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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토' 유태오 "감독 구금에 절망…빅토르최 묘지서 기도"(인터뷰③)


"러시아 매체, 빅토르최 연기해줘 고맙다더라"

[조이뉴스24 권혜림 기자] 배우 유태오가 영화 '레토'의 빅토르최 역을 자신에게 맡겨 준 러시아 명감독 키릴 세레브렌니코프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현재 러시아의 반체제 인사로 몰려 가택구금 중인 키릴 세레브렌니코프 감독은 경쟁부문에 초청된 상황에서도 칸국제영화제에 참석하지 못했지만, '레토' 팀은 칸 레드카펫에서 감독의 이름이 적힌 푯말을 들고 러시아 정부에 항의하는 퍼포먼스를 하는 등 감독을 향한 지지를 표했다.

12일(이하 현지시각) 프랑스 칸에서 열리고 있는 제71회 칸국제영화제의 한국영화진흥위원회 부스에서 올해 영화제의 경쟁부문 초청작 '레토'(Leto, 감독 키릴 세레브렌니코프)의 배우 유태오와 한국 취재진의 라운드 인터뷰가 진행됐다.

'레토'는 러시아 유명 감독 키릴 세레브렌니코프의 신작이다. 러시아의 영웅으로 추앙받은 전설적 록스타이자 한국계 러시아인 빅토르최(유태오 분)가 첫 앨범을 내기까지의 이야기를 그린다. 빅토르최가 인기 뮤지션 마이크(로만 빌릭 분)와 그의 아내 나타샤(이리나 스타르셴바움 분)와의 교류를 통해 성장해나가는 모습을 담는다.

재독 교포 2세인 유태오는 2천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빅토르최 역에 캐스팅됐다. 전혀 구사할 줄 모르던 러시아어 대사를 외워 연기하고 빅토르최의 노래 역시 영화를 위해 직접 소화했다. 그는 무명 배우였던 자신에게 이 배역을 맡겨 준 감독만을 믿고 작업에 임했다. 하지만 감독은 촬영 막바지 러시아 반체제 인사로 몰려 가택구금형을 받았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은 감독밖에 없었어요. 감독이 저를 선택했다는 것 자체에도 눈치가 보일 수 있는 상황이었으니, 감독을 믿을 수밖에 없었죠. 이 연기가 맞는지, 아닌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이었으니까요. 감독이 가택구금을 당했을 땐 머리 잘린 미친 닭이 팔딱 팔딱 뛰어다니는 느낌으로 마음이 너무 힘들었어요. 히스테릭해졌죠. 누굴 믿고 가야 하나 싶기도 했고요."

15년의 무명 생활을 보낸 유태오에겐 자신을 발견해 준 감독이 더이상 현장을 지킬 수 없는 상황이 비극처럼 다가왔다. 그는 "전에도 태국과 베트남에서 영화를 찍었는데, 늘 잘 할 수 있겠다는 가능성만 생각했을 뿐 별로 반응을 얻지 못했다"며 "늘 김칫국만 마시다 힘들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제서야 집중을 받을 수 있는 좋은 역할을 맡았는데, '시네마의 신들이 내 기회와 희망을 또 빼앗아가는구나' 생각했죠. 제가 빛날 수 있는 자리라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됐으니까요. 정말 힘들었어요. '난 평생 무명의 인생으로, 생활 연기자로 살아야 하는 인생일까?' 생각하기도 했어요."

촬영을 이어가던 감독이 가택구금된 첫 날을 유태오는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의 표현대로 한 편의 스파이 영화 같은 이야기였다. 그는 "첫날은 제작 환경이 얼어 있었고, 나는 파파라치 문제로 호텔에 숨어 있었다"고 돌이켰다.

"감독이 잡혀가니, 영화 속 빅토르최를 연기하는 배우가 누구인지에 대한 관심도 생겼어요. 그간은 집중받지 못했었기 때문에, 혼자 스파이 영화를 찍듯 너무 무서웠죠. 그 상황에서 동료 배우들은 SNS를 통해 저항의 목소리를 내고 있었어요. 저 역시 본능적으로 뭔가를 이야기해야 할까 생각했지만, 저는 무명의 배우잖아요. '뭘 말해야 누가 들을까' 싶었어요. 그 때 든 생각은, 감독에게 더 큰 만족감을 주기 위해선 작품에, 작업에, 이 역할에 집중해야겠다는 것이었어요. 이 역할의 퀄리티를 높이면 나중엔 사람들도 제 목소리를 들어줄 수 있겠다고 생각했고요. 두 번째 날에는 빅토르최 묘지에 꽃을 사 들고 다녀왔어요. '좋은 기회가 생겨서 고맙고, 당신을 만족시켰으면 좋겠다. 잘 봐주시면 좋겠고, 잘 마무리되면 좋겠다'고 기도했어요."

하지만 '레토'는 똘똘 뭉쳐 감독의 빈 자리를 메꾸려 노력한 제작진과 스태프, 배우들 덕에 무사히 완성됐다. 세계 영화인들이 주목하는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초청작으로 당당히 호명됐고, 영화제가 중반을 맞이한 현재까진 가장 큰 호평을 얻은 소수의 작품군에 속해 있다.

"러시아엔 아직 영화가 공개되지 않아 내부의 반응은 잘 모르겠지만, (칸에서) 러시아 매체를 대상으로 기자회견을 했을 때 기자들이 제게 먼저 한 말은 '고맙다'는 것이었어요. 빅토르최라는 인물을 연기한다고 할 때 예상할 수 있는 반응은 '네가 감히 우리 영웅을?' 같은 거예요. 러시아 사람이 그를 연기한다 해도 '감히 그를 건드려?'라고 반응했을테고요. 그런데 (러시아 기자들이) '걱정을 많이 했는데, 보고 나니 빅토르최를 잘 그려줘서 너무 고맙다'고, '우리 기억 속 빅토르최가 영화 속에서 잠깐씩 보인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연기한 건 그의 어린 시절이지만, '나중에 빅토르최의 모습이 되겠다'라는 느낌이 들었다고요. 그런 이야기를 해 주니 저도 고마웠어요. 서로 '고마워' '내가 고마워' '아냐, 내가 고마워' '아냐, 아냐, 내가 고맙지' 같은 인사들을 주고받았어요.(웃음)"

한편 올해 칸국제영화제는 오는 19일까지 열린다.

조이뉴스24 칸(프랑스)=권혜림기자 lima@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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