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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10년]충무로 이끈 여풍 3인방① 명필름 심재명 대표


여성 제작자 1세대 심재명 대표, 성공의 원천은 "성실함"

[권혜림기자] 영화 제작사 명필름의 심재명 대표는 지난 20여 년 충무로 역사의 산 증인이다. 내년이면 20주년을 맞는 명필름의 수장인 동시에 2014년 현재 충무로를 누비고 있는 여풍의 주역이기도 하다. 명필름 창립작 '코르셋'(1995)를 시작으로 '접속'(1997), '조용한 가족'(1998), '섬'(2000), '공동경비구역 JSA'(2000), '바람난 가족'(2003),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2007), '마당을 나온 암탉'(2011), '건축학개론'(2012) 등 한국 영화사에 유의미한 족적을 남긴 영화들이 심재명 대표의 손 끝에서 태어났다.

창간 10주년을 맞은 조이뉴스24는 한국 영화계를 누벼 온 여성 제작자들을 만나 그들의 영화 인생을 함께 돌아보고 충무로의 현 주소를 진단했다. 지난 1988년 영화계에 첫 발을 들였던 심 대표는 올해로 27년차가 된 베테랑 영화인이다. 여성 제작자 1세대, 변수도 위기도 많은 영화판에서 그는 특유의 마케팅 감각과 모험을 마다 않는 과감한 시도로 굳건히 명필름을 이끌어왔다. 명필름의 필모그라피엔 사회 참여적 메시지를 담은 작품도, '잘 안 팔리는' 콘텐츠로 여겨지곤 했던 '여자 영화'들도, 전례 없던 성공사를 쓴 국산 애니메이션도 있다.

그가 말하는 제작자의 숙명은 "삶을 영화 한 편 단위로 사는 것"이다. 기획·개발을 거쳐 배우를 캐스팅하고 촬영을 진행한 뒤 후반 작업과 마케팅에 힘을 쏟다 보면 어느덧 1~2년이 훌쩍 지난다. 심 대표는 "영화를 만들며 어떤 순간엔 설레고 기쁘지만 어떤 순간엔 좌절도 한다"며 "'카트' 개봉을 앞둔 지금도 매 순간 다른 감정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영화계는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의 세계죠. 지나간 위기들은 아직도 영화 속 한 장면들처럼 생생히 기억나요. 명필름을 함께 이끄는 이은 대표와 부부이기 때문에 끈끈한 믿음, 영화 동지로서의 신뢰로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어요. 우리 둘만의 힘이 아닌, 함께 일한 명필름 식구들, 회사 밖 동료들과도 함께 위기들을 극복해왔고요. 동생인 보경사의 심보경 대표와도 오랫동안 함께 일했으니 패밀리 비즈니스의 이점을 겪기도 했죠."

그는 "영화사를 운영하던 초반엔 담보 능력이 부족해 사채를 쓴 적도 있다"며 "당시엔 물리적으로 힘들어 스트레스가 컸다"고도 돌이켰다. 이어 "기대했던 영화가 잘 안 됐을 때는 영화에 참여한 배우, 스태프들과 함께 실망감도 느꼈다. 하지만 운이 좋게도 모든 영화가 나름의 성과를 거뒀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그가 이끈 명필름과 과거 MK픽쳐스는 현재 한국 영화계를 누비고 있는 영화인들의 산실이기도 하다. 심 대표와 함께 일했던 후배 영화인들 중 다수가 지금도 그와 '따로 또 같이' 영화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심재명 대표는 "동생처럼, 자식처럼 생각했던 이들이 각자 자기 몫을 해내고 있는 것을 보면 큰 힘을 얻는다"고 알렸다.

심재명 대표가 보여준 활약의 원천을 누군가는 탁월한 마케팅 감각에서, 누군가는 남다른 뚝심에서 찾는다. 하지만 영화 제작자로서 그 자신이 꼽는 미덕은 다름 아닌 "성실함"이다. 그에 더해 "위기를 담담하게 받아들이려는 태도" 역시 심 대표가 견지하려는 자세다.

"회사에 닥치는 위기나 어려움을 꼭 나만의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누군가는 더 힘든 시간을 보냈을 테니까요. 너무 과장하지 말자고 담담하게 받아들이려 해요. 제작자는 많은 사람들을 책임져야 하고 결과에 가장 큰 책임감을 느껴야 할 위치에요. 애써 힘들어하지 않으려 스스로 마음을 다잡곤 하죠."

