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런던올림픽

[이성필기자] 2006 도하 아시안게임. 복싱에 출전한 한순철(28, 서울시청)은 파죽지세로 결승전에 올랐다. 금메달을 획득하면 병역혜택을 얻을 수 있어 죽기살기로 싸웠다.

하지만, 너무 의욕이 넘쳤는지 패하고 말았고 결과는 은메달이었다. 너무 성급했다는 생각에 경기가 끝난 후 한순철은 펑펑 울었다. 경기 운영에서 미숙했다는 지적을 보완하기 위해 2008 베이징올림픽을 준비하며 체중 감량에 나섰다.

또, 실패였다. 체중 조절은 의욕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었고 충격의 16강 탈락이라는 성적표를 받았다. 안타까움의 연속이었다. 침체된 한국 복싱을 살리기 위해서는 자신의 성적이 중요했지만 기대감이라는 무게를 이겨내지 못했다.

다시 4년을 준비하는 동안 변화가 생겼다. 자신의 특징을 살리는 복싱에 집중했다. 178㎝의 큰 신장을 이용해 거리를 유지하며 카운터 펀치로 상대를 제압했고 장기인 오른손 스트레이트를 보강했다.

상대의 저돌적인 공격에는 클린치(상대를 껴안으며 공격을 저지하는 것)를 시도하는 영리함을 보였다.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는 동메달에 머물렀지만 자신감을 잃지 않았다.

노련미가 붙으면서 2012 런던 올림픽에 대한 기대는 커졌다. 설악중 2학년 때 복싱에 입문한 뒤 가장 기분이 좋았다. 런던은 1948년 한국 복싱이 첫 메달을 딴 성지다. 고(故) 한수안 선생이 대한민국으로 첫 출전한 런던 대회에서 동메달을 획득했다. 왼쪽 고막이 터지면서도 8강전에서 이기는 선전을 펼쳤다.

이런 뜻깊은 곳 런던에서 한순철은 가족의 힘으로 뛰며 결승까지 진출했다. 올 12월 결혼식을 올리기로 한 부인 임연아(22) 씨와 두 살 난 딸 도이의 존재는 그에게 책임감을 심어줬다. 경기마다 두 가족 생각에 힘을 내며 펀치를 날렸다.

한국 복싱의 부활을 이끌겠다는 그의 각오가 더 커지는 계기도 있었다. 유력한 금메달 후보로 꼽혔던 대표팀의 절친한 동생 신종훈이 라이트플라이급(49㎏이하) 16강에서 충격의 탈락을 했다. 이를 지켜본 한순철의 정신 무장은 남달랐다.

예선부터 한순철의 기세는 대단했다. 16강에서 2006 유럽선수권대회 우승자인 바즈겐 사파란츠(벨라루스)와 난타전을 벌이다 심판 우세승을 거뒀고, 8강서 파즐리딘 가이브나자로프(우즈베키스탄), 4강서 에발다스 페트라우카스(리투아니아) 등 만만찮은 상대를 만나 압도했다.

비록 결승전에서 세계 정상 기량의 마실 로마첸코(우크라이나)를 넘지 못해 은메달에 머물렀지만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이승배의 은메달 이후 16년 만에 값진 성과를 올렸다. 자신과 가족에게는 기쁨을, 침체한 한국 복싱에는 희망을 안겨준 한순철의 런던 여정이었다.

이성필기자 elephant14@joynews24.com 사진=런던(영국) 최규한기자 dreamerz2@joy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