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런던올림픽

[최용재기자] *2012년 8월8일, 17일차

이틀 전이었다. 기자에게 메일 한 통이 배달됐다. 무언가 제보를 한다는 메일이었다. 메일을 열어봤고 그 속에는 충격적인 사실이 담겨 있었다.

영국의 공영방송 BBC가 홈페이지에 일본의 사격 선수 마쓰다 토모유키를 소개하면서 한국의 진종오 사진을 올려놓았다는 제보였다. 기자는 바로 확인에 들어갔다. BBC 공식 홈페이지로 들어갔고 올림픽 메뉴에서 일본 대표팀을 클릭했다. 그리고 선수를 검색하니 마쓰다가 나왔다. 충격적이게도 마쓰다라고 소개된 사진 속 인물은 마쓰다가 아닌 분명 진종오였다. 제보는 사실이었다.

세계 최고의 방송사 중 하나로 평가 받고 있는 BBC의 어처구니 없는 실수였다. 3번의 올림픽에서 3개의 금메달, 2개의 은메달을 딴 '사격의 전설' 진종오다. 세계적인 사격선수 진종오를 몰라본다는 것은 그들의 권위와 신뢰를 스스로 깎아내리는 일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한국 국민들은 분노했다. 기자 역시 기자이기 전에 한국인이라 분개할 수밖에 없었다. 기자는 물론이거니와 한국의 몇몇 언론들이 이 사실을 국민들에게 알렸다. BBC의 실수와 결례를 지적하고 진종오의 얼굴을 빨리 돌려놓으라는 당연한 요구를 하기 위해서였다.

하루가 지났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컴퓨터를 켜고 진종오의 얼굴이 되돌아왔는지를 확인했다. 하지만 그대로였다. 어이가 없었다. 영국을 대표하는 BBC만의 특유의 오만함인지, 사실을 인정하기 싫은 속셈인지, 담당자의 무관심이나 느슨한 일처리인지 알 수 없었다. 취재를 하러 돌아다니다 BBC 기자를 만난다면 한 번 물어봐야겠다는 마음을 먹은 채 숙소를 떠났다.

올림픽 취재 현장이 늘 그렇듯,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보면 정신이 없다. 몸도 마음도 피곤하다. 가끔씩 '내가 이곳에 왜 와 있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고단할 때가 있다. 다른 것을 생각할 여유도 체력도 없다. 이날도 정신없이 돌아다니다 숙소로 들어와 아무 생각 없이 그대로 쓰러졌다. 진종오의 얼굴이 제대로 돌아왔는지 확인을 하지 못했다.

또 하루가 지났다. 이날도 어김없이 바쁘게 돌아다녔다. 경기장에 가 취재를 하고 인터뷰를 하고 기사를 쓰고, 또 경기장에 가 취재를 하고 인터뷰를 하고 기사를 쓰고를 반복했다. 탁구 남자 단체전이 끝나고 태권도 기대주 이대훈의 결승전이 열릴 때까지 시간적 여유가 생겼다. 태권도 이대훈의 결승이 오후 10시30분에 열리기 때문에 꽤 많은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오랜만에 갖는 여유의 시간. 엑셀 아레나 바로 앞에 있는 강가에 가서 시간을 보냈다. 그리 맑은 강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강이니까 한강 생각도 나고 해서 청승을 좀 떨었다. 그런데 문득 생각이 떠올랐다. 진종오의 얼굴은 돌아왔을까? 오늘 하루 진종오에 대해 완전히 까먹고 있었던 것이다.

청승은 그만 떨자 하고 당장 노트북을 켰다. BBC 홈페이지에 들어갔고 마쓰다를 검색했다. 마쓰다의 얼굴이 바뀌어 있었다. 진짜 마쓰다는 얼굴이었다. 떡하니 일장기와 함께 마쓰다로 소개돼 있던 진종오의 얼굴은 감쪽같이 사라졌다. BBC도 양심은 있었나 보다. 세계적 사격선수 진종오에 대한 미안함도 있었나 보다.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이틀 만에 진종오의 얼굴을 되돌려놓았다.

진종오는 얼굴을 되찾았고 진종오를 일본 선수로 만든 BBC의 홈페이지 논란은 이렇게 끝이 났다. 유독 런던 올림픽에서는 불미스러운 일이 한국과 엮이고 있다. 잇따른 오심 논란에 BBC까지 실례를 저질렀다. 앞으로는 이런 일이 더 이상 없기를 바란다. 괜한 일로 영국에 대한 악감정이 생기지 않기를 바란다. 이런 일이 없었다면 남자 축구 8강전에서 태극전사들이 조금은 살살 해줄 수도 있었을 텐데…

<17편에 계속…>

런던(영국)=최용재기자 indig80@joynews24.com 사진 최규한기자 dreamerz2@joy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