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똥녀', '해병대원 알몸사진' 사건 등 최근 인터넷을 통한 명예훼손 사례가 잇따르면서 관련 부처들이 인터넷 '수질관리'에 발벗고 나섰다.
정보통신부와 문화관광부는 각각 '실명 우대제' 및 '온라인 영상물 사전 심의제' 등을 도입, 인터넷을 통한 명예훼손과 폭력적, 선정적인 영상물의 무분별한 유통을 방지해나간다는 구상이다.
이러한 정부의 움직임은 각각 지난 14일과 15일에 있었던 이해찬 총리와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의 '인터넷 실명제 검토' 발언과 맞물려 네티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인터넷 실명제란, 이용자의 실명과 주민등록번호가 확인돼야 인터넷 상에 글을 올릴 수 있도록 하는 제도를 말하는 것. 17대 총선을 앞둔 지난 2004년 3월 국회는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을 개정, 공포해 인터넷 언론사의 게시판에 선거에 관한 의견을 올릴 때 네티즌의 실명 및 주민등록번호 확인 절차를 거치도록 했다.
이는 인터넷을 통한 불법 선거운동과 익명성을 통한 상대후보 비방 등 여론몰이를 방지하기 위한 조치였으나 인터넷 언론사 범위의 모호성과 표현의 자유 침해, 개인 정보 노출 및 인권 침해, 참정권 제한 등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실명제 논란이 고개를 들고 있는 가운데 정통부와 문화부가 구상중인 인터넷 정화 방안의 구체적인 내용을 검토해본다.
◆ '인터넷 익명성에 의한 역기능 연구 TF 가동' 정통부
지난 15일 진대제 정통부 장관은 "실명제 도입을 위한 여건이 형성되고 있는 듯 하다"며 "일부사이트에서 '실명 우대제' 등 부분적 실명제를 시행하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하루 앞선 14일 이해찬 총리 역시 익명성을 통한 인터넷 상의 문제점들을 지적하며 "인터넷 실명제를 적용할 부분을 구분하고, 개인의 명예훼손을 방지하면서도 공익을 보호할 방안을 강구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인터넷 상에서는 지난 2004년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던 '실명제 찬반논란'이 다시 가열되고 있다. 그러나 논란이 되고 있는 '인터넷 실명제'와 최근 정통부가 내놓은 '실명 우대제' 개념에는 차이가 있다.
일부에서 '인터넷 실명제'의 전 단계인 것처럼 소개되고 있는 '실명 우대제'는 인터넷 실명제와는 다른 제도다.
이는 말 그대로 실명을 통해 글을 올리거나 접속하는 네티즌을 우대하는 제도로, 일부 공공기관이나 언론사 사이트에서 도입하고 있는 제도다. 실명 우대제는 실명과 주민등록번호를 인증해 접속하는 네티즌에게 로그인 절차나 정보 검색 과정을 보다 손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혜택을 주는 방식이다.
따라서 '실명 우대제'를 인터넷을 통한 모든 종류의 의사표현에 실명과 주민등록번호를 요구하는 '인터넷 실명제'의 일환으로 이해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이런 '혼돈'의 발생은 정통부의 책임이 크다는 게 중론이다. '실명 우대제'가 도대체 무엇을 위한 어떤 제도이며, 인터넷 실명제와 어떻게 구별되는 것인지 명쾌한 개념정리를 해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정통부는 이 '실명 우대제' 구상을 내놓고 인터넷의 익명성으로 인한 폐해 현황을 파악하고 대안을 구상하는 한시적 연구반을 꾸려 오는 30일 첫 모임을 가질 예정이다.
정통부 정보화기획실 라봉하 인터넷정책과장은 "서강대학교 법대 왕상한 교수를 주축으로 하는 '(가칭) 인터넷 익명성에 의한 역기능 연구반'을 조직했다"며 "업계 및 학계, 시민단체 관계자 6~7명이 모여 익명성의 문제점, 대안 등을 모색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연구반 운영은 철저히 민간 자율에 의해 이뤄진다"고 덧붙였다.
나 과장과 연구반을 이끄는 왕 교수는 "연구반의 논의는 기본적으로 인터넷의 익명성에 문제가 있다는 데 대한 동의를 바탕으로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반 참여자로는 인터넷 실명제 반대의사를 분명히 하고 있는 진보네트워크의 이은우 변호사 외에 숙명여대 도준호 교수 등이 참여할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측 참석자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정통부 측은 연구반이 이르면 9월 안에 리포트 형식의 보고서를 낼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연구반을 통해 인터넷 실명제가 검토될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나봉하 과장은 "연구반이 실명제 검토를 위해 구성된 것은 아니"라면서도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익명성에 의한 폐해를 진단, 여러 관련 주제들을 검토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콘텐츠 사전 심의제 보도는 과장... 온라인 영상물 사전 심의제 추진중' 문화부
문화부가 온라인 세상 정화를 위해 유통되는 콘텐츠를 사전 심의하는 방향을 검토중이라는 보도가 잇따르자 문화부는 '당혹스럽다'는 입장이다.
