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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10년]충무로 이끈 여풍 3인방③ 외유내강 강혜정 대표


"사람들에게 힘 불어넣어주는 영화 만들고 싶다"

[권혜림기자] 영화 제작사 외유내강의 강혜정 대표는 영화 '부당거래'(2010)와 '베를린'(2013) 등 또렷한 색채의 흥행작들을 내놓은 여성 제작자인 동시에 유명 감독 류승완의 아내, 세 아이의 엄마이기도 하다. 지난 2005년 설립된 외유내강이 내년이면 창립 10주년을 맞으니, 강 대표는 언뜻만 들어도 가볍지 않아보이는 이 세 가지 역할을 9년째 병행해오고 있는 셈이다.

창간 10주년을 맞은 조이뉴스24는 한국 영화계를 누벼 온 여성 제작자들을 만나 그들의 영화 인생을 함께 돌아보고 충무로의 현 주소를 진단했다. 1995년 외화 마케팅 업무를 시작으로 영화계에 뛰어든 지 어언 20년을 바라보는 강혜정 대표는 어느덧 충무로의 중견 제작자가 됐다. '액션 키드' 류승완은 강 대표와 함께 필모그라피를 쌓으며 한국의 대표 액션 감독으로 성장했다. 쏜살같은 세월이다.

그새 변한 건 강 대표와 류 감독 뿐만이 아니다. 영화 제작을 둘러싼 환경들도 쉼 없이 변해왔다. 강혜정 대표는 "순식간에 변하는 것이 영화 시장"이라며 "영화가 개봉하면 흥행 성패는 3일이면 판가름이 난다. 데이터가 세팅되는 방식이 변화하면서 몇 개의 극장에서 며칠 만에 얼만큼의 관객이 드는지 곧바로 알 수 있지 않나"라고 말했다.

"영화 일이라는 것이 꼭 그런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수치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면 가끔은 허무해요. 예매창이 열릴 때를 시작으로 목·금·토·일요일 첫 주 스코어로 영화의 흥행 여부가 드러나니까요. 내가 만들고 싶은 영화를 관객도 정말 즐기고 좋아할지, 그 딜레마 역시 예매가 시작되는 순간까지 해결되지 않죠."

류 감독과 함께 외유내강을 창립한 뒤 강혜정 대표는 '짝패'(2006), '다찌마와리,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2008), '부당거래'(2010, 필름트레인과 공동 제작), '해결사'(2010), '베를린'(2013) 등 다섯 편의 장편 상업영화를 선보였다. 오는 2015년엔 신작 '베테랑'의 개봉도 앞두고 있지만, 시각에 따라선 제작 편수가 많지 않다고도 여길 수 있다. 강혜정 대표 스스로도 "회사를 만든 지 10년이 돼 가는데, 영화를 많이 만들진 못했다"고 말하며 웃어보였다.

하지만 세 아이를 키우며 제작 전선을 지키는 일은 상상 이상으로 고된 일이었을 터. 강혜정 대표는 "영화를 욕심만큼 많이 만들지 못했던 것은 제게 또 다른 인간적인 욕심이 있어서였을 것"이라며 "류승완 감독이 아닌 다른 누구와 결혼을 했다고 해도 제작자로서 이만큼이 나의 최대치라는 것을 안다"고 말했다.

"육아로도 바빴으니, 이만큼 하는 것이 제가 즐기며 일할 수 있는 맥시멈이라는 생각을 해요. 특성 상 류승완 감독과 작업하는 작품들이 대부분인데, 다른 제작자 분들의 경우 신인 감독을 발굴해 한국 영화 시장을 개척해 나가는 일을 하고 계세요. 굉장히 존경할만한 일이죠. 아시겠지만, 영화 업계엔 소문이 많잖아요. 여성 영화인들 역시 그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편이죠. 그런 분야에서 모든 것을 결정하는 자리에 있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에요."

강 대표는 여성 제작자 1세대로 꼽히는 명필름의 심재명 대표를 가리켜 "제가 그 활약을 보고 자란 세대니 롤모델이라 말할 수 있다"며 존경을 표했다. 또 한 명의 출중한 여성 제작자인 영화사집의 이유진 대표에겐 고민을 털어놓고 조언을 구하기도 한다. 강혜정 대표는 "최근 고민이 있어 S.O.S.를 쳤더니 '욕심을 버려야 일이 자연스럽게 풀린다'고 이야기해주시더라. 동시대를 살아가는 여성 제작자 선배들이 큰 힘이 된다"고 말했다.

"사실 여성들은 일과 육아, 직장과 가정에서 무언가를 선택하라는 강요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곤 해요. 저는 일을 하는 워킹 우먼들에게 '너무 잘 하고 있다'고, '당신이 겪고 있는 일과 육아에 대한 모든 고민은 모든 여자들이 다 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당신만 그 문제에 사로잡혀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응원해주고 싶죠."

강혜정 대표는 최근 첫째 딸 의진 양과 함께 유의미한 포럼을 들은 뒤 삶과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에 여유를 담게 됐다고도 알렸다. "능력있는 제작자로 인정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도 있었다"는 그지만 "이제 어떤 장르, 어떤 이야기든 사람들에게 힘을 불어넣어주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말한다. 이어 강 대표는 "제가 어떤 영화들을 만들게 될지 저 역시 궁금하다"고 덧붙이며 밝게 웃어보였다.

