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통신사를 대표하는 두 CEO가 방송통신 융합시대의 최강자 자리를 놓고 운명의 대결을 펼친다. 지난 30년여 년동안 친구이자 경쟁자. 경기고 70회 졸업생인 이들은 바로 남중수 KT 사장과 김신배 SK텔레콤 사장이다.
남중수 사장은 오는 29일 서울시 서초구 우면동 KT연구개발센터에서 열리는 제26기 정기주주총회에서 재신임 받게 된다. 이로써 그는 지난 2002년 KT 민영화 이후 최초로 연임되는 사장으로 기록된다.
지난 19일 SK텔레콤은 이사회를 개최하고 김신배 사장의 재신임 건을 3월14일 개최될 주주총회 안건으로 결정했다. 올해 SK텔레콤은 전체 조직을 네 개의 작은 회사로 쪼개 각 부문간 책임경영을 강화토록 결정하며 그 총괄 지휘를 김 시장에 맡겼다.

고교졸업 후 남 사장은 서울대 경영학과, 미국 듀크대 석사, 메사추세츠대 경영학 박사의 길을 걸었다. 김 사장은 서울대 산업공학과, 한국과학기술원 석사를 거쳐 미국 펜실베니아주립대 경영대학원(와튼스쿨) MBA를 거쳤다.
각자의 길을 가는 듯 보였던 두 사람은 결국 통신기업의 수장으로 재회했고, 올해 2월과 3월 나란히 재신임 받으며 소용돌이에 진입한 컨버전스시대의 지휘관을 맞게 됐다. 상대를 속속들이 잘 아는 두 CEO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의 대결이 예고된 것이다.
지금까지의 경쟁은 예선전. 유선통신 시장의 지배적 사업자 KT와 무선통신의 지배적 사업자 SK텔레콤의 경기장이 달라 어느 정도 '영역존중'이 가능했다. 그러나 유무선통합과 방통융합 시대를 맞아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
'본선 경기'의 공을 울린 것은 SK텔레콤이 하나로텔레콤을 인수하면서 비롯됐다. "하나로텔레콤에는 관심도 없다"던 SK텔레콤은 지난해 12월 AIG·뉴브릿지캐피탈과 전격적으로 하나로텔레콤 매각계약을 체결했다.
SK텔레콤이 무선시장을 넘어 유선시장까지 아우르는 기업성장의 발판을 마련한 셈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800메가 주파수에 대해 LG텔레콤에 공동사용(로밍) 해줄 것 등을 조치했지만, 정보통신부가 주파수 문제는 '우리 소관사항'이라며 사실상 SK텔레콤의 손을 들어줘 SK텔레콤은 진정한 '행복날개'를 달게 됐다.
이쯤 되면 여유가 생길 만도 하지만 김신배 사장은 오히려 '위기론'을 강조하며 직원들을 독려하고 있다. 그는 1월말사내방송에 출연, 올해 경영방침과 상반기 사업전략을 설명하며 "올해는 그 어느 때보다 어려운 점이 많은 해"라며 "국내사업의 경우 끊임없이 제기되는 통신요금 인하 이슈, 보조금 규제일몰, 재판매 의무화 도입 등 만만찮은 시장 상황이 예상된다"고 강조했다.
김신배 사장은 지난 1월말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도 직접 나와 "올해 11조7천억원의 매출을 올리겠다"는 야심찬 계획도 밝혔다. 음악서비스인 멜론, 온라인 영화, 게임 등 컨버전스 비즈니스 모델을 통한 수익창출을 이어가겠다는 것이다.
베트남 이동통신 시장 진출, 미국에서 진행중인 재판매 사업인 힐리오, SK그룹의 숙원인 중국시장 공략에서 성과를 내야 하는 것도 그의 몫이다. 김 사장은 작년에 한중 수교 15주년, 한중 경제발전에 공을 세운 대표적인 경제인으로 중국 시사잡지 '환구인물(環球人物)' 8월호에 소개되기도 했다.
자타가 공인하는 '신기록 제조기'인 김 사장은 지난 2005년 매출 10조원 달성, 2006년 가입자 2천만명 돌파 등 국내 이동통신 부문의 신기록을 만들어가고 있다.
'칼날'을 숨겨온 남중수 사장도 '진짜는 지금부터'라며 벼른다. 그는 내로라하는 전략의 승부사로 일컬어지는 인물. KT 이사회와 주주들이 11조원 매출 벽에 부닥친 KT 최초로 연임을 결정한 것에는 '영리한 경영인', '전략적인 승부사'라는 남 사장의 기질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김 사장과 남 사장을 잘 아는 지인은 "고등학교 때 남중수와 김신배를 '애늙은이 같다'고들 얘기했다"고 전했다. 온화한 성품과 외모에도 불구하고 남 사장 역시 일에선 치밀하고 전략적이면서도 판세를 잘 읽는 승부사적 기질이 넘쳐난다는 것이다.
SK텔레콤이 하나로텔레콤을 인수한 지금, KT는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 유선전화(PSTN)는 매출이 뚝뚝 떨어지고 더 싼 값의 인터넷전화 시대가 도래했다.
IPTV 사업만 하더라도 몇 년 째 법안 하나 통과안되는 상황에 고개를 가로젓는 주주들이 적지 않았다. 가입자 증가가 부진한 와이브로 역시 주주들의 마음을 흔들리게 만들었다. 초고속인터넷 역시 지금대로라면 성장의 기둥이 되지 못한다.
그럼에도 KT는 올해 매출 목표를 12조5천억원으로 세우고, '마의 11조원대 돌파'를 선언했다. 남 사장은 작년 연말 기자간담회에서 "12조원의 벽을 뚫겠다"고 다소 완화된 목표를 밝혔지만, 내부적으로는 12조5천억원에 포커스를 맞췄다.
'위기의 KT'의 자신감은 어디서 나올까. 남 사장이 틈만 나면 말하는 '모죽론(母竹論)'은 KT 전략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남 사장은 곧잘 KT 경영의 기본 방침에 대해 심은 지 5년이 지나야 쑥쑥 큰다는 모죽에 비유해 말한다.
지금까지 단기적인 실적에 연연하지 않고 두세걸음 성큼 나갈 수 있는 체력을 길러왔다는 것이다. KT의 공격경영은 이제 기존 사업과 IPTV와 와이브로 등 신사업과의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체질 개선을 완료했다는 의미다. 올해에도 총 2조6천억원의 투자비 가운데 61%인 1조6천억원을 신성장 사업과 이를 위한 인프라 구축에 집중 투자한다.
정장보다는 캐주얼을 즐기는 남 사장은 직원들 앞에서 칵테일쇼를 하고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노력도 아끼지 않는다. 새해 첫날 시무식도 하지 않는 그는 지역 지사를 돌며 직원들과 함께 새해를 맞는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우선시 하는 그는 자발적인 참여로 이뤄진 IT서포터즈를 통해 방방곡곡에서 ‘IT를 나눠요’ 캠페인을 벌이고 있으며, CEO가 된 이후 '고객과 직원'이 있는 현장경영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SK텔레콤이 하나로텔레콤을 인수한 지금, 남 사장은 KT와 KTF를 합병해 방통융합 시대를 주도하는 전략을 짜는데 집중될 수밖에 없다. 그 경쟁상대는 바로 SK텔레콤이다. 두 통신강자들의 경쟁과 그 지휘관들의 머릿싸움이 갈수록 관심을 끌 전망이다.
/강호성기자 chaosing@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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