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뉴스24 서상혁 기자] 한국씨티은행의 소비자 금융 시장 철수 방침이 정해지면서, 이제 관심은 '출구 전략'에 모아지고 있다. 노동조합(노조)이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하면 고용 승계까지 포함된 '통매각'이 이상적인 출구 전략으로 거론되나, 업계에선 '분할 매각' 정도가 그나마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
20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 15일 씨티그룹은 1분기 실적을 발표하며 한국을 포함한 13개 국가의 소비자 금융 사업에서 출구 전략을 추진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에 따라 한국씨티은행도 개인 고객을 대상으로 한 소비자 금융 시장에서 철수하고, 기업 금융에 집중한다는 방침이다.
◆ 노조, 강력 반발…"고용 안정과 고객 보호 위해 싸울 것"
한국씨티은행 노조는 즉각 반발했다. 노조는 씨티그룹의 발표 다음 날 입장문을 내고 "새로운 것이 아니라 10년째 진행되고 있는 글로벌 구조조정의 종착역"이라며 "소비자 금융에 대한 매각 또는 철수 등 출구전략이 추진될 경우 대규모 실업사태가 발생하며, 고객에 대한 피해가 우려된다"라고 밝혔다.
진창근 한국씨티은행 노조위원장은 "매각이든 철수든 뉴욕 본사의 마음대로 되지 않을 것"이라며 "앞으로 직원들의 고용 안정과 고객 보호를 위해 제대로 맞서 싸울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한국씨티은행이 소비자 금융 시장에서 철수한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실제 은행 측엔 문의 전화가 평소보다 25% 이상 증가하기도 했다. 다만, 노조가 주장하는 '뱅크런(예금이 대량으로 인출되는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다는 게 은행의 설명이다.
씨티은행 관계자는 "고객의 문의는 평소보다 25% 증가했으며, 향후 구체적인 계획이 확정될 때까지 변함없이 금융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을 고객들에게 안내하고 있다"라며 "노조가 주장하는 '뱅크런'은 전혀 사실과 다르며, 은행의 수신고는 평소 변동 범위 내에 있다"라고 밝혔다.
◆ 통매각 이상적이지만…분리 매각 가능성↑
씨티그룹이 명확하게 철수 의사를 표한 만큼, 이제 시선은 '어떻게 철수할 것인지'로 모이고 있다.
한국씨티은행의 전체 자산 중 소비자 금융이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 지난해 말 한국씨티은행의 총 여신은 24조3천억원인데, 이중 소매금융은 절반이 넘는 16조9천억원이다. 임직원 수는 3천500명이며, 소매금융 전담 직원은 939명이다. 43개 점포 중 소매금융 점포는 36개를 차지하고 있다.
노조가 강력하게 반발하는 상황에서, 그나마 마찰을 줄일 시나리오로는 고용 승계가 동반된 '통매각'이 거론된다. 노조의 최우선 목표가 고용 안정이기 때문이다.
회사도 여러 개로 쪼개는 것보다는 한 번에 정리하는 걸 더 선호할 수 있다. 지난 2014년 일본 미쓰이스미토모은행이 일본씨티은행의 개인금융 부문을 인수했던 사례도 있다.
잠재적인 인수 후보로는 지방 금융지주와 일부 대형 저축은행이 있다. 지방 금융지주로선 수도권으로 영업 네트워크를 확장할 수 있으며, 저축은행은 은행업 라이선스를 취득할 수 있으니 나설 유인은 있다.
그래도 업계는 통매각 시나리오는 가능성이 낮다고 전망한다. 저금리 기조 장기화로 모든 업권이 비용 효율화에 몰두하고 있는 와중에 굳이 몸집을 키울 필요가 있겠느냐는 것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매력이 있었으면 진작에 후보 리스트가 만들어졌을 것"이라며 "각 은행들이 점포나 직원 규모를 줄이고 있는 지금 상황에선 통매각이 이뤄질 가능성은 높게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현재로선 '분리 매각'이 가장 현실적인 방법으로 거론된다. 자산관리(WM), 뱅킹, 신용카드 등 소비자 금융 사업 부문을 쪼개서 매각하는 방식이다. 한국과 함께 씨티그룹이 소비자 금융 철수를 선언한 호주에선 분리 매각이 추진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WM 부문의 경우 경쟁이 붙을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씨티은행은 '프라이빗뱅킹(PB) 명가'로 불릴 만큼 과거부터 WM 부문은 경쟁력이 있다고 평가받고 있다. 사모펀드 사태로 은행권이 큰 타격을 입었지만 씨티은행의 자산관리 규모는 오히려 확대됐다. 씨티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은행의 고액 자산가 등급 고객수는 전년 말 대비 14% 증가했다.
은행권 관계자는 "씨티은행의 WM 부문은 과거부터 거래하는 고객이 많고, 강했던 분야"라며 "그간 씨티은행이 쌓아온 실력과 시스템을 고려하면 여전히 매력이 있다고 본다"라고 관측했다.
만약 인수 의향을 표하는 회사가 나타나지 않을 경우 단계적으로 축소하는 절차를 밟게 된다. 회사나 노조 입장에선 최악의 시나리오다.
금융당국도 씨티은행의 향후 행보에 대해 각별히 주의 깊게 보고 있다. 금융위는 지난 16일 "향후 진행상황 등을 면밀히 모니터링할 계획이며, 소비자 불편 최소화, 고용안정, 고객 데이터 보호 등을 위해 필요한 조치를 검토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씨티은행은 오는 27일 이사회를 개최한다. 아직 구체적인 안건은 확인되지 않으나, 향후 출구전략 방법론에 대한 논의가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유명순 한국씨티은행장은 씨티그룹의 철수 발표가 있었던 지난 15일 직원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통해 "저를 포함한 한국씨티은행의 경영진은 이사회와 함꼐 추후 가능한 모든 실행 방안에 대해 충분한 시간을 갖고 신중하게 검토할 예정"이라며 "이번 발표에 따른 후속 계획이 마련되는 대로 감독 당국과 필요한 상의를 거쳐 관련 당사자들과의 충분한 협의 하에 절차를 진행할 것"이라고 전했다.
/서상혁 기자(hyuk@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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