남편인 류승완 감독은 두말할 필요 없이 강혜정 대표의 가장 믿음직한 파트너다. 나란히 영화를 꿈꾸던 두 사람은 부부로, 제작자와 감독으로 최상의 호흡을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두 사람은 비슷한 고민을 가장 가까이서 나눌 수 있는 사이이기도 하다. 강 대표는 "류 감독은 최근 '더 좋은 영화를 만들지 못하고 죽지는 않을까'라는 걱정이 심해진 것 같다"며 "아마도 꿈이 직업이 되는 순간의 공허함과도 닿아있는 고민일 것"이라고 말했다.

"저 역시 영화가 꿈이었고 꿈꾸던 것을 직업으로 삼게 된 케이스예요. 그 안에서 가정도 꾸렸고 사랑하는 아이들도 얻었죠. 최대의 만족감을 누리게 됐지만, 이제야 그 모든 것들을 넘어서는 일을 꿈꾸게 된 것 같아요. 저는 영화 한 편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깨달음을 주거나 사회적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하지만 적은 숫자의 사람들이라도 그들의 인생을 움직이게 만들 수 있다면 좋은 결과가 올 것이라고 봐요. 모든 인간은 선하고 가능성이 있는 존재니까요."

이하 강혜정 대표와 일문일답

-남편 류승완 감독은 제작자인 아내에게 어떤 존재인지 궁금하다.

"류 감독에게도 종종 고백하지만, 류승완 감독은 자주 내 방패막이가 돼 준다. 어떤 판단을 두고 고민할 때 가장 큰 조언자가 돼 주니 많이 의지하곤 한다. 제일 많이 싸우는 존재인 동시에 서로 성장을 견인하기도 한다. 살 만한 삶이다.(웃음)"

-주로 류 감독과 작업했지만 '해결사'와 같이 다시 신인 감독과 영화를 만들 계획은 없나?

"신인 감독들과 일한다는 것은 내가 그들의 삶에 뭔가를 기여할 기회이기도 하다. 단지 계약을 하고 캐스팅을 하고 작품을 만드는 것 이상의 가치다. 최근엔 영화에 1천만 명, 2천만 명의 관객이 드는지, 영화가 어디서 상을 받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도 한다. 물리적으로는 손익 분기점을 맞추지 못하면 영화가 망하는 것이고, 영화사의 존속 이유도 사라지는 것이지만 세계의 어떤 부분에 기여할 수 있다는 데에도 큰 의미를 두고 싶다."

-제작자가 아닌 다른 일을 할 수 있다면 어떤 곳에 관심을 두겠나?

"나이를 많이 먹으면 직업을 바꾸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반전 운동을 하고 싶다. 최근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상황을 보며 더 그런 생각을 하게 됐다. 물론 류 감독은 '뭐? 뭘 한다고? 아이들은 어떻게 하고?'라고 되묻곤 한다.(웃음) 가장 행복한 상황은 내가 육십 살이 됐을 때 쯤 '반전운동이 뭐에요?'라는 물음이 가능한 세계가 오는 것이겠지만."

-세상을 대하는 관심과 에너지가 남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류승완 감독은 내게 '왜 일에 야심이 없냐'며 불만을 표한 적도 있다. 그런데 오늘은 같이 집을 나서며 '나는 당신이 영화 제작자로도 훌륭하다고 생각하지만 사람들에게 뭔가 힘을 불어넣어주는 모습에서 더 생기가 넘친다고 느낀다'고 하더라. '이 일을 하지 말라는 건가?' 싶었다.(웃음)

-자신이 지닌 그런 면을 영화에도 투영할 수 있을 것 같다.

"영화 제작자로서는 냉정하게 '지불한 금액 이상의 가치는 주는', 한 마디로 '티켓값을 하는'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도의적 책임감이 있다. 전에는 좋은 영화, 선한 영화, 드라마가 좋고 감동이 있는 영화가 사람들에게 힘을 불어넣어 줄 것이라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런 선입견이 사라졌다. 무엇이 됐건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로 사람들에게 힘을 안겨주고 싶다. 내가 만드는 영화가 늘 최고이거나 멋지지는 않을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나 스스로를 자책하거나 실패자로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모든 스태프들과 배우들의 노력을 관객 스코어로만 정리할 수는 없는 일이다. 다음에 또 좋은 작품을 하면 되니까."

-차기작 계획은?

"정신대 문제를 소재로 한 영화를 준비 중이다. 보통과는 다른 방식으로 다루고 있어 시간도 많이 걸릴 것 같다. 나는 이 영화를 통해 내 아이들에게 '우리에게 이런 역사가 있었다. 봉합되거나 해결되지 못했던 일이다'라는 것을 이야기해주고 싶다. 그 사건들이 우리에게 무슨 문제를 남겼는지를 다룰 것이다."

조이뉴스24 권혜림기자 lima@joynews24.com 사진 정소희기자 ss082@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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