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통신시장의 가장 큰 화두는 'KT민영화'이다. 민영화된 KT의 주인이 누가 될 것인가. 6월말까지 정부 보유지분 28.4%를 과연 매각할 수 있을까. KT 민영화 이후 통신시장에서 공정경쟁의 룰은 지켜질 수 있을것인가 등등 통신업계 사람들이 둘만 모이면 KT민영화로 화제가 집중되고 있다.
KT민영화라는 사안 자체가 국내 통신산업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통신업계 한 고위 관계자는 "KT민영화는 KT라는 특정기업의 주인을 민간에게 넘겨주는 차원이 아니라 국내 통신산업의 발전전망을 어떻게 제시할 것인가 하는 거시적 안목에서 추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원칙적이고 교과서적인 말이기는 하지만 KT민영화가 완료되고 향후 민영화된 KT에 대한 비대칭적 규제를 추진해 가는 전 과정에서 반드시 지켜져야 할 원칙이라는게 이 관계자의 지적이다.
◆민영화가 KT의 규제를 축소할 수 있는가?
KT 민영화를 가장 희망하는 측은 당사자인 KT이다.
범정부 차원에서 공기업 민영화를 통한 공적자금 확보 의지와 공기업 개혁의 성과를 올리려는 희망보다 KT가 스스로 민영화를 바라는 희망이 더욱 간절하다는 얘기다.
이유는 하나이다. 정부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것.
그동안 KT는 공기업에 대한 규제와 통신시장의 지배적사업자에 대한 산업적 규제를 동시에 받아왔다.
지배적사업자로서 요금규제와 통신망 개방에 대한 압력등 산업적 규제는 물론 감사원과 국회의 감사를 받는 것과 함께 장비구매에 있어서도 중소기업에 대한 우대조건을 지켜야 하는등 공기업적 규제가 동시에 존재하고 있는 상황이다.
KT의 한 관계자는 "민영화를 통해 공기업적 규제만이라도 벗어나야 한다는게 KT의 바램"이라며 "이미 치열한 경쟁상황에 접어든 통신서비스 시장에서 공기업적 규제를 받는 KT는 민간기업과의 경쟁 자체가 불가능한 실정"이라고 심정을 토로했다.
공기업적 규제에서 풀려나면 경영의 효율성이 대폭 향상될 것이라는게 KT의 예상이다.
그러나 이같은 KT의 예상은 빗나갈 가능성이 높다는 게 통신업계의 전망이다.
통신분야 규제정책을 연구하는 한 연구원은 "정부는 KT민영화에 앞서 공기업으로서 KT가 받고 있던 많은 규제의 내용들을 비대칭규제와 공정경쟁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산업적 규제로 전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표적인 사안들이 ▲원가에 근거하지 않은 시외접속료 할인 정책 ▲가입자망 공동활용에 대한 대가 할인 정책 ▲보편적서비스 손실보전 비율 확대 지연등이라는게 이 연구원의 설명이다.
◆시내망 분리 요구 '솔솔'
KT민영화 이후 공정경쟁 환경에 대한 의구심을 강하게 제기하고 있는 후발 경쟁사업자들은 궁극적으로 KT의 시내망 분리를 요구하고 있다.
시내망을 확보하고 있는 KT는 민영화 이후 어떠한 규제환경에서도 공정경쟁 여건을 지켜나갈 수 없다는게 후발경쟁사업자들의 정서이다.
후발 경쟁사업자들은 "KT 민영화 이전에 시내망 부분을 별도로 분리, 통신사업자가 공동으로 관리, 운용하거나 정부의 재산으로 남겨두는 방식으로 공정경쟁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KT는 전국적인 가입자망 확보의 재원으로 활용한 시내전화 설비비를 완전히 반환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어서 후발사업자들의 공정경쟁 환경 조성이라는 명분과 함께 어우러질 경우 시내망 분리 논의는 더욱 확산될 수 있는 소지를 안고 있다.
경쟁사업체의 한 관계자는 "국민들의 설비비로 구축한 시내망을 민영화를 통해 특정기업에게 안겨줄 경우 국민의 재산을 사적으로 독점하게 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는 우려를 제기했다.
지난 99년까지 약 4조6천억원에 달하던 KT의 시내전화 설비비 부채는 지난 2000년부터 KT의 전화가입 제도 변경으로 인해 지난해말 현재 2조3천530억원 수준으로 감소했다.
그러나 KT의 시내망을 분리할 경우 KT는 동남아시장에서 조차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지 못하게 될 뿐 아니라 향후 IT강국으로서의 국내 위상을 해치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는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경영권 향방이 논란의 핵심
KT 민영화를 둘러싼 우려와 논란의 핵심은 민영 KT의 경영권 향방으로 모아진다.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투명한 기업으로서 통신시장 공정경쟁과 통신산업의 발전을 위한 정부정책을 충실히 수행하는가, 아니면 특정재벌의 이익을 실현하는 거대 통신사업자로서의 위치를 갖는가 하는 문제가 경영권 향방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KT를 소유하는 측이 경영권까지 모두 확보할 경우 KT를 통한 공정경쟁 환경 구현을 기대하기 어렵다는게 통신업계와 학계의 공통적인 의견이다.
