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격호 별세] 성공신화의 이면…'3부인 4자녀' 복잡한 가정사


형제간 분쟁·잦은 결혼 등으로 다사다난…신춘호·서미경, 영결식 불참

[아이뉴스24 장유미 기자] 재계 1세대 경영인이자 롯데그룹 창업주인 신격호 명예회장이 99세의 일기로 세상을 등졌다. 일본에서 시작해 한일을 넘나들며 대기업을 이뤄낸 성공신화의 주인공이지만 그 이면은 녹록하지 않은 삶이었다.

신 명예회장은 생전 형제들과의 분쟁, 잦은 결혼, 아들 간 경영권 분쟁 등의 문제가 불거지면서 화려한 이면에 어두운 그늘도 있었다.

22일 재계에 따르면 신 명예회장은 1921년 경남 울산에서 5남 5녀의 첫째로 태어났다. 1941년 일본으로 건나간 뒤 1948년 도쿄에서 롯데홀딩스 전신인 (주)롯데를 창업해 종합제과업체로 키웠다.

고(苦)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 영결식. 신 명예회장의 장남인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의 아들 신정훈 씨가 영정을, 차남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아들 신유열 씨가 위패를 들고 있다. [사진=아이뉴스24 DB]
고(苦)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 영결식. 신 명예회장의 장남인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의 아들 신정훈 씨가 영정을, 차남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아들 신유열 씨가 위패를 들고 있다. [사진=아이뉴스24 DB]

신 명예회장은 생애 3명의 부인과 4명의 자녀를 두고 있다. 첫 번째 부인은 고(故) 노순화 씨로 1940년 부부의 연을 맺었으며, 신영자 이사장을 낳았다. 그러나 노 씨는 1951년 생을 마감했다.

신 명예회장은 일본에서 처음에 비누와 화장품을 만들었으나, 이를 기반으로 껌 사업에 뛰어들어 성공가도를 달렸다. 1952년에는 일본 유력 가문의 딸인 시게미스 하츠코(重光初子) 여사와 결혼해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현 SDJ코퍼레이션 회장)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을 낳았다. 두 사람은 유년 시절 동안 일본에서 자랐다.

고(故)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의 부인 시게미스 하츠코 여사 [사진=아이뉴스24 DB]
고(故)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의 부인 시게미스 하츠코 여사 [사진=아이뉴스24 DB]

한·일 국교 정상화 이후인 1967년에는 한국으로 돌아와 자본금 3천만 원으로 서울에 롯데제과를 설립했다. 신 명예회장은 국내에서 식품뿐만 아니라 유통·관광·화학 등으로 사업을 확장시켜 롯데그룹을 90여 개의 계열사, 매출 100조 원의 재계 서열 5위 기업으로 키웠다.

그 사이 신 명예회장은 1970년대 하이틴 스타였던 서미경 씨와 사실혼 관계를 맺고, 1983년 신유미 롯데호텔 고문을 낳았다. 서 씨는 1972년 제1회 미스롯데 선발대회에서 대상을 받은 후 롯데제과 CF, 영화 '방년 18세', '여고교사', '청춘 불시착' 등에 출연하며 높은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1982년 돌연 일본으로 떠나 자취를 감췄고, 이듬해 딸 신유미 씨가 태어났다. 당시 신 명예회장의 나이는 61세, 서 씨는 20대 중반이었다. 서 씨는 차남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보다도 24세 어리다.

고(故)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 영결식에 참석한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앞)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사진=아이뉴스24 DB]
고(故)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 영결식에 참석한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앞)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사진=아이뉴스24 DB]

이 같은 복잡한 가족 관계 때문에 신 명예회장은 자녀들의 경영권 분쟁에 휘말려 말년에 힘든 시기를 겪었다. 현역 시절 명확하게 정리되지 않은 후계 구도 탓에 신동주 전 부회장과 신동빈 회장 사이에 경영권을 두고 갈등이 커졌기 때문이다.

신 전 부회장은 2013년께부터 신 명예회장의 건강이 나빠지자 기회를 노리고 2015년 7월 '형제의 난'을 일으켰다. 이 과정에서 롯데그룹의 복잡한 지배구조와 신 명예회장의 '손가락 경영' 등이 드러나면서 창업 이래 최대 위기를 맞았다. 이로 인해 신 명예회장은 주요 계열사 이사직을 순차적으로 사임,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 덕분에 차남 신동빈 회장의 경영권은 더욱 공고해졌다.

또 이를 시작으로 신 명예회장은 두 아들과 함께 경영비리 혐의로 2017년 12월 징역 4년 및 벌금 35억 원을 선고 받았다. 다만 건강상의 이유로 법정구속은 면했으며, 법원으로부터 한정 후견인을 지정받아 지내다 영면했다.

고(故)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의 막내 동생인 신준호 푸르밀 회장 [사진=아이뉴스24 DB]
고(故)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의 막내 동생인 신준호 푸르밀 회장 [사진=아이뉴스24 DB]

신 명예회장은 형제들과도 잦은 불화를 빚었다. 사업 초기부터 형제들을 경영에 참여시켰으나, 서로간 견해 차이가 심해 사이가 멀어졌다.

2남 고(故) 신철호 롯데사장은 1950년대 회삿돈 횡령 의혹으로 구속돼 관계가 틀어졌고, 3남 신춘호 농심 회장은 라면 사업에 대한 견해 차이로 갈라섰다. 또 막내 동생인 신준호 푸르밀 회장은 1996년 서울 양평동 롯데제과 부지 소유권 문제로 법정 소송을 치르며 사이가 벌어졌다. 막내 여동생 신정희 동화면세점 사장과도 그룹 로고를 두고 법적 분쟁을 벌이기도 했다.

특히 신춘호 회장은 일본 롯데 이사로 재직하던 1960년대 신 명예회장이 "시기상조"라며 만류했음에도 라면 사업을 시작했다. 이후 1965년 롯데공업을 차리며 본격적으로 사업에 나섰고, 신 명예회장은 "롯데라는 사명을 쓰지 말라"고 일갈하며 갈등을 키웠다.

이후 신춘호 회장은 사명을 롯데공업에서 농심으로 바꿨고, 수십년간 신 명예회장과 만나지 않았다. 또 신 명예회장의 타계에도 불구하고 끝내 빈소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대신 신춘호 회장은 그의 아들인 신동원 농심 부회장과 신동윤 율촌화학 부회장을 보내 빈소를 지키도록 했다.

롯데지주 관계자는 "신춘호 회장과 서미경 씨, 신유미 씨는 영결식에서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고 밝혔다.

신 명예회장의 장례는 그룹장으로 4일간 진행됐으며, 영결식은 이날 오전 7시 롯데콘서트홀에서 진행됐다. 롯데그룹은 오후 2시께 고인의 고향인 울산시 울주군 삼동면 둔기리 선산에서 장례식을 치를 예정이다.

장유미 기자 sweet@inews24.com, 사진=정소희 기자 ss082@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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