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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주 vs 권성문, 10년 경쟁사


'미래에셋·KTB' 키운 국내 자본 시장 기린아

지금으로부터 10년전 국내 자본시장에 두 명의 새내기 스타가 등장했다.

이제는 국내 자본 시장의 '미다스의 손'이 된 미래에셋의 박현주 회장과 국내 최대 벤처캐피탈 KTB네트워크의 권성문 회장이 그 주인공이다.

비슷한 시기 나란히 등장하며 국내 투자업계와 증권가에 명성을 쌓기 시작한 두 사람은 10년이 지난 지금 국내 금융시장의 중심으로 우뚝 섰다.

증권가에서는 자산운용이라는 특성상 박회장의 친정인 한국투자증권이나 삼성투신운용을 미래에셋과 비교하지만 벤처캐피탈업계에서는 나란히 제도권 진입 10년을 맞는 권·박 두사람의 대결에도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특히 2000년 이후 미래에셋의 급성장이 돋보인 가운데 M&A와 벤처투자에 주력해온 KTB네트워크도 최근 전열을 정비하며 사업확대에 나설 뜻을 밝히고 있어 두 주자간의 대결도 본격화될 전망이다.

◆M&A전문가와 최고의 증권영업맨 VC서 만나다

지금은 미래에셋과 KTB의 격차가 크게 벌어졌지만 자본시장에서 먼저 이름을 날린 것은 권성문 회장이다.

권회장은 95년 PC용 사운드 카드 제조업체 옥소리의 한솔그룹 매각을 주도하며 한국 M&A사에 새 역사를 썼다. 권성문이란 이름 자체가 M&A를 대변할 정도였다.

그는 이후에도 각종 M&A건을 성사시켰고 1996년 말 직접 상장기업인 군자산업(현 미래와사람)을 인수했다.

미래와사람은 1년뒤인 1997년 적잖은 논란을 만들어낸 '냉각캔'을 통해 증시의 스타로 떠올랐다.

캔을 따는 순간 냉각이 된다는 사실만으로 미래와사람의 주가는 수직상승했고 그해 증시의 최고 스타주가 됐다. 당연히 권회장에 세간의 시선이 집중되기 시작했다.

이후 그는 1999년 정부가 매각을 추진중이던 한국종합기술금융(현 KTB네크워크)를 치열한 경합끝에 인수에 성공했다. 재벌기업과의 경쟁을 이긴 그에게 다윗이 골리앗을 삼켰다는 평이 줄을 이었다.

이어 그는 KTB자산운용을 설립하며 벤처캐피탈과 자산운용을 결합한 구도를 만들었다.

권회장은 KTB인수 후에는 개인적인 투자를 진행해 옥션, 잡코리아 등에서 대단한 수익을 기록하는 수완을 보였다.

2001년 인터넷 경매업체 옥션을 미국의 이베이에 매각해 600 여억원의 차익을 남겼고 지난 2005년에도 취업포털 잡코리아를 미국계 인터넷 취업업체 몬스터 닷컴에 매각해 역시 600억원의 고수익을 기록했다.

VC투자와 M&A 능력을 모두를 보여준 셈이다.

그러나 개인적인 성공과 달리 2000년 이후 KTB네트워크의 상황은 그리 녹록치 않았다. 벤처버블의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벤처거품이 빠지며 부실이 늘어났고 그결과 사옥매각, 인력 조정 등의 구조조정 과정을 수년간 겪어야 했다.

KTB네트워크는 2004년 부실자산 감액 처분손실로 1천100억원을 털어내는 등 2000년 이후 2천800억원의 손실을 반영해야 했다.

벤처거품이 꺼지며 투자대상이 줄자 사모펀드인 PEF, 구조조정조합인 CRC등 대안투자로 눈을 돌려야 했다.

물론 최근에는 이 같은 변신 노력이 성과를 거두며 턴어라운드에 성공하며 새로운 도약을 진행하고 있다.

KTB네트워크는 자회사인 KTB자산운용의 자산 6조원을 합하면 총 7조원의 투자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출발에선 밀렸지만 뒷심 앞선 미래에셋

미래에셋은 스타 영업맨 박현주 회장이 동원증권에서 독립, 벤처캐피탈을 시작으로 자산운용, 증권, 생명보험 등으로 세를 불리며 성장해왔다.

어느덧 자산규모도 약 30조원으로 국내 증시를 좌지우지할 정도다. 뮤추얼펀드, 적립식 펀드 열풍을 주도한 덕에 투자자들은 미래에셋하면 투자의 1번지로 생각하게 됐다.

국내 증시뿐 아니라 해외투자, 부동산투자 등에서도 발군의 성적을 내고 있다.

