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시스템통합(SI) 사업을 집중 육성하겠다고 한다. 1970년대 중동 건설 특수가 일 때처럼 '사이버 건설 신화'를 재현하려 한다.
하지만 SI 업계는 지금 '죽음의 터널'을 통과하고 있다. 수익구조가 극심하게 악화돼 '버티기'조차 힘든 상황이다. 지난해 업계가 내민 성적표는 '참담'할 정도다. 그 상태로 사업을 영위한다는 게 의문스럽기까지 하다. 원인은 복잡하다. 여러 문제가 총체적으로 얽혀있다. 해법도 단순하지 않다.
◆SI 업계의 참담한 실적
지난해 국내 시스템통합(SI) 업체 가운데 순이익을 가장 많이 올린 기업은 LG CNS다. 당기순이익 123억원. 매출은 1조1천617억원이다. 매출액 대비 이익률은 1%를 조금 넘는다. 100원어치 팔아 1원 남짓 남긴다는 뜻이다.
하지만 속을 뜯어보면 1%의 이익률도 불안하다.
예상된 대손을 다 털어낸 게 아니기 때문. 이 회사는 이미 보도됐던 대로 스포츠토토복권 시스템을 구축해주고 그 대가를 다 받지 못했다. 규모는 수백억원대. 이를 두고 현재 재판중이다. 나머지를 받을지 못받을 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지난해 결산 때 이 부분을 다 반영하지 않았다는 점. 반영되지 않은 부분이 순이익 규모인 123억원보다 적지 않다. 따라서 이를 지난해 회계 결산에 전부 반영했다면 적자가 된다는 이야기다.
장부 상 흑자지만 보기에 따라 내용적으로는 적자인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사업 내용. 지난해 매출 가운데 LG 관계사를 통해 일으킨 매출은 5천억원이 넘는다. 관계사 매출 마진이 대개 10~15%인 점을 감안하면 관계사를 통해 500~750억원의 이익을 실현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외부 사업의 결과 순이익은 예상된 대손을 다 털지도 못한 채 123억원에 불과하다.
실제 외부 사업에서 적자 폭은 더 클 가능성이 많다는 뜻이다.
주요 SI 업체 2002년 실적표
| 업체 | 삼성SDS | LG CNS | 현대정보기술 | 쌍용정보통신 | 포스데이타 |
| 매출 | 1조5511억원 | 1조1617억원 | 4378억원 | 2985억원 | 3540억원 |
| 영업이익 | 106억원 | 240억원 | △44억원 | △412억원 | 146억원 |
| 당기순이익 | 82억원 | 123억원 | △899억원 | △503억원 | 26억원 |
| 특이사항 | 경상연구개발비 454억원 | 대손상각비 381억원 | 영업외비용 897억원 | 매출원가 3016억원 | 경상이익 △3천만원 |
그런데 그나마 LG CNS의 사업 내용은 대외 SI 사업을 적극 추진하고 있는 SI 업체 가운데 상대적으로 양호하다는 점이 업계로선 큰 문제다.
삼성SDS는 지난해 총 1조5천511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당기 순이익은 82억원. 100원어치 팔아 미처 1원도 남기지 못했다는 뜻이다.
사업 내용을 구체적으로 보면 더 참담해진다. 이 회사가 지난해 그룹 관계사 등 특수 관계자를 통해 올린 매출은 9천585억원이다. 여기에 업계 통상의 관계사 매출 마진율인 10~15%를 적용하면, 관계사를 통해 올린 이익은 적어도 1천억원 이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당기순이익은 이의 10분1도 안된다. 어디에선가 900억원 이상의 손실이 발생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 회사가 지난해 비용으로 털어 낸 경상연구개발비 450억원을 상계한다 해도, 외부 사업에서 적자폭이 심각하다는 사실이 금방 드러난다.
하지만 이들 업체는 관계사와 외부 사업으로 분리된 사업 구조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와 관련된 손익구조를 밝히지 않고 있다. 이런 수치가 적나라하게 들어날 경우 그나마 확보했던 관계사 마진도 장담할 수 없기 때문.
그럴 개연성이 큰 것은 전체 매출 가운데 비교적 관계사 매출이 적고, 외부 사업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기업의 실적을 비교하면 금방 드러난다.
쌍용정보통신은 올해 2천985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이중 특수관계인 매출이 91억원이다. 3% 남짓이다. 경쟁 업체에 비해 극히 적다. 또 삼성과 LG와 비교하면 이 회사 순이익이 어찌 됐을 지 짐작하고도 남는 일이다.
