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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VCR에서 P2P까지 '신기술 잔혹사'


 

지금은 생활 필수품인 VCR이 한 때 불법 제품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지난 1981년 미국 법원이 "영화를 무단 복사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를 들어 VCR 금지 판결을 내린 것. 불과 25년 전의 일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황당하기 그지 없지만, 당시 분위기는 심각했다. 물론 이 과정에서 헐리우드 영화사들은 막강한 로비력을 유감 없이 발휘했다.

VCR 뿐만이 아니었다. MP3폰이 나왔을때도 예외 없이 파상 공세가 이어졌다. 지금 세상을 뒤흔들고 있는 P2P 공방 역시 '신기술 잔혹사'의 연장선상에서 바라볼 수 있다.

◆ "VCR은 저작권을 침해하고 있다"

시대를 이끈 신기술들은 예외 없이 기득계층들로부터 무차별적인 공격을 받았다. 물론 공격을 하는 쪽은 주로 엔터테인먼트 업계였다. 반면 당하는 쪽은 신기술 개발업체들이었다.

판만 바뀌었을 뿐 싸움의 본질은 달라진게 없다. 엔터테인먼트 진영의 파상공세에도 불구하고, 신기술들은 대부분 살아남았다. '현재 진행형'인 P2P를 제외하면 다들 언제 그랬냐는 듯 엔터테인먼트 진영과 그런대로 사이좋게 지내고 있다. 발단은 대립으로 시작됐으나 결말은 언제나 공존으로 마무리됐다.

기술과 엔테테인먼트 진영간 갈등의 최고 백미는 소니의 베타맥스 VCR을 놓고 벌어진 저작권 침해 소송 전쟁이다.

1981년 캘리포니아 법원은 VCR이 저작권 침해 기술이기 때문에 금지할 수 있다는 판결을 내렸다. VCR이 저작권자들의 허가를 받지 않고 영화를 복사할 수 있게 해준다는 이유에서였다.

법원은 합법적인 용도 보다는 불법 사용 가능성을 더 강조해 VCR 생산 업체들에게 책임을 물은 것이다. 저작권 위협을 막기 위해 전쟁을 선포한 엔터테인먼트 진영이 당대를 대표하는 첨단 기술인 VCR과의 맞대결에서 기선을 제압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엔터테인먼트 진영의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3년 뒤인 1984년 대법원에서 이 판결은 뒤집어졌다. 베타맥스 비디오테이프 녹화기가 불법복제에 사용된다는 이유만으로 지적재산권 침해 책임을 묻는 것은 과하다면서 VCR 진영에 면죄부를 안겨줬다.

미국 대법원은 불법 가능성보다는 공공의 혜택을 더 높이 평가한 것이다.

그 뒤 VCR 관련 판결은 기술과 저작권간 분쟁을 다룰때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골 메뉴가 됐다. VCR이 오히려 헐리우드 스튜디오들의 짭짤한 수입원이 된 지금에 와서 보면 한편의 코미디이지만, 당시엔 전쟁을 방불케하는 접전이 펼쳐졌다.

◆ 라디오-텔레비전-MP3폰-P2P서 공방 계속

신기술에 대한 엔터테인먼트 진영의 본능적인 경계심은 고난도 기술이 나오면서부터 더욱 날카로워졌다. 라디오, 케이블텔레비전, MP3폰이 나오자마자 엔터테인먼트 진영으로부터 집중포화를 당한 이유다.

그러다 보니 때론 황당한 소송이 이어질 때도 있었다. 음악 저작권 보유업체들은 걸스카우트 단원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허가없이 노래를 불렀다는 게 소송 이유였다. 피아노 연주자들도 작곡가들의 소송 공세에 휘말린 역사가 있다. 지금보면 웃음만 나올 뿐이다.

이처럼 저작권을 보유한 엔터테인먼트 진영은 신기술을 적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 때문에 기술을 끌어안기 보다는 대립각을 세우는데 초점을 맞춰왔다.

이런 가운데, 기술 진영은 초반에는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기습공격에 주춤했으나 후반부터 전세를 뒤집으며 막판 대 역전극을 이끌어냈다. 기술 진영은 "위협보다 혜택이 크다"란 슬로건을 앞세워 저작권자들의 공세를 잠재웠다. 결과적으로 신기술은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새로운 기회를 제공했음은 물론이다.

기술과 저작권을 보유한 엔터테인먼트 진영간 갈등은 다람쥐 쳇바퀴처럼 반복되고 있다. 이를 감안하면, 엔터테인먼트 진영이 21세기들어 급속하게 확산된 P2P를 상대로 전면전을 선언한 것도 이상할게 없어 보인다.

그러나 음반업체가 중심이 된 엔터테인먼트 진영은 P2P에서 만큼은 승리를 낙관하는 듯 하다. VCR 때와 달리 대법원에서도 승리를 쟁취한 것. 이들은 그 여세를 몰아 P2P 사용자들에까지 소송을 제기하는 등 전선을 점점 확대하고 있다.

서비스 중단을 선언하는 P2P 서비스 업체들도 속출하고 있다. 의회는 법안 제정을 통해 엔터테인먼트 진영을 측면에서 지원하고 있다. 분위기만 보면 엔터테인먼트 진영의 최종 승리가 눈앞에 다가온 듯 하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그 동안의 역사를 살펴보면 기술과 저작권간 분쟁은 언제나 '공존'을 모색하는 쪽으로 결말이 났다. 물론 그 혜택은 모든 이해 관계자들에게 골고루 돌아갔다.

10년후, 아니 5년후 우리는 P2P를 상대로한 엔터테인먼트 진영의 총공세에 대해 어떤 해석을 내리게될까. 그로기 상태에 몰린 P2P가 어떤 방향으로 튈지 주목되는 순간이다.

황치규기자 delight@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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