서로 눈치를 보고 위축된 모습이 있었다. 그런데 홈런이 터지면서 공격이 풀리기 시작했다. 속은 탔지만 내색을 할 수 없어 힘들었다.(웃음)"

◆4번타자 무한신뢰 "일본전은 이대호가 타격코치"

-전체적인 선수단 분위기가 궁금하다. 동기부여가 될 것이 많지 않았던 점이 어려웠을 것 같다.

"앞으로는 KBO에서 충분한 동기부여가 되도록 해줄 필요가 있다. 선수들이 이제 FA도 생각해야 하고, 몸을 사릴 수밖에 없다. 때문에 FA 일수라든가, 재정적인 부분에서도 대표팀에 어느 정도 보상이 필요하다고 본다.

우리가 현역일 때는 애국심만 갖고 국가대표를 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앞으로 WBC, 올림픽 등 계속 국제대회가 이어진다. 선수들이 국가를 위해서 뛸 수 있도록 하는 것도 KBO의 역할이라고 본다."

-대회를 치르면서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무엇인가.

"(대만에서) 먹는 것. 그리고 일정. 알려진 대로 스케줄이 갑자기 바뀌고 그랬던 것."

-그런 가운데서도 우승을 차지했기 때문에 더욱 의미가 있었지 않나 싶다.

"(웃음) 그렇게 알아주면 좋은거고. 우리 내부적으로는 선수들이 희생한 분위기를 깨지 않고, 전력의 최대치를 끌어내는 데 초점을 맞췄다. 고참들이 후배들을 잘 다독이며 팀 분위기를 잘 끌어갔다."

-이대호 선수가 그 역할을 잘 했다고 들었다.

"그렇다. 선수들이 대만에서 밥을 잘 못 먹으니까, 후배들 데리고 삼겹살집 가서 자기가 계산도 하고 그랬다. 그러니 후배들이 잘 따를 수밖에 없지 않겠나. 대표팀에 처음 온 선수들도 많았는데, 선배들의 그런 역할이 큰 힘이 됐다. 감독님도 선수들을 편안하게 해주는 스타일이시고."

-대표팀의 코치는 일반 코치와는 역할이 다를 것 같다.

"선수들을 가르친다기보다 오히려 우리가 배운다는 느낌이 든다. 기술적인 점에서 '아, 저 선수는 저렇게 하고 이 선수는 이렇게 하는구나'라고 비교를 하면서 그 안에서 배우는 것들이 있다.

짧은 시간 안에 무엇인가를 가르친다는 것은 무리다. 좋은 선수들로 어떻게 분위기를 이끌어가느냐가 중요하다. 선수들의 능력치를 최대로 끌어내주는 것이 내 역할이었다."

-경기 중에 선수들을 불러 뭔가를 전달하기도 하던데.

"상대팀 데이터도 전해주고, 내가 보고 느낀 것도 꼭 꼬집어서 얘기한다기보다 전달해주는 정도였다. 일본이랑 할 때는 오히려 (이)대호가 나보다 정보가 훨씬 빠르니까 '오늘은 이대호가 타격코치다'라고 하면서 대호한테 물어보라고 하고, 나는 데이터 전달해주고 그렇게 했다."

-박병호 선수도 초반에 좀 부진했는데.

"부담 갖지 말라고 얘기했다. 미국도 가야 하고 강박관념은 있겠지만, 거기에 짓눌려 있지 말고 편하게 하라고. 물론 본인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대표팀 경험도 많지 않았고, 더 잘해야 한다는 마음도 있었을테고. 거기서는 다독이는 것 말고는 할 게 없었다."

◆대표팀 전임 감독제 찬성, 축구해설은 "축구인들에게 실례"

-전임 감독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현장 감독님들도 전적으로 찬성하고 계신다. 충분히 준비를 하면서 대회에 임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예전에는 현장을 떠나 있는 지도자가 감독이 되면 선수들이 따르지 않는다는 말도 있었지만, 요즘에는 안 그렇다. 다 선배들이라는 생각이 있다.

현장을 떠나 있어도 선수들은 계속 보고 있는 야구인들이 많다. 그러다보니 선수들에 대한 장단점도 충분히 파악하고 있다. 재정적인 문제 때문에 구단들의 협조가 필요한데, 앞으로 풀어가야 할 부분이다."

-얼마 전에는 (인터넷 중계로) 축구 해설도 하셨던데.

"(큰 웃음) 원래 축구를 좋아한다. 초등학교 때는 축구도 했었다. 축구부가 해체되면서 야구를 하게 됐다. 사실 축구인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욕먹을 일이다. 정우영 캐스터가 축구 중계도 같이 하고 있어서 우연한 기회에 같이 하게 됐는데, 힘들기는 했지만 재밌었다.

맨시티와 스완지의 경기였는데, 야야 투레가 활동량이 많더라. 그래서 투레가 골을 넣을 것 같다고 말했는데, 정말 투레가 결승골을 넣어 맨시티가 2-1로 이겼다. 농담 삼아 '맞췄으니까 계속 해야겠다'고 말은 했는데, 축구인들이 뭐라고 하겠나. 이벤트성으로 한 번 해본거다. 축구인들이 야구 해설을 한 번 해보는 것은 어떨까? (웃음)"

-야구 해설에서는 '돌직구 해설'로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다.

"내 나름대로는 그렇게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질책하려는 것은 아니고, 하는 선수도 보는 팬들도 프로야구답게 하자는 측면에서 얘길 그렇게 하는 것이다. 잘하면 또 잘한다고 한다.

당사자들보다는 옆에 있는 사람이 상처를 받을 때도 있다. 상황들을 정확하게 전달하려다 보니 그런 경우가 생기는 것 같다.

야구를 좀 더 정확하게 알고 재밌게 보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야구를 모르시는 분들도 많지 않은가. 새로운 팬들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다. 야구가 우리 생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니까, 그 다음 세대에도 전해지고 발전하는데 디딤돌 역할을 하고 싶다."

-해설 때문에 섭섭해 하는 선수는 없었나?

"있다. 오해가 있으면 얘기를 해달라고 방송에서도 종종 말을 한다. 붙임성 좋은 선수들은 와서 얘길 하는데, 내성적인 선수들은 그렇게 못한다. 뭔가 오해가 있다면 문은 언제든 열려 있다. 대화를 할 수도 있다. 대화를 하려면 나도 공부를 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질문들이 나에게도 피가 되고 살이 된다."

-마지막으로 박병호, 김현수 선수가 메이저리그에서 어떤 활약을 펼칠 지 예상해본다면?

"활약이 어느 정도일 지 점칠 수는 없다. 단, 빨리 메이저리그의 문화에 적응하는 선수가 빨리 좋은 성적을 올릴 것이라고는 말할 수 있다.

문화에 적응하는 것이 중요하다. 갖고 있는 실력은 톱클래스의 선수들이다. 문화에만 적응을 한다면 투수들의 공에 대해서는 경기를 하면서 쉽게 익숙해질 수 있다. 선수간의 관계, 분위기 등에 익숙함을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지 못하면 위축되고, 부진의 늪에 빠질 수도 있다."

조이뉴스24 정명의기자 doctorj@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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