예상대로다. 이 회사는 2천985억원 매출에, 매출원가가 총 3천16억원이다. 순수하게 직접 영업과 관련해서만 30억원의 적자를 보고 있다. 2천985원 짜리 물건을 파는데 3천16억원의 비용이 든다는 뜻이다. 또 회사 유지와 관련된 판매관리비가 381억원이다. 이미 적자 폭은 400억원 이상이다.
이 정도면 163억원에 달하는 이자 비용 등을 논할 게재가 아니다. 이 회사 당기 순손실은 503억원에 달했다. 이 회사와 삼성SDS 및 LG CNS가 다른 점은, 경쟁 업체의 경우 외부 사업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했던 손실을 특수 관계인을 통해 보전했지만, 이 회사는 그럴 '비빌 언덕'조차 없다는 점이다.
현대정보기술도 쌍용정보와 비슷한 구조를 보이고 있다.
이 회사는 지난해 총 4천378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매출원가는 4천237억원. 매출 마진이 3%대인 141억원이다. 직접 영업을 통한 마진이 회사관리를 위한 판관비 185억원에도 미치지 못한다. 당연히 영업이익은 마이너스다. 44억원. 이래가지고는 장사를 하면 할수록 손해를 보는 구조일 수밖에 없다.
이 회사는 특히 현대 그룹이 계열 분리되기 전에 해외 등에 대규모 투자했던 게 매출로 실현되지 않아 홍역을 앓고 있다. 이 때 투자를 비용으로 털면서 영업외 비용이 897억원에 달했다. 당기순손실은 사상 최대인 899억원. 삼성, LG와 달리 외부 손실보다 더 큰 손실을 '과거 그룹'이 안겨준 셈이다.
이들 4개 업체의 특징은 SI 업체를 대표하는 업체로 공공 분야 등 대외 SI 사업을 주도한다는 점이다. 전자정부 등 대형 공공 SI 프로젝트는 이들 업체가 거의 다 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이들 대외 공공 SI 프로젝트에서 4개 업체는 대규모 손해를 봤다고 볼 수 있다. 또 특수 관계인이 이를 보전해줄 경우 장부상 어느 정도 버텼지만, 이를 보전해줄 만한 특수 관계인이 별로 없을 경우 그 손실분을 그대로 떠안게 된 것이다.
◆SI 업계 최악 실적의 원인과 대안
이런 최악 실적의 원인을 한 마디로 말하기는 어렵다. 많은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얽히고 설켜 있다고 봐야 한다. 또 대내 원인과 대외 원인을 따로 분석할 필요가 있다. 지난해 업계가 사상 최악의 실적을 낸 것은 지난 10여년간 복잡하게 얽혀 있던 여러 문제점들이 일시에 드러난 것이라 할 수 있다.
◇외부적인 원인(시장환경)
우선 외부적인 원인으로 ▲IT 과잉 투자 ▲저가경쟁 ▲낡은 국가계약제도 등이 꼽힌다. 이들 문제점들은 서로 실타래처럼 꼬여 있다.
우선 IT 공급 측면에서 과투자됐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전문가는 드물다. 단적인 예는 SI 업체가 그룹별로 존재한다는 사실. IT 최대 시장이 기업이라고 봤을 때, 국내 SI 분야에서는 기업 시장이 '제로'에 가깝다는 뜻.
이 때문에 SI 업체의 규모와 경쟁력은 철저하게 대기업 그룹에 의존적이다. 그룹의 규모에 따라 SI 업체 순위가 결정된다. SI 업체의 자생력과 기업으로서 생존 능력을 자체 판단키는 어렵다는 뜻이다. 그룹과 운명을 같이하는 것이다. 그룹에서 독립하지 않으면, 독자 경쟁력을 확보하기도 어렵다.
기업 시장이 '제로'에 가깝기 때문에 업계는 공공 시장으로만 몰린다. 치열한 경쟁이 불가피하다. 저가 경쟁이 판친다. 지난해 말 이후 수개월만에 단 돈 1원에 수주하는 사례가 3건이나 나타난 게 이를 증명한다.