그러나 정부는 지난해 3월 "민영화까지는 전문경영인 체제를 유지하지만 완전 민영화 이후에는 특정기업이 시장에서 지분을 매입, 경영권을 확보하고자 할 경우 소유자의 경영권 확보도 허용한다"고 밝혀 사실상 소유와 경영 분리 원칙을 폐기한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KT의 동일인지분한도 규정은 정부지분이 완전히 매각된 이후 첫 주주총회 이후부터는 완전히 사라진다.
경영권을 확보하고자 할 경우 주식시장을 통해 무한대의 지분매입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에대해 KT 민영화추진단은 "공기업민영화특별법의 소유·경영 분리 원칙을 지켜 사장추천위원회 설치등을 오는 22일 정관에 명시, 소유와 경영이 분리될 수 있는 규정을 명획히 할 생각"이라고 대안을 제시했다.
또 "6월 민영화 완료 과정에서도 KT의 주식은 특정기업이 대주주의 권한을 행사하는 모양이 아닌 소액주주들의 분산 형태가 될 것으로 본다"며 "이렇게 되면 전문경영인의 경영수완에 따라 주가가 상승하고 특정기업이 시장에서 대규모 매입이 어려운 선진국형 민영화 모델을 따라갈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결국 정부는 보유하고 있는 KT 주식매각을 위해 소유자의 경영권 확보를 허용했으나 시장에서의 주가 관리를 통해 특정재벌의 경영권 독점이 어려운 상황을 마련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 관계자는 "시장의 관리를 통해 M&A와 경영권 독립을 보장할 수 있는 상황에서 정관이나 특별법등이 규제방안을 명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경영권과 규제에 대한 투명한 정책방안 제시돼야
민영 KT의 경영권 문제에 대해 KT와 정부의 입장이 서로 다른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가운데 투자가 보호와 통신업계의 우려를 불식할 수 있는 정부차원의 보다 투명한 정책방안이 제시돼야 한다는 지적이 고개를 들고 있다.
또 KT에 대한 규제를 통해 후발사업자들을 KT와의 경쟁대상으로 육성한다는 기존의 정책방향도 대폭 수정돼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우선 후발사업자들이 공정경쟁에 대한 우려를 제기하고 있는 KT의 시내망 분리 주장에 대한 정부의 정확한 입장이 밝혀져야 한다는 것이다.
정통부가 이미 "KT에서 시내망을 분리할 경우 민영화가 오히려 늦어질 수 있으며 경쟁력도 하락할 수 밖에 없어 시내망 분리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입장을 밝힌 상황이다.
그러나 후발사업자들의 시내망 분리 요구가 수그러들지 않는 이유는 시내망을 소유한 KT가 후발사업자와의 공정경쟁을 해치지 않도록 할 수 있는 대안이 확실치 않다는 것이다.
KT의 한 관계자는 "그동안의 통신정책은 국내에서 KT의 경쟁력을 붙잡아 후발사업자들이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해 주는 것이었다"며 "KT가 민영화된 이후에는 이같은 정책근간이 실현될 수도 없을 뿐 아니라 국내 통신산업 전체에 대한 경쟁력 하향 평준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원가에 근거한 접속료 체계 적용등 시장원리를 적용, KT와 후발사업자의 경쟁력이 동시에 제고될 수 있는 현명한 정책대안이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향후 KT에 대한 규제는 어떠한 원칙과 방향으로 진행될 것인지에 대한 근간을 제시하고 이에대한 후발사업자들의 의견을 폭넓게 수렴하는 절차가 필요하다는게 업계의 의견이다.
이를 통해 KT민영화 이후 정부의 통신산업 규제정책에 대해 사전에 예측할 수 있는 정책환경을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최근 발전산업 민영화 과정에서 최수병 한전사장의 사퇴까지 이어진 노조의 장기파업 사태를 보면 KT 역시 노조와의 합의점을 찾아내는 작업이 반드시 수반돼야 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그동안의 민영화 논의에서 소외돼 왔다고 판단한 KT노조가 최근 민영화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본격적인 반대에 나서고 있는 가운데 노조와의 사전 합의점 찾기가 민영화 추진과정에서의 주요 쟁점으로 부상할 전망이다.
이와관련 통신업계의 한 전문가는 "KT 민영화는 일반적인 공기업 민영화 논리와 함께 네트워크 산업의 특수성과 전체 통신산업의 발전, 노조와의 합의점 도출등 제반 문제에 대한 투명한 정책방안 마련이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전문가는 "선행과제 해결 보다는 6월까지 정부지분 완전 매각이라는 시간적 제한에 중점을 맞춰 진행되는 현재의 KT민영화는 향후 통신시장에 대한 심각한 폐해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구순기자 cafe9@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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