지금의 미래에셋과 KTB네트워크를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2000년 이전까지만해도 두 회사의 대소를 비교하긴 어렵지 않았다. 오히려 권회장측의 KTB네트워크 측이 앞선다는 평도 많았다.

VC업계의 한 관계자는 "초기에만 해도 권회장이 박회장에 상당히 앞서 있었다"고 회상했다.

일단 업무 자체가 대동소이했다. 박회장은 97년 미래에셋그룹의 지주회사인 미래에셋캐피탈을 설립해 벤처투자에 나선다. 권회장도 본업인 M&A에서 벗어나 99년 KTB네트워크를 인수하며 벤처투자 자산과 인력을 확보할 시기와 비슷했다.

이들의 판단이 옳았던 것을 증명하기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1999년 코스닥 열풍과 함께 미래에셋은 다음커뮤니케이션에서 1천억대의 큰 수익을 얻었다.

그런데 이즈음 변화가 시작됐다. 미래에셋이 자산운용사를 설립하고 나선 것. 1999년 때마침 불어닦친 주식시장 활황을 타고 박현주 회장의 이름을 앞세운 뮤츄얼펀드는 히트상품이 됐고 시중의 자금을 빨아들였다. 여기서부터 KTB와의 격차가 조금씩 벌어진다.

KTB도 스타급 펀드매니저인 장인환씨를 영입해 KTB네트워크 자산운용을 설립했지만 투자자들은 미래에셋의 이름을 기억하기 시작했다.

두 회사의 규모가 차이 나기 시작한 데는 증권사 보유 여부가 큰 영향을 미쳤다. 과거 두 회사는 비슷한 시기에 증권사 설립을 추진했던 비화가 있다.

박회장은 미래에셋증권을 설립하며 벤처캐피탈->자산운용->증권사로의 전환을 착착 이뤄내는데 성공했다. 증권사 설립을 통해 펀드판매 창구를 확보한 미래에셋은 파격적인 매매수수료 등으로 증권시장에 적잖은 파장을 일으켰고 투자자들에게 미래에셋이란 이미지를 확실히 심었다.

이에 반해 권회장의 KTB는 성장가도가 증권사 부분에서 맥이 막혀버렸다.

KTB는 증권사와 관련해 아픈 기억이 있다. 이미 설립 준비까지 모두 마쳐 놓은 키움증권을 금융감독당국의 허가를 얻지 못해 포기해야 했던 것. 현재 키움증권은 국내 온라인 주식거래 시장의 1인자로 급부상하며 KTB네트워크의 시가총액의 약 2배인 1조원이 넘는 가치를 형성하고 있다.

금융감독당국의 한 고위 관계자는 당시 사정을 "누구에게나 증권사를 허용할 수 없었다"고 술회했다.

액면가 투자였던만큼 만 7년여 만에 15배 정도의 고수익을 내는 것은 물론 자본시장통합법 시대를 맞아 가장 수혜가 예상되는 증권사를 가질 뻔한 기회를 놓친 셈이다.

권회장 입장에서는 땅을 치고 후회할 노릇이다. 김한섭 KTB네트워크 대표도 최근 "(우리도)증권사만 있었으면 지금과 상황이 크게 달랐을 것"이라고 말할 정도다.

◆향후 10년을 내다본 제2의 경쟁 기대

물론 미래에셋도 패착이 없던 것은 아니다. 미래에셋은 지난 2000년 세간의 화제가 됐던 라이코스 투자에서 큰 낭패를 봤다. 이후 미래에셋은 그룹 성장의 원천이 된 벤처캐피탈 보다는 자산운용과 증권사 육성에 혼 힘을 쏟아 부었다.

만약 박현주 회장이 라이코스 투자에서 성공해 벤처투자를 계속했다면 지금과 같은 미래에셋의 위상을 확보했으리라 장담할 수 없었을 것이란 게 증권가의 분석이다.

대신 박현주 회장은 SK생명(현 미래에셋생명)과 SK투신운용(현 미래에셋맵스자산운용)을 인수하며 권회장의 장기인 M&A에서도 큰 성과를 내며 그룹의 외연을 확장해냈다.

그렇지만 최근 KTB네트워크도 자산운용 부분의 성장을 발판삼아 증권사 인수를 추진하는 등 변화를 모색 중이어서 다가올 10년의 미래에셋과의 경쟁은 제 2라운드를 맞을 전망이다.

최근 권성문 회장은 새로운 먹거리를 발굴하라며 직원들을 매섭게 다그치고 있다. 획기적인 인사개편도 새로운 도약을 위한 배경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이미 미래에셋의 규모가 KTB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진 만큼 권성문 회장의 추격이 쉽지 않다는 평도 있다.

그만큼 이미 국내 자본시장에 박힌 미래에셋의 뿌리가 깊다는 진단이다.

/백종민기자 cinqange@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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