한국 영화계에서 여성 영화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심재명 대표에게 어떤 의미일까. 만만치 않은 영화판에서, 그는 남편인 이은 대표와 함께 영화 일을 해온 것을 큰 행운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심 대표는 "제작자는 늘 최종 결정을 하고 판단을 해야 하는, 힘들고 고독한 위치"라며 "그런 의미에서 영화사를 혼자 책임지는 여성 제작자들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제작자이자 한 남자의 아내이고 딸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그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여성이 사회 생활을 한다는 것은 아직도 어려운 일"이라며 "통계를 보면 대기업 여성 임원 수는 압도적으로 적고 비정규직의 수는 훨씬 많다"며 "선택할 수 있는 직업에도 한계가 있어 안타깝다. 상대적으로 성차별이 적은 세계라고 인식되는 영화계에서도 여성이 가정을 돌보며 일을 하는 것은 힘든 과정"이라고 알렸다.

"아이가 어릴 때는 친정 어머니의 도움을 많이 받았죠. 한국 사회에선 사회가 아닌 개인이 육아를 전적으로 책임져야 하니까요. 그런 어려움을 막무가내로 이겨왔죠. 일하는 여자이자 엄마이고 주부로서 많이 힘들었던 것이 사실이에요. 제 경우 이른 나이에 회사 대표로 일하다 보니 다른 직원들보다는 시간을 유동적으로 사용할 수 있었지만 보통의 조직에서 일하는 여성들은 엄격한 출퇴근 시간을 지켜야 하고 아이가 아프기라도 하면 곤란한 상황에 처하잖아요. '카트'에서처럼 육아 휴직 후엔 다시 이전의 노동 시장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경우도 많고요."

한편 심재명 대표는 영화 제작 뿐 아니라 명필름 영화학교 설립을 통해 차세대 영화 유망주를 육성하는 일에도 힘쓰고 있다. 그는 "다른 영화 관련 교육 기관과 명필름 영화학교의 차이를 찾는다면 전액 무상, 기숙 학교로 운영된다는 것"이라며 "정지영·이준익 감독, 배우 문소리 등 현직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각 분야 영화 장인들이 생생한 경험을 바탕으로 가르친다는 것이 남다르다"고 설명했다.

"명필름 영화학교는 이은 대표가 주도해 생각한 사업이에요. 그간 36편의 영화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이은 대표와 저 개인의 능력 덕이 아니라 함께 한 사람들의 노력이었죠. 그 경험을 공유하는 것이 선배 영화인의 소임이라고 생각해요. 한편으로는 미래의 젊은 인재들을 발굴하고 육성함으로써 새로운 에너지를 받을 수도 있겠죠."

이하 심재명 대표와 일문일답

-이은 공동 대표와는 어떤 식으로 역할을 분담하나?

"철저하게 나눠 일하지는 않지만 크게는 나뉜다고도 볼 수 있다. 회사 전반이나 영화학교 운영 등 조직을 이끌고 회사를 경영하는 면에선 이은 대표가 훨씬 잘 하고 있다. 저는 작품을 제작하고 직접 관여하는 프로듀서의 역할을 더 많이 한다. 자연스럽게 역할이 나눠진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모든 것을 같이 의논하고 결정한다. 이은 대표가 이성적이고 논리적이라면 저는 감성적이고 감각적이다. 서로 구멍을 메꿀 수 있는 셈이다.(웃음) 이은 대표를 만나지 않았다면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을까 싶다. 함께 영화를 만들 뿐 아니라 삶의 가치관을 형성하는 면에서도 영향을 주고받는다."

-제작 경력이 쌓일수록 흥행에 대한 '촉'이 발달하는지도 궁금하다.

"촉은 별로 없는 것 같다. 가능성을 본다. 이전에 여성 스포츠 영화가 없었음에도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을 제작한 것은 가능성을 봤기 때문이었다. 핸드볼은 몸과 몸이 부딪치는 경기다. 영상으로 표현되면 힘이 있을 것 같더라. 남성이 아닌 여성 스포츠 영화라는 점에서, 힘들어도 차별점이 있을 것이라 봤다. '건축학개론' 때도 멜로 드라마가 잘 되지 않을 수 있다는 주변 시선이 있었지만 거꾸로 멜로라는 장르엔 시효가 없다고 생각했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첫사랑의 기억에 건축이라는 코드를 넣으면 젊은 관객들도 좋아할 것 같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젊은 관객층의 트렌드를 따라가는 것이 어려워진다고도 말한 적이 있는데.

