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뉴스24 이정일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대법원 무죄 판결문은 4쪽 분량이었다. 그만큼 다툼의 여지가 적었다는 뜻이다. 이미 1심, 2심 모두 무죄였다. 그런데도 검찰이 대법까지 무려 9년을 끌고 갔다. 언론은 대서특필했다. ‘빼앗긴 9년’이라고, “누가 책임 질 거냐”고 따져 물었다. ‘반(反) 기업 정서’에 기댄 검찰의 무리한 수사를 나무랐다.
이 회장의 대법 판결을 보면서 문득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가 떠올랐다.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인이라는 점, 기업 경영 과정에서 사법 리스크가 불거졌다는 공통점 때문만은 아니다. 공교롭게도 두 사람은 이복현 전 금융감독원장과의 악연이 겹친다. 2020년 9월 이 회장을 기소한 검찰 수사 책임자는 이복현 당시 서울중앙지검 부장검사였다. 4년 뒤인 2024년 7월, 이번에는 김범수 창업자가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체제의 자본시장특별사법경찰(특사경) 수사로 구속됐다.
이재용 회장의 대법 판결(7월 17일) 1주일여 뒤인 25일, 서울남부지방법원 형사합의15부 심리로 ‘SM엔터테인먼트 주가조작 혐의’ 공판이 열렸다. 이날 김범수 창업자는 출석하지 않았다. 암이 재발해 또 수술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 3월 방광암 진단을 받고 한차례 수술을 했었다.
그의 건강 상태에 대해 카카오는 말을 아끼고 있다. “안정과 집중적인 치료가 필요한 상황”이라는 정도다. 첫 번째 수술 이후 재판에 참석한 그는 핼쑥했다. 살도 많이 빠졌고 기력도 쇠해 보였다. 김범수 창업자가 그간 재판에 참석한 것은 모두 13차례. 3월과 7월 두 차례 수술을 고려하면, 몸이 견딜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성실히 재판에 임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재판의 쟁점은 자본시장법 위반 여부다. 카카오측이 SM엔터테인먼트 주식을 고가에 매수해 하이브의 공개매수를 방해했느냐다. 카카오측은 정상적인 공개 매수였다는 입장이다. 김범수 창업자도 “정상적인 경영 활동”이었다는 점을 법정에서 일관되게 주장해왔다.
재판은 이제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8월 22일 공판준비기일, 8월 29일 결심공판이 열린다. 선고가 머지않았다. 법원이 어느 쪽 손을 들어줄지는 모른다. 1심 판결로 족쇄가 풀릴지도 미지수다. 이재용 회장의 사례를 보면 더더욱 그렇다.
사법 리스크가 길어질수록 기업 카카오의 경영 부담은 커진다. 당장 카카오는 인공지능(AI) 혁신에 사활을 걸고 있다. ‘국민 메신저’ 카카오톡을 위협하는 시장 변화에도 대응해야 한다. 계열사들의 옥석을 가려 그룹의 건전성을 확보하는 과제도 시급하다. 산 넘어 산이다. 이 중차대한 시기에 카카오그룹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CA협의체 공동 의장직에서 김범수 창업자는 물러나 있다. 개인 김범수는 병마와 싸우고 기업인 김범수는 검찰과 다투는 이 모든 것이 그에게는 가혹한 현실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어제(30일) 열린 비상경제점검 회의에서 “한국에서 기업 경영 활동하다가 잘못하면 감옥 가는 수가 있다 이러면서…”라고 언급했다. 배임죄 남용을 겨냥한 것인데, 기업 경영이 위축되지 않도록 제도를 개선하라는 취지였다. 아닌 게 아니라 기업인에 대한 가혹한 법 잣대, 무리한 법 집행 관행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미국상공회의소도 올 3월 미국 무역대표부(USTR)에 제출한 ‘불공정 무역관행’ 의견서에서 ‘한국의 과도한 기업인 형사처벌’을 꼬집었다. 오죽하면 ‘(기업인은) 매일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다’는 말이 나올까 싶다.
무릇 불편부당(不偏不黨)은 법의 지엄한 가치다. 법은 단호하되, 가혹해서는 안 된다. 그 누구에게도 말이다.
/이정일 기자(jaylee@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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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일 기자님, 글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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