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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전사 월드컵 도전사]⑤1998 프랑스-운은 없었고 스스로에겐 가혹했다


월드컵 첫 선제골 기쁨 잠시, 차범근 감독 대회 중 충격적 경질

[이성필기자] 1996년 아시안컵에서 한국은 이란에 2-6으로 대패하는 치욕을 맛봤다. 1998 프랑스월드컵을 준비해야 하는 대한축구협회 입장에서는 지도력에 쇄신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독일 분데스리가의 전설로 남은 차범근 감독에게 대표팀 지휘봉을 맡겼다.

불세출의 스타 차 감독은 분데스리가의 경험을 바탕으로 치밀한 선수 관리에 나섰고 1997년 열린 최종예선 2차전까지 2연승을 달렸다. 상승세에서 일본 원정을 떠났고 0-1로 뒤지다 서정원과 이민성의 연속골로 2-1로 역전 승리했다. '도쿄대첩'이었다. 기세를 이어간 한국은 6차전까지 5승1무로 조1위를 조기 확정했다.

다만, '함께 프랑스로 가자'는 구호를 내세운 일본과의 홈 7차전에서 패하며 깔끔한 마무리를 하지 못한 것은 아쉬웠다. 그래도 황선홍, 최용수, 서정원 등 특급 공격진들을 잘 조련한 차 감독은 익숙한 유럽에서 열리는 월드컵이라는 환경까지 더해져 큰 기대를 받았다.

프랑스로 향하기 바로 직전, 한국 대표팀에는 찜찜한 일이 벌어졌다. 중국과의 평가전에서 황선홍이 골키퍼와 부딪히며 왼쪽 무릎 전방십자인대 파열 부상을 당했다. 공격진 구성에 빨간불이 켜졌고 황선홍은 본선에서 한 경기도 뛰지 못했다. 현 포항 스틸러스의 지휘봉을 잡고 있는 황선홍 감독은 "그 순간은 정말 말로 하기 어려울 정도로 힘들었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라고 절망적이었던 당시를 돌아봤다.

멕시코, 네덜란드, 벨기에와 E조에 묶인 한국은 리옹 스타드 제를랑에서 멕시코와 1차전을 치렀다. 전반 28분 하석주가 아크 왼쪽에서 얻은 프리킥이 수비벽에 맞고 굴절되며 선제골이 터졌다.

한국의 월드컵 출전 사상 첫 선제골이라는 기쁨도 잠시. 30분 하석주가 왼쪽 터치라인에서 상대 선수에 백태클을 시도하다 퇴장 당했다. 이후 한국은 수적 열세에 시달리며 1-3으로 역전패했다.

네덜란드와의 2차전은 최악이었다. 두들겨 맞았다는 표현이 적당할 정도로 대량 실점했다. 필립 코퀴, 마르크 오베르마스, 데니스 베르캄프, 반 후이동크, 로날드 데 보어에게 줄줄이 골을 허용하며 0-5로 대패했다.

네덜란드전 완패 후 성적 지상주의에 매몰되어 있던 축구협회는 최악의 결정을 내렸다. 차범근 감독을 대회 도중 경질하는 특단의 결정을 내렸다. 감독 경질의 칼을 후려친 이는 당시 기술위원장이었던 조중연 전 축구협회장이었다. 차 감독은 씁쓸하게 중도 귀국했고, 한국은 선장 없이 벨기에와의 3차전을 치렀다.

벨기에전은 투혼의 경기였다. 수비수 이임생이 머리 부상으로 붕대를 감고 나와 뛰는 등 대단한 정신력을 보여줬다. 0-1로 끌려가던 한국은 유상철이 넘어지며 발을 뻗어 동점골을 넣었고 1-1로 비겼다. 1무2패, 승점 1점으로 대회를 마감했다.

프랑스월드컵을 통해 한국은 근시안적인 축구행정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지만 쉽게 개선되지는 않았다. 영웅에서 비난의 화살을 맞고 바닥으로 떨어진 차 감독은 중국 등 밖으로 떠돌며 방황의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하지만, 수확도 있었다. 프랑스 대회를 통해 강력한 인상을 남긴 고종수와 이동국이 K리그 최고의 스타로 자리 잡았다. 이들은 사상 첫 200만 관중 돌파의 힘이 됐다. 결국, 프랑스월드컵은 국가대표팀이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K리그와 유소년 축구가 함께 성장해야 한다는 교훈을 던져줬다. 그리고 한국은 2002년 한일월드컵 준비에 돌입했다.

조이뉴스24 이성필기자 elephant14@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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