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LG전자가 삼보컴퓨터 PC를 베껴 만드는 날이 곧 올 거에요. 안믿겨지시죠? 현실이 될 겁니다."
그의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김영민 삼보컴퓨터 대표는 오묘한 미소를 지으며 마치 예언을 하듯 계획을 밝혔다. 국내 PC 시장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두 경쟁사를 향해 선전포고를 한 셈이다.
유독 포근하던 12월 어느 날. IPTV업체 셀런의 사장실로 김영민 삼보컴퓨터 대표를 만나러 갔다.
삼보컴퓨터가 법정관리에 돌입하고 매각 시장에 나와 새 파트너를 찾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쉽게 끝날 것 같지 않던 '삼보 회생 드라마'의 주역을 맡아 보겠다고 나선 것이 바로 셀런이다.
그러나 김 대표는 자리에 앉자 마자 고정관념을 깨는 말을 꺼낸다. "제가 삼보를 부활시킬 거라고요?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삼보 PC 사려면 돈 더 내세요"

한 대 팔아 1만원도 안남는다는 PC 시장에 왜 뛰어든 것인지, 쟁쟁한 국내외 경쟁사들을 어떻게 이길 것인지. 이 모든 질문을 넘어서, 도대체 장사를 해서 남길 자신이 있는지가 궁금했다.
김 대표는 이런 질문에 빙그레 웃더니 되려 질문을 하나 던졌다. "50만원짜리 노트북PC가 버젓이 있는데 왜 사람들은 150만원짜리 노트북을 살까요?"
PC의 가격이 추락해 30만원대 데스크톱, 50만원대 노트북도 이제는 흔할 정도다. PC의 기술은 평준화 됐고, 가격 전쟁만이 남은 '레드오션'이라면 50만원짜리 노트북이 시장을 휩쓸었어야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 김 대표의 설명이다. 오히려 이런 저가 PC의 비중은 그리 크지 않다고 그는 설명한다.
이어 그의 '깨는' 발언 2탄이 터졌다. "소비자들은 PC 사는데 돈 더내야 됩니다."
소비자들은 얼마든지 비싼 돈을 내고 제품을 살 용의가 있다. 하지만 그동안 나온 PC가 소비자들의 요구를 맞추질 못해 그들의 지갑을 여는데도 실패했다는 것이 김 대표의 지론이다.
이런 논리로 김 대표는 PC 팔아 '남기지 못할까봐' 걱정하지도 않는다. 충분히 높은 가격에 부가가치도 높여 팔 것이기 때문에 기술 개발 및 마케팅, 서비스에도 과감한 투자가 가능하다.
◆"삼보 디자인을 삼성전자도 베끼게 될 것"
삼보의 비싸고 차별화된 PC. 소비자는 과연 돈을 낼까? 삼성전자나 LG전자, 하다못해 저렴한 가격으로 유명한 델코리아도 '프리미엄' PC를 내놓고 전력투구하고 있지만 쉽지 않다.
김 대표는 이들을 향해 "말만 차별화 됐지 전혀 차별화 되지 않은 제품"이라고 혹평했다.
삼보의 PC는 모양부터 다르다. 인텔이 전세계 PC 업체들을 대상으로 공모한 디자인/성능 콘테스트에서도 당당히 대상을 차지한 '루온 크리스탈'는 자동차 마감재를 PC에 적용했다.
그는 "루온 크리스탈은 이제 시작일 뿐"이라고 설명한다. 보다 소비자의 요구를 확실하게 반영한 제품 개발 계획은 이미 완성돼 있다. 이를 시장에 선보이는 순간 삼성전자나 LG전자도 삼보의 디자인과 기술을 흉내낸 제품을 내놓게 되리라는 것이 김 대표의 설명이다.
◆"표준화-호환, 왜 합니까?"
단순히 비싼 PC를 잘 만들어 그거 하나 팔겠다는 것이 김 대표의 머리에 든 전부는 아니다. 김 대표의 '깨는' 발언 세 번째는 여기서 나온다. "PC의 호환성? 유연성? 표준화? 그걸 왜 합니까?"
그동안 PC 뿐만 아니라 전 하드웨어 업계가 줄기차게 개발하고 노력해 왔던 표준화와 호환 개념을 그는 정면으로 반박했다. 하나 사서 아무데나 다 쓸 수 있는 것은 그 하나의 기능도 제대로 못하게 만들 뿐더러 "돈도 못 번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그는 집에서 마시는 물로 예를 하나 들었다. 보리차, 결명자차, 둥글레차, 녹차 등 다양한 차를 끓이는 주전자는 쇠로 만든 낡은 것 하나 뿐이다. 그런데 좋은 녹차가 하나 생겼다면 이번엔 낡은 쇠 주전자가 아니라 공들여 빚은 다기에 끓여 마시고 싶어질 것이다.
PC 산업도 비슷하다는 것이다. 아무 차나 다 끓여내는 싸구려 쇠 주전자가 아니라 고급 다기와 같은 PC가 바로 삼보가 만들 미래 PC라고 했다. 고급이니까 표준화도 필요없다. 녹차 전용, 보이차 전용, 중국차 전용이 있듯 IPTV 전용 PC, 이동형 울트라모바일PC, 업무용 PC 등 다양하게 차별화하고 여기에 소비자가 '돈'을 내게 만든다.
그는 이런 아이디어를 오히려 PC 부품을 제조하는 인텔, 엔비디아, 아수스 등 주요 글로벌 업체와 공유해 삼보의 컨셉에 맞는 부품을 공급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정도 되면 삼보의 부활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지요. 변화를 넘어 재탄생입니다. 예전 삼보가 아니라 전혀 새로운 삼보로 태어날 꺼에요."
그는 IPTV 셋톱박스 업체 셀런의 사장으로 PC는 기술도, 시장도 잘 모른다고 했다. 하지만 이런 자신의 시각이 오히려 한 업계에 틀어박혀 시야가 좁아진 삼보에 활력소가 될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내년에 삼보컴퓨터는 흑자 전환을 달성하고 완화된 재상장 요건을 맞춰 내후년 쯤 재상장을 추진하게 된다. 김 대표의 실험정신이 통할 지, 새로운 삼보의 탄생에 흥미를 느끼며 사무실을 나섰다.
/강은성기자 esther@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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