문화부에 따르면 '콘텐츠 사전 심의제'는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일부 보도를 통해 소개된 콘텐츠 사전 심의제는 '온라인 영상물 사전 심의제'가 과장돼 보도된 내용이라는 것.
'음반, 비디오 및 게임물에 관한 법률'과 '영화진흥법'의 일부를 합쳐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을 제정 중인 문화부 영상산업진흥과 측은 "최근 소개되고 있는 내용은 문화부가 마치 인터넷을 통해 유통되는 모든 콘텐츠를 사전 심의할 것 처럼 다루고 있으나 이는 현실적으로 가능하지도 않을 뿐더러 사실과도 다르다"고 말했다.
문화부 측의 설명은 이렇다.
현재 게임의 경우 유통경로에 관계없이 모든 콘텐츠를 대상으로 배포 전 영상물등급위원회를 통해 사전 심의가 이뤄진다. 이를 통해 전체 이용가능, 12세, 15세, 18세 등 4개 기준에 따라 게임의 이용 대상자가 구별된다.
그러나 영화 및 비디오의 경우 오프라인 대상 영상물은 사전 심의를 거쳐 유통되는 데 반해 온라인을 통해 유통되는 콘텐츠는 심의를 거치지 않는다. 문화부는 인터넷이 오프라인 이상의 콘텐츠 유통 채널로 부상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해 온라인 영상물에 대한 사전 등급 분류가 필요하다고 판단, 이 부분을 포함하는 법률을 제정키로 했다는 것이다.
이 때도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콘텐츠(무료 콘텐츠)와 오프라인 개봉후 인터넷을 통해 재배포돼 이미 한 번의 심의를 거친 콘텐츠는 사전 심의 대상에서 제외된다는게 문화부의 설명이다. 즉 온라인 만을 겨냥해 만들어진 영상물의 선정성, 폭력성, 사행성 여부를 판단해 이용 대상을 선별하도록 한다는 게 문화부의 '온라인 영상물 사전 심의제'의 골자인 셈이다.
모든 콘텐츠를 사전 심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일부 보도 내용은 결국 '과장 혹은 기우'라는게 문화부의 공식 입장이다.
◆ '익명성이 사이버 폭력 원인이라는 근거 없다... 실명제 논의 자체 반대' 시민사회단체
사이버 폭력을 이유로 급속히 퍼져나가고 있는 실명제 논란과 콘텐츠 심의 관련 보도에 시민사회단체들은 '우려의 목소리'를 전하고 있다.
이들은 "사이버 폭력이 인터넷 실명제의 근거로 제시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입장이다.
진보네트워크 측은 지난 20일 '정부는 위헌적인 인터넷 실명제 도입시도를 중단해야 한다'는 논평을 통해 "최근 인터넷의 익명성과 관련된 대다수 언론의 보도는 대단히 잘못된 분석에 근거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네트워크는 "연예인 X파일 사건의 경우 한 회사가 연예인들의 민감한 개인정보를 무분별하게 수집한 것으로 인해서 발생한 사건이다... 트위스트김 사건의 경우도 개인의 별칭을 도용한 인터넷 포르노사업자의 문제가 직접적인 원인이지, 익명성과는 거의 관련이 없는 사건이다. 개똥녀의 경우는 인터넷에서의 익명성 보다는 오히려 인터넷 포털 사이트들의 선정적이고 가십위주의 기사배치, 그리고 이로 인한 왜곡된 여론몰이의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진보네트워크는 "이런 상황에서 지난 6월 15일 정보통신부 진대제 장관은 기자간담회를 통해 사이버폭력에 대응하는 방안으로 인터넷실명제를 언급하면서 적극적인 도입의 의지를 밝혔다. 이에 대해서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실명제는 "모든 국민을 예비범법자로 간주하고 인터넷에서의 일상행위들 하나하나를 감시하기 위한 발상"이라고 성토했다.
진보네트워크 정책국 김정우 활동가는 "실명확인이 필수적이었던 PC통신 시절이나 현재 실명제를 택하고 있는 일부 사이트에서도 사이버 폭력은 근절되지 않고 있다"면서 "이는 익명성이 사이버 폭력의 원인이며, 실명제가 이를 해소할 수 있다는 논리가 잘못됐음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참여연대 측의 입장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참여연대 사회인권국 백종운 간사는 "위헌적 요소가 크고 이미 지난해 논의가 끝난 인터넷 실명제가 다시 거론되고 있는 것은 문제"라며 말문을 텄다.
그는 "우리는 이미 상당부분 실명제를 실시하고 있다"면서 "포털 사이트에 가입하거나 덧글을 남길 때 실명과 주민등록번호로 인증 과정을 거치지만 전혀 실효가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백 간사는 "사이버 폭력의 부당함에 대한 네티즌들의 인식과 자정 능력을 신뢰하고 있다"면서 "일부의 부작용을 통해 모든 네티즌의 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는 제도 도입을 검토하는 데에는 명백히 반대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실명제가 도입된다고 해서 사이버 폭력이 근절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매우 순진한 발상"이라며 "실명제 도입은 모든 정보의 키가 되는 주민등록번호의 광범위한 수집을 허용하게 돼 결과적으로 개인 신상 정보를 유출시키는 심각한 부작용을 야기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박연미기자 change@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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