"'접속'의 개봉이 1997년이었다. 당시 30대 중반이었고 이 영화를 가장 좋아할 만한 20대 중후반과 나이차가 크지 않았다. 그들의 감수성을 느끼는 것이 크게 어렵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제 20대 관객과 30년의 나이 차가 나니 그들의 감각을 잘 안다는 것이 '오버'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애써 트렌드를 따라가지 않으려는 건 잘 몰라서일 수도 있다. 영화는 상품인 동시에 예술이다. 트렌드를 좇기보다 주제나 메시지, 이 영화를 통해 세상에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에 집중하려 노력한다. 물론 제작 일이라는 것이 만들고 싶은 것만 만들 수는 없는 직업이다. 그에 들어간 많은 비용을 책임지고 회수해야 한다. 적절히 시류를 읽고 마케팅의 눈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은 필수적으로 해야 한다."

-'카트'를 비롯해 메시지가 또렷한 영화들도 종종 선보였다. 영화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지도 궁금하다.

"영화 한 편이 사회를 바꿀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영화에 과대한 힘을 부여하려는 생각도 없다. 다만 누군가 그 영화를 통해 두 시간을 의미있고 소중하게, 즐겁게 경험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작가주의 영화든 상업성이 뛰어난 오락 영화든 가진 메시지를 제대로 전달해 사회에 목소리를 내는 순기능은 분명 있다고 본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을 비롯해 최근작인 '관능의 법칙'과 '카트'까지, 쉽게 시도하기 어려운 '여자 영화'들을 선보이기도 했다.

"여자 주인공이 많이 나오는 영화들이 상대적으로 상업영화로서 경쟁력은 떨어지는 것 같다. 티켓파워가 큰 남자 배우가 등장하는 영화 혹은 장르 영화와 달리 (흥행이) 어렵다. 앞으로도 반드시 여자 영화를 만들겠다기보단 여자 주인공 중심의 좋은 이야기를 발견한다면 다시 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카트'는 여배우들이 대거 출연하는 영화다. 소재는 여성 비정규직의 이야기다. 이 역시 쉬운 시도는 아니었을텐데.

"'카트'는 상업영화로는 처음으로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을 정면으로 다뤘다. 다른 영화들과 분명히 다른 지점이다. 이 영화를 통해 우리 사회의 약자들의 이야기가 남의 일이 아니라는, 나의 이야기일 수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다. 함께 연대하고 손을 내밀어 잡는 따뜻한 의미를 전할 수 있다면 좋겠다. 그것이 이 영화의 소임이라고 본다. 부지영 감독이 말했듯 '카트'는 노동영화인 동시에 가족영화다. 궁극적으로는 휴먼 드라마라고 생각한다. 가족애와 동료애, 우정도 있다. 인간적인 삶, 그 안의 따뜻함과 소중함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영화다."

-'건축학개론'에 미쓰에이의 배수지를 캐스팅해 영화계 블루칩으로 만든 데 이어 '카트'에는 인기 아이돌 도경수를 캐스팅했다. 연기에 대한 호평도 뒤따르고 있는데 그를 캐스팅한 과정이 궁금하다.

"'건축학개론' 때 배수지를 캐스팅해 좋은 결과를 얻었고 영화의 인지도를 높이는 데도 꽤 힘이 됐다. '카트'의 기획 때부터 도경수가 연기한 태영 역을 캐릭터에 잘 맞는 청춘 스타나 아이돌 스타에게 맡기려 했다. '건축학개론'의 조정석을 캐스팅했던 캐스팅 디렉터와 '카트'도 함께 작업했는데 그의 추천을 받아 도경수를 캐스팅했다. 도경수는 마음씨도 따뜻하고 예의 바른 청년이다. 흥행이 잘 돼 좋은 평을 얻었으면 좋겠다. "

-임권택 감독의 신작 '화장'으로도 관객을 만난다.

"한국 영화를 꿈꾸게 했던 감독과 작업한다는 사실이 긴장되고 설렜다. 어렵기도 했다. 빈말이 아니라, 너무나 성실하고 세심하신 분이다. 젊은이들에게도 너무 깍듯하게 존댓말을 하는 분이기도 하다. 함께 작업하면서 역시 훌륭한, 대단한 분이라고 생각했다. 어떻게 100편이 넘는 영화를 만들었는지, 왜 많은 영화인들이 존경하는지 실제로 체험하며 알게 됐다."

조이뉴스24 권혜림기자 lima@joynews24.com 사진 정소희기자 ss082@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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