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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걸 고려아연 명예회장 별세…한국 비철금속 산업 선구자


1974년 고려아연 설립해 세계 1위 제련기업으로 성장시켜
끊임없는 기술혁신 실현…사회공헌에도 꾸준한 애정 쏟아

[아이뉴스24 이한얼 기자] 최창걸 고려아연 명예회장이 숙환으로 6일 별세했다. 향년 84세.

최창걸 명예회장 [사진=고려아연]

최 명예회장은 한국 비철금속 산업 선구자로 불린다. 고려아연을 세계 최고 비철금속 기업으로 성장시킨 공로 때문이다.

최 명예회장은 1941년 황해도에서 고(故) 최기호 고려아연 초대회장의 6남3녀 중 차남(5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1960년 경기고등학교 졸업 후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경제학과 학사와 미국 콜롬비아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MBA를 취득했다.

최 명예회장은 1974년 고려아연을 창립한 이래 30여년만에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전세계 제련소들을 추월하며 세계제일의 종합비철회사로 성장시켰다.

최 명예회장의 창립으로 자원빈국이었던 우리나라에 비철제련업 기업이 최초로 등장한 것이다.

정부는 1973년 ‘중화학공업 육성계획’을 발표했다. 최 명예회장은 이에 발맞춰 정부, 금융회사 등 여러 관계자들과 수없이 만나 협의한 끝에 1974년 8월 1일 단독회사를 설립하게 됐다.

최 명예회장의 도전정신은 끊임없는 기술개발과 설비투자로 이어졌다. 1980년부터 1992년까지 사장과 부회장 재임 시에는 고려아연 기술연구소 설립과 국제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생산시설 확장에 힘을 쏟았다.

아연·연·동제련 통합공정, DRS공법의 연제련공장을 착공과 더불어 아연괴 LME 등록으로 경쟁력을 강화했다. 또한 1990년 기업공개를 추진해 투명경영 실현과 국민적 기업으로 도약하는 기반을 마련했다. 1983년 영풍정밀, 1984년 서린상사, 1987년 코리아니켈 등 계열사를 설립해 그룹의 기반을 확대하고 사업간 시너지 효과를 창출했다.

최 명예회장은 1992년 3월 회장 자리에 올랐다. 회장 취임 이후에도 '원칙에 어긋나는 것은 하지 말고 기본에 충실하자'라는 신조에 맞춰 고려아연의 성공을 위해 매진했다. 아연공장 및 연 제련 공장을 계속 증설해 나갔고, 호주에 아연제련소 SMC를 설립하며 글로벌 사업기반을 확대해 나갔다.

최 명예회장의 지속적인 투자와 기술개발의 결과로 고려아연은 창업초 아연 생산 능력 연 5만톤에서 65만톤, 매출액은 114억에서 12조원 수준까지 늘어났다. 회사가치의 척도인 시가총액도 최대 20조원에 육박하는 등 괄목할 만한 성장세를 이뤘다.

최 명예회장은 살아 생전 사회공헌에도 끊임없는 관심을 쏟았다.

1981년 명진보육원 후원을 시작으로 아동복지분야에 끊임없이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사회적 책임 실천에 앞장서 왔다. 많은 학교와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며 학자금 문제로 중도에 학업을 포기하지 않도록 했다.

최 명예회장은 임직원들에게도 사회공헌 활동을 적극 권장했다. ‘고려아연 전 임직원 기본급 1% 기부하기 운동’ 및 매칭그랜트를 통해 기부의 중요성에 대해 알렸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1억원 이상 고액기부자 모임인 아너소사이어티의 회원인 최 명예회장은 이후 부인인 유중근 경원 문화재단 이사장과 아들인 최윤범 회장이 아너소사이어티에 가입을 하며, ‘패밀리 아너’로 기록됐다. 이런 사회 공헌 활동의 공을 인정받아 최 명예회장은 2013년 대한민국 나눔국민대상에서 ‘국민훈장 동백상’을 수상했다.

가족으로는 대한적십자사 총재를 역임한 유중근 총재와 결혼해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을 비롯하여 2남1녀를 뒀다.

최 명예회장의 장례는 오는 7일부터 나흘간 회사장으로 치러진다. 장례위원장은 이제중 고려아연 부회장이 맡았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20호실에 마련되며, 영결식은 오는 10일 오전 8시 열린다.

/이한얼 기자(eol@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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