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런던올림픽

[최용재기자] *2012년 8월5일, 13일차

카디프의 기적. 모두가 'NO'라고 할 때 한국 올림픽 축구대표팀은 'YES'를 외쳤다. 거의 모든 전문가나 팬들의 예상을 시원하게 깨며 영국 단일팀을 무너뜨린 홍명보호였다. 그 역사적인 4강 신화를 이룬 장소는 카디프 밀레니엄 스타디움이었다.

연장전과 승부차기까지 가는 짜릿했던 경기가 끝나고 카디프에서 런던으로 돌아오는 길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밤 늦은 시각 경기장에서 빠져나온 인파들이 한꺼번에 카디프역으로 몰려 그야말로 일대는 인간 주차장으로 변했다. 런던행 기차를 타기 위해서는 2시간 정도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다. 비는 내리고 춥고 배고프고 기차는 타지 못하고, 그렇게 비참하고 처량할 수가 없었다.

새벽 3시가 넘어서야 겨우 런던 숙소로 돌아올 수 있었다. 지칠 대로 지쳐 몸을 제대로 가눌 수도 없을 정도였다. 몸은 힘들었지만 그래도 한국이 영국에 통쾌하게 거둔 승리가 있었기에 마음만은 편안했다. 그리고 그 감동과 여운을 느껴가며 잠이 들었다.

우리에게는 '카디프 기적', 영국인에게는 '카디프 쇼크'가 있은 지 하루가 지났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런던 곳곳에서 열리는 올림픽 취재를 위해 숙소를 나섰다. 그런데 이전과는 조금은 다른 분위기가 형성됐다. 분명 무언가 달라진 것이 있었다.

이전까지는 버스를 타나, 지하철을 타나, 식당을 가나, 한결같이 기자에게 큰 신경을 쓰지 않았던 영국인들이었다. 그런데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축구 종가'를 물리친 코리아에서 왔다는 이유로 관심을 받게 된 것이다. 기자를 쳐다보는 눈빛이 달라졌다. 왠지 말을 걸어올 것만 같은 묘한 예감이 들었다.

런던에 온 후 매일 지하철을 타기 전 들렀던 커피 전문점이 있다. 지금까지는 단 한 번도 주문 내용을 제외하고는 다른 대화는 한 마디도 나눠보지 않았던 금발의 아리따운 아르바이트생이 갑자기 "한국인이시죠? 어제 멋진 경기 잘 봤습니다"라고 말을 거는 것이다. 순간 당황했지만 침착한 척 하며 고맙다고 화답했다.

이후 지하철을 탈 때도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이전에 받지 못했던 관심을 받게 됐다. 식당에 들어가니 메뉴를 보여주는 것보다 먼저 축하 인사를 건네왔다. 길거리를 걷다 갑자기 한 영국인이 "축하합니다"라며 손을 덥석 잡는 일도 있었다. 한국축구의 경기력을 극찬하는 사람도 만났다. 외국 기자들 사이에서도 축구에서 한국이 영국을 이겼다는 것은 큰 화제가 됐다.

물론 비아냥거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아주 소수였다. 기자가 만난 대부분의 영국인들은 한국의 선전에, 한국의 투혼에 박수를 보냈다. 콧대 높은 영국인들조차 태극전사들의 열정을 인정한 것이다. 그것도 축구 종가의 안방에서 해낸 일이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카디프의 기적. 이런 게 흔히 말하는 스포츠를 통한 국위선양이라는 것인가. 런던에서 한국인의 자긍심을 가장 잘 느낄 수 있었던 곳은 세계최강 한국 양궁의 경기가 펼쳐진 양궁장이었다. 적어도 양궁장에서만큼은 한국인이 최고였기 때문이다. 양궁장에서 기자는 위풍당당하게 걸어 다닐 수 있었다.

양궁이 모두 끝나 아쉬운 느낌이 드는가 했더니 한국 축구대표팀 덕분에 이제는 런던 전체가 마치 양궁장과 같은 느낌이다. 다음에는 영국인이 아닌 브라질 사람에게 축하인사를 받아보고 싶다.

<⑭편에 계속…>

런던(영국)=최용재기자 indig80@joynews24.com 사진 최규한기자 dreamerz2@joy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