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서비스제공자에 저작권 보호를 위한 기술적인 조치를 하도록 의무화하는 법안(저작권법개정안)이 4월 임시국회에서 통과여부가 결정되는 가운데, 이 법안이 소비자보호법과 대립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돼 주목된다.
우상호 의원(열린우리)이 발의한 저작권법개정안의 핵심은 복제와 전송이 자유로운 디지털네트워크 시대에 저작권자들의 권리가 침해당하고 있으니, P2P나 웹하드 같은 특수한 서비스기업들에게는 저작권 보호를 위한 기술적인 조치들을 의무화하자는 것이다.
또 이를 지키지 않을 경우 저작권자가 신고하지 않아도 정부당국(문화부 등)이 처벌할 수 있도록 해서 규제의 실효성을 높이자는 것이다.
이에대해 문화부 등은 선의의 인터넷기업에 피해가 되지 않도록 운영의 묘를 살리되, 콘텐츠 산업의 발전을 위해서는 법이 국회를 통과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저작권=재산권'이라는 게 기본인식인 것.
그러나 저작권이 곧 재산권을 의미하지는 않으며, 저작권법의 가장 중요한 원리는 창작자의 권리와 소비자의 권리를 어떻게 균형있게 맞추느냐에 있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전응휘 녹색소비자연대 정책위원(48)도 그런 사람들중 한 명. 이들은 국회에 올라가 있는 저작권법개정안이 한쪽(창작자의 권리)만 일방적으로 보호한다며 반대하고 있다.
◆"저작권법 개정안은 창작자 권리만 일방적으로 보호"
3일 오전 전 위원은 기자를 만나자 마자 "저작권과 재산권을 동일시 하지 말라"고 운을 뗐다. 그는 "저작권은 사후 50년까지 보장된다는 점, 온라인스트리밍서비스를 허용하고 있다는 점(공중전송권의 허용) 등을 봤을 때 특수한 형태의 재산권으로 볼 수 있다"며 "따라서 저작권법의 목적은 (개인재산의 보호가 아니라) 문화의 발전"이라고 말했다.

문화의 발전을 위해 전세계 저작권법은 2가지를 보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권리자(창작자)의 욕구를 보장해주는 측면과 함께, 창작을 위한 정보에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는 권리도 동시에 보장한다는 뜻이다.
전응휘 위원은 "저작권법에서 예외로 삼고 있는, 비영리 교육 공공 연구 등의 목적으로 사용되는 경우나 처음 저작물이 판매됐을 때 적용된다는 점 등이 그런 철학에서 나온 것"이라며 "하지만 우상호 의원이 발의한 저작권법 개정안은 권리자와 소비자(이용자)의 적절한 균형을 파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법률안에서 기술적인 보호조치를 해야 하는 주체로 삼고 있는 자는 규정이 모호해 일반 네티즌들도 범죄자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우 의원 법률에서는 "다른사람의 정보통신망을 통해 저작물 등을 복제 또는 전송할 수 있도록 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자"에게 기술적인 보호조치 의무를 주고 있다. 여기에는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사업자라는 말이 빠져있어, P2P 서비스를 이용하는 네티즌 모두가 범죄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전 위원은 "P2P는 관련 소프트웨어를 다운받은 사람들끼리 서비스제공자의 서버없이 연결할 수 있다는 것인데, P2P를 통해 지인에게 내가 돈을 주고 산 CD를 파일로 만들어 전송(사적복제)해도 범죄자가 될 수 있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또 "우 의원 법안이 통과되면 P2P 기술 자체를 범죄시 하게 되는데 CD로 산 파일을 올린 것인지 불법파일인지 기술적으로 알 수 없는 만큼, 특정서비스 기술 자체를 저작권을 침해하는 불법적인 것으로 볼 수는 없다"고 말했다.
사실 P2P는 우리나라에서는 불법 저작물의 유통에만 주로 이용되는 것으로 알려져왔지만, 인터넷전화서비스인 스카이프(Skype)에도 쓰이는 기술이며 비영리 목적으로 특정 공동체에서 동화상이나 문서자료를 공유하기 위해 쓰이기도 한다.
최근 미국의 MGM과 그록스터 사건의 대법원 판례에서 보듯이 법원에서도 P2P서비스 자체를 저작권 침해로 규정하지는 않았다.
전응휘 위원은 "법원은 두 업체에게 저작권을 침해했다는 판결을 내렸지만, 이는 P2P 기술 자체를 문제삼은 게 아니라 이들 업체가 저작권을 침해했다는 명백한 여타 증거들을 확보해 판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술적 보호조치가 콘텐츠에 대한 공정거래 질서를 해칠 수도 있다"
전응휘 위원은 우 의원 법안이 담고 있는 기술적인 보호조치가 소비자의 권리를 침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소비자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할 우려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미국에서는 '디지털 미디어 소비자 권리법(DMCRA)'이 화두인데, 이 법은 정보운동단체인 디지털컨슈머그룹(digitalconsumer.org)이 제시한 디지털콘텐츠에 대한 소비자의 권리에 기초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 단체가 제기한 소비자의 권리는 합법적으로 취득한 콘텐츠를 시간을 변경해 이용할 수 있는 권리, 장소를 변경해 이용할 수 있는 권리, 콘텐츠의 백업사본을 만들 수 있는 권리, 다른포맷으로 바꿀 수 있는 권리 등 6가지.
하지만 현재의 DRM(디지털저작권관리)같은 저작권 보호기술은 표준화되지 않았고, 소비자가 맥스MP3 사이트에서 합법적으로 구매한 파일을 SK텔레콤 휴대폰으로는 들을 수 없다.
전 의원은 "정부가 표준화를 추진한다지만 완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보호조치를 의무화하는 것은 사업자의 불공정한 거래조건에 의해 소비자의 권리가 침해당할 소지가 있다"고 강조했다.
또 "일부 솔루션의 경우 이용자의 콘텐츠 이용내역과 시점 등을 수집·보관하는 기능이 있어, 이용자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할 우려도 있다"고 말했다.
미국에서는 소니-BMG의 'XCP'가 일단 설치되면 제거가 힘들고 무리해서 제거하려 하면 오히려 시스템에 손상을 준다는 이유로 소비자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XCP'는 CD의 불법복제 횟수를 제한하는 DRM이다.
이 때문에 소니-BMG는 최근 텍사스주에서 스파이웨어 금지법에 따라 소송대상이 되기도 했다.
◆"디지털네트워크 시대, 저작권은 새로운 방식으로 보호돼야"
현재 국회에 올라가 있는 저작권법 개정안이 여러가지 문제가 있어 신중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점을 인정해도, 무분별하게 복제되고 전송되는 디지털 콘텐츠의 폐해를 무시하기는 힘들다.
그렇다면 어떻게 디지털콘텐츠의 저작권은 보호될 수 있을까.
전응휘 위원은 이에대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기 위한 공동의 노력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월정액임대서비스라는 모델을 국내 최초로 선보인 SK텔레콤 '멜론'이 좋은 사례라고 설명했다.
전응휘 위원은 "저작권자들과 저작인접권자들은 디지털 네트워크의 기술발전을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드는 데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하고, 정부는 이를 지원하는 게 맞다"며 "그렇지 않고 사이버세상을 규제하려는 것만으로는 실제로 규제가 되지도 않고 오히려 전체 시장의 파이가 줄어들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김현아기자 chaos@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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