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런던올림픽

[최용재기자] *2012년 7월31일, 8일차

런던에는 계속해서 비가 내리고 기자는 계속해서 런던 엑셀 아레나로 향했다. 이날 역시 유도 취재에 집중했다. 한국의 자랑스런 유도 선수들을 만날 기대감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점심을 먹고 기자석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일찍 유도장으로 향했다. 아직 경기가 시작하려면 많은 시간이 남았지만 유도 역시 워낙 인기가 폭발적이라 미리 자리를 맡아야만 했다. 서두른다고 했는데도 이미 기자석은 꽉 차 있었다. 자원봉사자가 다가와 말해준다. 단 한 자리가 남았다고. 자원봉사자가 안내해주는 자리로 가서 냉큼 앉았다.

오른쪽 옆자리에는 일본 기자가 앉아 있었다. 일본의 한 스포츠 전문지 기자였다. 서로 간단한 눈인사만 나누고 자리에 앉았다. 일에 집중했다. 다른 나라 선수들의 경기도 열심히 보고 있었다.

그러다 한국의 정다운과 일본의 우에노 요시에가 만나는 유도 여자 63kg급 8강전이 시작됐다. 순간 기자와 그 일본 기자 사이에는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한국과 일본의 대결이었다. 한국 선수와 일본 선수의 맞대결은 한국 기자와 일본 기자의 자존심 대결로 이어졌다.

그 기자가 갑자기 말을 걸었다. 그는 "우에노를 아느냐?"라고 물었다. "그런 선수 모른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자신의 노트북을 보라고 손짓했다. 고개를 돌려 보니 우에노의 기록이었다. 그는 "우에노는 2009년, 2010년 세계선수권대회 우승자다. 지금 세계랭킹 1위고 금메달을 노리고 있다"고 친절하게(?) 설명해줬다. 그리고 정다운이라는 선수는 잘 모른다고 했다.

일본 기자의 표정에는 거만함이 묻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우에노가 세계최강 일본 여자 유도 선수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 표정 속에는 한국의 정다운은 우에노의 상대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도 포함돼 있었다. 겉으로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 척을 했다. 하지만 속으로는 무언가 뜨거운 것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그는 옆에서 싱글벙글 해맑은 표정을 유지했다.

경기가 시작됐고 '기적'이 일어났다. 정다운이 우에노를 물리친 것이다. 세계랭킹 11위 정다운이 세계랭킹 1위 우에노를 넘어뜨리는 마법을 부렸다. 신나서 박수를 쳤다. 옆에 있는 일본 기자가 더 잘 들을 수 있도록 감탄사도 곁들이면서 환호했다.

정다운의 승리가 확정된 순간. 옆자리의 그가 기자를 향해 외쳤다. "정다운가 다레데스까?" 정다운이 누구냐는 물음이었다. 그의 표정은 놀라움의 극치였다. 조금 전까지 유지했던 그 거만해 보이던 표정은 온데간데없었다. 정다운 이름의 정확한 발음까지 물어봤다. 이제는 한껏 거만해진 기자가 짐짓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정. 다. 운."

의기양양하던 일본 기자의 어깨가 처짐과 동시에 한국 기자의 얼굴에 퍼지는 자긍심의 미소. 꼭 기자가 그 일본 기자와 힘겨루기를 해 이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기분 좋은 하루였다. 이런 기분 좋은 하루를 선물해준 정다운, 고맙습니다.

<⑨편에 계속…>

런던(영국)=최용재기자 indig80@joynews24.com 사진 최규한기자 dreamerz2@joy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