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런던올림픽

[한상숙기자] 한국은, 드라마다. 인대가 끊어져도, 코뼈가 부러져도, 그들은 경기장을 떠나지 않았다. 4년 동안 흘린 땀방울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 국민들의 성원에 보답하기 위해, 이를 악물고 참았다. 경기가 끝나자 그제야 통증이 밀려왔다. 태권도 은메달리스트 이대훈(20, 용인대)은 "승리하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포기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마지막까지 공격을 시도했다"고 부러진 코뼈쯤은 아무 것더 아니란 듯 말했다.

드디어 막을 내린 2012 런던 올림픽, 어느 하나 드라마가 아닌 순간이 없다. 남자 축구는 영국을 넘고 일본을 무너뜨렸다. 사격 진종오(33, KT)는 한국 올림픽 사상 최초로 단일 종목 2연패를, 여자 양궁 단체팀은 올림픽 7연패를 달성했다. 한국은 런던올림픽에서 금메달 13개, 은메달 8개, 동메달 7개로 종합 5위의 성적을 거뒀다. 목표였던 '10-10'을 훌쩍 뛰어넘은 기대 이상의 성적이다. 선수들의 땀과 눈물이 만들어낸 '대한의 아들 딸'의 모습이다.

축구, 日 꺾고 사상 첫 올림픽 동메달

올림픽 축구대표팀은 대한민국을 다시 하나로 만들었다.

한국은 8강전에서 개최국 영국을 승부차기 끝에 제압하고 극적인 4강 진출에 성공했다. 라인업부터 큰 차이를 보였던 영국과의 대결에서 한국은 조직력을 앞세워 상대를 몰아붙였다. 전반 지동원의 벼락같은 선제골로 기선을 제압한 한국은 1-1로 비겨 돌입한 승부차기에서 골키퍼 이범영의 선방으로 5-4 승리를 거뒀다. 한국의 수비에 막혀 영국은 좀처럼 힘을 쓰지 못했다.

준결승에서 강호 브라질에 막혀 0-3으로 패한 뒤 동메달을 놓고 일본과 맞붙게 됐다. 신경전은 경기 전부터 치열했다. 양국의 선수들은 저마다 필승 의지를 다지며 선전을 약속했다. 외신도 한일전을 두고 "결승전보다 흥미로운 대결이 될 것이다"라며 기대했다.

한일전은 뜨거웠다. 동메달을 다퉜을 뿐 아니라 서로에게 질 수 없다는 양국의 자존심이 충돌했다. 그러나 경기는 싱겁게 끝났다. 이번에도 한국의 조직력이 일본을 압도했다. 2-0 완승. 금메달에 버금가는 값진 수확이었다. 한국 축구는 사상 첫 4강 진출에 이어 메달 획득까지 이뤄내며 최고의 성적을 거뒀다.

2년 뒤 열리는 2014 브라질 월드컵에 대한 기대도 높아졌다. 이번 올림픽 대표팀에서 맹활약한 박주영, 기성용, 구자철, 김보경, 지동원 등이 주축이 돼 브라질 월드컵을 치를 것이다. 무한한 성장 가능성을 열어젖힌 이들이 월드컵에서 두 번째 신화를 쓴다.

양학선 뛰어넘은 '양학선 신드롬'

'양학선 신드롬'이다. 한국뿐 아니라 세계가 주목했다. 양학선(20, 한국체대)의 고난도 기술뿐 아니라 역경을 딛고 일궈낸 성공 스토리가 한 편의 드라마 같다. 어려운 가정환경 속에서도 꿋꿋했던 양학선의 모습은 '시대의 멘토'를 떠올리게 했다.

양학선은 남자체조 도마 결선에서 멋진 점프와 공중둘기로 한국 체조 역사상 첫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자신의 이름이 곧 기술인 '양학선'을 훌륭하게 소화하며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 섰다. 양학선은 "몸이 깃털같은 느낌이었다. 2차 시기를 끝낸 후 금메달을 확신했다"고 말했다.

포털사이트에 양학선의 이름을 검색하면 연관 검색어로 '비닐하우스'가 나온다. "가난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라는 스무 살 청년의 당당함에 박수가 이어졌다. 라면부터 아파트까지, 양학선을 돕겠다는 손길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양학선은 주위의 이런 관심에 아랑곳하지 않고 벌써 다음 신기술 고민에 빠졌다. "체조는 룰이 4년마다 바뀐다. 한국에 돌아가서 신기술을 개발할 생각이다. '양학선'에서 반 바퀴를 더 돌아볼까 생각 중이다." 양학선은 그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최고난도 '양학선'을 넘어서는 기술을 준비하고 있다.

유도 3인방의 투혼

유도는 대회 초반 금메달 2개와 동메달 1개를 수확하며 올림픽 열기를 이끌었다. 조준호(24, 한국마사회)의 동메달을 시작으로 김재범(27, 한국마사회)과 송대남(33, 남양주시청)이 금메달로 '효자' 노릇을 톡톡이 했다.

조준호는 억울한 판정 번복 속에서도 값진 동메달을 목에 걸었고, 김재범은 4년 전의 한을 풀었다. 지난 2008년 베이징올림픽 결승전에서 독일의 올레 비쇼프에게 져 금메달을 내줬던 김재범은 4년 만에 다시 만난 비쇼프를 상대로 노련하게 기술을 시도하며 완승을 했다. 90㎏급 송대남은 연장 끝에 아슬레이 곤잘레스(쿠바)를 제치고 금빛 메치기에 성공했다. 적잖은 나이에 출전한 올림픽 무대를 감동의 금메달로 장식했다.

이들의 부상 투혼도 화제가 됐다. 어깨와 손가락, 무릎 등 성한 곳이 없었지만 올림픽 무대는 이들에게 무엇보다 강력한 '마취제'였다. 경기 후 김재범은 "왼쪽 어깨뼈가 부러져 있는 상태고 왼쪽 팔꿈치도 탈골됐다. 어깨와 팔꿈치는 수술해야 하는 상황이다. 왼쪽 손가락 인대도 끊어져 펴지지가 않는다. 왼쪽 무릎은 내측 파열을 당해 6주 동안 훈련을 하지 못했다. 내 몸 상태는 42살이다"고 털어놨다. 세계선수권대회와 아시아선수권대회, 아시안게임에 이어 올림픽까지 제패한 김재범의 그랜드슬램을 이끈 것은 정상을 향한 못말리는 집념이었다.

"한국 여자 양궁, 가장 위대한 팀"

한국 양궁은 런던올림픽에서도 최강국임을 확인했다. 남녀 개인과 단체 4종목에서 금메달 3개와 동메달 1개를 휩쓸었다. 여자 단체는 올림픽 7연패를 달성했고, 기보배(24, 광주광역시청)는 여자 단체전과 개인전 2관왕에 올랐다. 오진혁(31, 현대제철)은 남자 개인전에서 첫 금메달을 따며 남자 단체전 동메달의 아쉬움을 날려버렸다. '신궁커플' 오진혁과 기보배는 나란히 정상에 서며 국민을 흐뭇하게 했다.

국제무대를 주름잡는 한국 양궁을 견제하기 위해 도입된 세트제도 걸림돌이 되지 못했다. 외신은 한국 여자 양궁을 두고 "올림픽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여자팀이다"라고 평가했다.

한상숙기자 sky@joynews24.com 사진=런던(영국) 최규한기자dreamerz2@joy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