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도 게임은 해본 적이 없는데..."
회사원 이상혁(35) 씨는 14일 오전 유명 게임 '리니지' 홈페이지에 가서 자신의 주민번호와 이름을 입력했다가 혀를 찼다.
자신이 바로 말로만 듣던 명의도용 피해자라는 사실을 깨닫은 것이다.
한번도 리니지를 해본 적이 없는 자신으로서는 적잖게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가 자신의 주민번호와 이름을 빼돌려 남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번 리니지 명의도용 사건은 개인정보보호에 구멍이 뚫린 인터넷 강국의 치부를 일반인들도 직접 피부로 확인할 수 있는 생생한 기회가 됐다.

다행스럽게도 사건 성격상 금전적인 피해는 없을 것으로 보이는 데다, 달리 보면 개인정보 보호에 대한 경각심을 새롭게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됐다는 점에서 그나마 위안거리를 찾을 수 있었다.
사실 명의도용 문제는 우리가 그 심각성을 체감하지 못해 그렇지, 인터넷 대중화와 함께 광범위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는 고질적인 병폐다.
일례로, 이번에 본의 아니게 명의도용 문제를 뒤집어쓴 엔씨소프트는 2004년 당시 우리나라 전체 인구에 맞먹는 4천만개의 리니지 계정 수를 실명 확인 작업을 거쳐 현재의 1천만개로 줄인 일이 있었다.
이번 사건과는 성격이 약간 틀리지만, 당시에도 주민번호 생성기를 이용해 타인의 주민번호를 도용한 수가 엄청났다는 얘기다.
이날 오전 엔씨소프트 고객센터에 접수된 리니지 명의도용 신고 건수만 해도 1천200여건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어떤 식으로든 국내 상당수 인터넷 사이트들에서 개인정보가 유출된 것이다.
이에 앞서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는 지난 해 9월 중국에 작업장을 두고 리니지 아이템 1천억원어치를 생성, 이를 국내에 팔아 부당 이익을 챙긴 후 그중 600억원을 중국에 밀반출한 혐의로 50명의 조직을 검거했다고 발표했었다.
당시 사이버테러대응센터는 이 조직이 해킹 등의 수법으로 무려 한국인 주민번호 5만3천여개를 훔친 것으로 조사했다.
또 사이버테러대응센터는 중국에서 수입되는 아이템 규모가 지난 해 9천5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어, 적어도 주민번호 도용 건수는 온라인게임 부문에서만 수십만건 이상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와관련, 뉴욕타임스는 지난 12월 중국 아이템 작업장에서 일하는 청소년 수가 10만여명에 달한다고 추산, 이 같은 추정치를 뒷받침하고 있다.
한국정보보호진흥원 관계자는 "마음만 먹으면 구글 등 검색엔진을 통해 한국인의 주민번호 검색이 어렵잖은 것이 현실"이라고 말할 정도다.
이번 기회가 인터넷 강국의 치부로 지적돼 온 개인정보 유출 문제를 처음부터 심각하게 돌아 보는 계기로 삼기를 기대해 본다.
/이관범기자 bumie@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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