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런던올림픽

[최용재기자] 한국 축구는 세계 축구 무대에서 변방이었다.

세계 축구 역사는 유럽과 남미가 양분해왔다. 아시아의 한국이 비집고 들어갈 틈은 보이지 않았다. 한국 축구는 항상 축구 선진국으로부터 무시와 천대를 받아야 했다. 아시아에서 월드컵, 올림픽에 가장 많이 출전하는 아시아 최강 한국이라고 해도 세계무대에 나서면 작아졌다.

변방 한국 축구가 세계무대 결승에 오른다고?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노력을 하고 투혼을 발휘해도 축복받은 축구 유전자를 지닌 유럽과 남미 선수들을 상대로는 벅찼다. 세계무대에 투지를 가지고 나섰지만 한국 축구의 성적은 초라했다. 세계무대 결승 진출은 막연한 꿈, 아니 꿈마저 꾸기 힘든 아득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2000년 이후 한국 축구는 조금씩 진화하기 시작했다. 한국 축구도 세계무대 속에서 주목을 받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역시나 2002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던 한·일 월드컵이 기폭제 역할을 했다. 한국은 4강이라는 기적을 일궈냈다. 1983년 멕시코에서 열린 U-20 청소년 월드컵에서 4강에 오른 것과 함께 한국 축구 역대 최고 성적이었다.

이 때 처음으로 상상할 수 있었다. 불가능이 가능한 일이 될 수 있다는 멋진 상상이었다. 한국 축구는 사상 처음으로 세계무대 결승 진출을 꿈꾸기 시작했다. 당시 분위기와 기세로는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한·일 월드컵 때는 결승 문턱에서 좌절했다. 가까이 다가왔던 세계무대 결승은 다시 꿈으로 돌아갔다.

2002 월드컵 이후 한국 축구는 오랜 기간 세계무대 결승진출을 그저 꿈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사실 아예 꿈도 꾸지 않았다고 하는 것이 더 맞는 표현일 것이다. 지레 겁을 먹었다. 세계무대에 나설 때면 항상 조별예선 통과가 1차적 목표였고, 8강에만 진출해도 박수를 받았다. 그렇게 세계무대 결승은 더욱 멀어져만 갔다.

그렇게 남의 나라 일로만 여기던 일이 드디어 현실로 다가왔다. 대한의 딸들이 일궈낸 기적같은 일이었다. 2010년 독일에서 열린 여자 U-20 월드컵에서 한국 여자 대표팀은 한국 축구 사상 세 번째로 세계무대 4강에 올랐다. 한국 축구는 다시 열광의 도가니에 빠졌다.

한국의 낭자들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같은 해 트리니다드 토바고에서 열린 여자 U-17 월드컵에서 대한의 딸들은 한국 축구 역사 최초로 세계무대 결승에 올랐다. 그리고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세계무대에서 한국 축구가 일궈낸 가장 극적이고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한국의 태극낭자들이 꿈을 현실로 만들었다. 이후 세계무대 결승 진출은 남의 일이 아니라는 인식이 생겼다. 우리도 충분히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태극낭자들이 그것을 증명해 보였다.

이제는 남자 축구가 뭔가 보여줄 때가 왔다. 2002년 결승진출 좌절의 아쉬움을 씻을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8일 새벽(한국지간) 한국 올림픽 축구 대표팀은 한국 축구 역사상 두 번째로, 그리고 남자 축구로는 처음으로 세계무대 결승진출을 노린다. 맨체스터의 올드 트래포드에서 열리는 2012 런던 올림픽 4강전이 그 무대다. 상대는 브라질이다. 홍명보호가 한 경기만 더 승리한다면 한국 축구 역사가 새롭게 열린다.

브라질은 이번 올림픽 우승후보 0순위다. 하지만 한국은 자신감이 넘친다. 결승진출을 꿈조차 꾸지 못하던 시절은 한참 지났다. 유럽 무대 경험이 있는 선수들도 많다. 조직력은 그 어떤 팀보다 끈끈하다. 8강전서 홈팀 영국 단일팀을 꺾은 기세는 하늘을 찌른다. 모든 이들이 8강에서 홈팀 영국을 이기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했지만 태극전사들은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아직도 한국 축구의 결승 진출이 꿈이라고 생각하는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이들에게 홍명보 감독과 18인의 태극전사들은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현실을 보여주려 한다. 깊고 오래된 꿈을 깰 시간이 드디어 다가왔다.

런던(영국)=최용재기자 indig80@joynews24.com 사진 최규한기자 dreamerz2@joy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