최근 대규모 후속 사업을 위해 시범 사업에 덤핑으로 들어가기도 하지만, 외형을 키워야만 하는 답답한 현실이 덤핑을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업계의 현실을 '방조'하는 것도 큰 문제다. 방조를 넘어 악용하는 사례도 많다. 덤핑을 부채질한다. 최저가 입찰제가 그렇다. 덤핑이 뻔히 예상되는 데도 '최저가 입찰'로 발주를 강행한다. 시스템은 부실화하고, 업계는 '피멍'이 들어도 현실은 개선될 기미가 전혀 없는 것이다.
결국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양하고 총체적인 처방이 필요하다. 우선 업계에서는 '시장 논리'가 투명하게 적용될 수 있어야 한다. 능력 있는 기업과 그렇잖은 기업이 판가름나야 한다. 경쟁력 없는 기업은 퇴출돼야 한다. 경쟁력이 없음에도 그룹에 의존해 버티는 기업이 너무 많다. 저가 경쟁과 제살깎기 사업은 좁은 시장에 너무 많은 기업이 난립해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빠른 속도로 M&A가 진행돼야 한다. 당연히 SI 업계와 그룹의 분리가 선행돼야 한다. SI 업계가 그룹의 '심부름꾼'으로 남는 한 경쟁력 제고는 멀고 험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최저가 입찰' 등 정부 제도의 개선도 선결돼야 할 문제이다.
◇내부적인 원인(경쟁력)
시장 환경이 그렇더라도 모든 문제를 외부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SI 업체 내부적으로도 상당히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는 뜻이다.
주로 ▲미숙한 사업 관리와 ▲잘못된 투자가 여기에 해당된다.
특히 미숙한 사업 관리는 수익구조 악화의 결정적 요인.
LG CNS는 스포츠토토복권 시스템 사업을 수주하고 개발해주었다가 아직까지 수백억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 대부분 대손 상각으로 처리될 비용. 삼성SDS도 의약품유통정보시스템 사업을 추진했다가 100억원 이상을 받지 못했다. 이들 사업의 경우 정부 기관과 관련이 컸다는 점에 비춰보면 업계로서는 불가항력 측면이 많다. 정부 발주 사업은 일단 믿고 들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 발주 사업에서 이 정도 손해가 났다면 다른 사업에서 어떤 피해를 입었을지 충분히 짐작되고 남는 일이다.
미숙한 사업관리의 결정판은 쌍용정보가 벌인 해군 관련 사업. 쌍용은 90년대 후반 이 사업을 700억원대에 수주했다. 실제 구축비용은 이보다 2배 컸다. 그만큼 고스란히 손실이 됐다. 이정도면 '사업관리'라는 말이 무색하다.
이런 사례는 밝혀진 것이고, 수억에서 수십 억 원대의 손실을 기록한 사업은 부지기수다. 대외 SI 사업을 적극 펼치는 업체 대부분의 경우 지난해 미숙한 사업 관리로 인한 대손 상각분은 대체적으로 수 백억 원 대다.
이 또한 열악한 '시장 환경'으로 인한 치열한 수주 경쟁의 '뒷 탈'이기는 하지만 사업 수주와 관리를 더 과학적으로 해야할 필요가 큰 것이다.
잘못된 투자도 수익구조를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현대정보는 과거 현대 그룹이 분리되기 전에 그룹 망 통합 등에 대규모 투자를 했다가 그룹이 분리되는 바람에 치명적인 손실을 입었다. 지난해 적자 899억원 가운데, 영업손실 44억원 빼면 대부분이 이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삼성SDS도 이미 솔루션 개발 등에 상당히 투자해놓고 사업 방향을 바꾸거나 사업을 접는 바람에 450억원을 고스란히 비용으로 떨어야했다.
포스데이타도 지난해 146억원의 영업이익을 냈으나 수년전에 투자한 업체가 영업을 포기하는 바람에 경상이익이 3천만원 적자로 돌아섰다. 이 회사는 법인세를 돌려 받아 당기순이익은 26억원 흑자를 지켜낼수 있었다.
SI 업체는 지난해 이후 본격적으로 해외 진출을 추진하면서 해외에 법인을 설립하는 등 투자도 잇따르고 있다. 사업에 성공하지 못할 경우 내년 이후 이 분야가 잠재 부실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적지 않은 상황이다.
결국 SI 업계와 각 업체는 안팎으로 총체적 위기이다. 또 그 위기는 본질적으로 '시장의 구조조정'을 통해서만 해결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임시방편'에 불과할 것이고, 잠재 부실은 언제든지 재현될 수 있는 것이다.
/이균성기자 gslee@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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