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말 들어봐. 예전 합성그림은 사람 얼굴사진만 오려서 그림에다가 붙인 거였잖아. 그걸 반대로 한번 해보자구. 실사 배경에다가 사람 얼굴을 만화로 처리하면 재미있지 않을까?"
지난 8일 오후 3시, 엽기사이트 '풀빵닷컴'(www.pull0.com)의 회의실. 인터넷작가 '꼬름' 김도영씨가 회의에서 아이디어를 제안하자, 작가들이 이 아이디어에 대해 한마디씩 꺼낸다.
"아이디어는 재미있는데 번거로울 것 같아. 배경이 실사라면 일일히 사진을 찍어야 되잖아. 수작업이 너무 많으면 제작시간이 길어지지 않을까?"('차차' 차세정), "괜찮을 것 같은데, 그런데 이게 뜰 수 있을 지 궁금하네"('뭉삼' 마세영)
그들이 선보이는 작품만큼 다소 엽기스러운 소재에 대한 발칙하고도 신랄한 의견들이 오갈 것이라는 예측은 무너졌다. 작가 회의에는 신세대스러운 발랄함이 묻어 있었지만, 네티즌의 인기 그리고 작품 개발의 주의점에 대한 의견을 진지하게 주고 받는 데서 '인터넷 작가'라는 프로정신을 찾아볼 수 있었다.

작가들이 가장 비중있게 다루는 부분은 아이디어가 귀에 솔깃할 정도로 매력적이더라도 작품을 제작하는 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투입되느냐는 점. 풀빵닷컴이 매스컴을 통해 부각되면서, 풀빵닷컴의 인기 콘텐츠들은 하루만에 인터넷 곳곳에 널리 퍼지게 됐다.
그만큼 인터넷에서 작품의 유포속도가 더욱 빨라져 작가들이 제작해야 될 작품들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풀빵닷컴이 네티즌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는 단적인 사례이기도 하다.
하지만 인기를 얻은 작품만큼 풀빵닷컴에서는 빛을 보지도 못하고 묻혀지는 작품들도 많다.
당연 작가들의 최대 관심사는 네티즌들로부터 눈길을 받느냐는 것. 이들은 네티즌들의 엽기와 유머 코드를 개척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대단하다. 하지만 그들이 선보이는 작품들이 인터넷에 대박을 치리라고는 섣불리 장담하지 못한다.
'차차' 차세정씨는 "야심작이라고 선보였다가 네티즌들이 눈길조차 주지 않아 낭패를 보는 경우도 있는 반면, 그다지 기대하지 않았던 작품이 큰 인기를 얻는 경우도 더러 있다"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그들이 작품을 만드는 기준은 과연 무엇일까? 작품을 선정하는 풀빵닷컴만의 기준이 궁금했다.
김도영씨는 "주로 인터넷을 서핑할 때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중요한 소재가 된다"고 말했다. 네티즌의 성향을 철저히 분석한 작품을 선보이기 보다는 럭비공처럼 어디로 튈지 모르는 네티즌의 성향을 파고들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즉흥성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상당수의 아이디어는 일하는 도중에 발생한다.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기 보다 인터넷을 즐기면서 불현듯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활용하는 경우도 많다.
그 때문일까? 풀빵닷컴이 선보인 작품들은 다양한 방면의 신선한 아이디어가 돋보인다는 점을 높게 평가받는다.
영화 '실미도'를 풍자했던 윷놀이 플래시 '설마도', '락커'로 분장한 최성국이 역사와 광고속으로 뛰어든 '최성국 시리즈', 무명가수가 인기가요를 패러디해서 부른 '박분자' 등의 인기작들은 표현은 다소 거칠더라도 아이디어의 참신성이 무엇보다도 네티즌들로부터 높게 평가를 받는다.
최근 '풀빵닷컴' 사이트를 잠재운 장본인인 서울시 신교통체계를 풍자한 플래시 '버스로얄'도 이와 유사하다.
영화 '배틀로얄'을 패러디한 이 작품은 영화의 일부 장면을 패러디하면서 가운데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작품의 기획과 제작은 매우 뛰어났지만 플래시 가운데 구멍이 생겼다는 것은 용서받을 수 없는 일. 이를 해결하기 위해 '풀빵'이란 글자를 오려붙이면서 사태를 수습했다.
하지만 네티즌들은 '버스로얄 이 원작인 '배틀로얄'의 특징을 살리면서도 버스개편을 신랄하게 풍자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해 '구멍' 사고에 대해서는 관대한 모습을 보였다.
풀빵닷컴의 홍보를 맡고 있는 구영진 대리는 "작가들 저마다 팬클럽을 보유하고 있을 만큼 네티즌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면서 "이들이 다른 회사로 스카우트 당할 까봐 회사에서 우려하고 있을 정도"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국순신기자 kookst@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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