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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년생 집주인, 88년생 세입자" [현장 써머리]


올 1분기 30대의 아파트 매입 비율 26.6%…40대 앞질러
정부 규제 완화와 특례보금자리론 영향에 청년층 '매수행렬'

[아이뉴스24 김서온 기자] 부동산 시장을 취재하는 김서온 기자가 현장에서 부닥친 생생한 내용을 요약(summary)해 전해드리는 코너입니다.

얼마 전 프랑스에서 한국 땅을 10년 만에 찾은 지인 A군을 환영하기 위한 모임을 했습니다. 화학전공이라는 이력을 과감하게 버리고 프랑스로 날아가 건축학을 전공, 어느덧 5년 차 건축가로 자리 잡았습니다. 현지에서 프랑스 국적의 여성과 결혼, 한국에는 종종 가족을 만나러 올 예정이라고 하네요.

건축가로 변신한 A군과 안부를 주고받던 중 자연스레 대화 주제는 프랑스 부동산 시장으로 넘어갔습니다. 프랑스 파리 역시 더 이상 집을 지을 땅이 없고, 한국 못지않게 집값이 많이 올라 내 집 마련이 쉽지 않다고 합니다. 어느나라건 수도의 주택시장은 간단치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야기를 가만히 듣던 B군이 소주잔을 기울이며 씁쓸한 표정으로 최근 전셋집을 구한 이야길 꺼냈습니다. B군은 광명역 인근 1천 가구 규모의 브랜드 단지 전용 84㎡ 아파트 전세 계약을 맺었다고 합니다. 전세 보증금은 5억 중반대로, 동일면적대 매물의 가장 최근 실거래가는 약 12억원입니다.

구로와 강남으로 출퇴근하는 부부의 동선을 고려해 전셋집을 알아봤다고 하는데요, 이 계약과정에서 B군은 소위 '현타'가 왔다고 합니다. 현타는 '현실 자각 타임'을 줄인 말로, 헛된 꿈이나 망상 따위에 빠져 있다가 자기가 처한 실제 상황을 깨닫게 되는 시간을 말합니다.

서울 도심 아파트 단지 전경. [사진=정소희 기자]

B군은 "전세대출을 최대한도로 받고, 아내와 가지고 있는 돈을 싹싹 긁어모아 전세금을 어렵사리 마련했다"며 "계약 당일 전세 계약서를 작성하러 갔는데,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남자가 편한 트레이닝복 차림에 슬리퍼를 신고 나와 부동산에 앉아 있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습니다.

이어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집주인 주민등록증을 확인했는데 1996년생이었다"며 "평생 뼈 빠지게 일만하고 돈을 모아도 이 집을 살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부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위축되는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국내 최고 명문대학 S대를 졸업, 같은 대학 대학원에 진학해 깐깐하기로 유명한 교수님 밑에서 석박 통합과정을 무난히 마치며 나름 정신력 면에선 빠지지 않았던 B군은 결국 8살 어린 집주인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것을 느끼며, 전세 계약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아내와 침묵으로 일관할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국내 탑티어 연구기관에서 근무하다가 지난해 성장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돈보단 소신"이라는 신조로 한 바이오 벤처회사로 이직했다고 하는데요. 여전히 내 집 마련에 대한 확신은 없지만 그래도 더 많은 연봉을 받아 '영끌 매수'가 가능한 대기업으로 옮겨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 중이라고 하네요.

B군의 한탄이 이어지자, 지난 2020년 강서구 가양동 일원 내 집 마련에 성공한 대학 동기 C군은 "3년 전 많이 무리해 산 집이 벌써 5억원이 올랐다"며 "규제도 풀리고, 반등 기미가 보이는 올해 최대한 빨리 매수에 서둘러야 한다"고 조언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전용 101㎡ 아파트를 8억5천만원에 매입한 C군은 당시 부부 예·적금을 털고, 대출을 끝까지 받고도 모자라 회사 대출과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 소위 '영끌'로 집을 샀습니다. 동일면적대 매물은 지난 2021년 13억3천500만원에 팔린 이후 거래는 없지만, 현재 호가는 비슷한 가격대에 형성돼 있습니다.

청년층의 '패닉바잉(공황매수)'은 이처럼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다. 젊은 세대들이 '영끌'을 해서라도 적극적으로 집을 사고자 하는 데는 '불확실한 미래에 부동산만큼 확신을 주는 것은 없다'는 믿음에서 비롯되지 않았나 싶네요. 실제 올해 1분기(1~3월) 전체 연령대 중 30대의 전국 아파트 매입 비율은 지난 2019년 통계 집계 후 가장 높은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전국 아파트 거래 8만8천104건 가운데 26.6%(2만3천431건)를 30대가 사들인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이는 직전 분기(22.2%)보다 4.4%포인트 높아진 것으로, 지난 2019년 관련 조사를 시작한 이래 분기 기준 역대 최대치입니다.

통상 아파트 시장은 경제력을 갖춘 40대의 매입 비중이 높습니다. 부동산원 조사 이래 30대 매입 비율이 40대를 앞지른 것은 지난 2021년 3분기가 유일했고요, 당시 집값 급등 여파에 '앞으론 집을 못 살 수도 있다'는 우려와 불안감으로 30대들이 대거 '패닉바잉'에 나서며 절정에 달했습니다. 그리고 올해 1분기 들어 다시 한번 30대 매입 비율(26.6%)이 40대(25.6%)를 앞질렀네요.

서울 강남권 상급지부터 시작된 가격 회복세가 전고점 대비 낙폭이 컸던 수도권 신도시 지역까지 빠르게 확산하는 분위깁니다. 집값 반등 기대감이 점점 커질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생애 최초 주택 구매자에 대해 LTV(주택담보대출비율)를 80% 높이고, 대출 한도를 4억원에서 6억원으로 확대하는 등 정부의 규제 완화와 지난 1월 말 출시된 특례보금자리론 영향에 청년층의 '묻지마 매수', '패닉바잉', '영끌 매수 행렬'은 다시금 이어질 전망입니다.

한 업계 전문가는 "9억원 이하 주택을 구매할 경우, 소득수준과 관계없이 낮은 고정금리로 최대 5억원까지 대출받는 특례보금자리론과 LTV 완화 등 규제 완화에 힘입어 부동산 장벽이 크게 낮아졌다"며 "서울 곳곳에서 신고가가 속출, 아파트값과 거래량이 동반 회복세를 보이며, 젊은 층 위주로 매수세가 이어질 것"이라고 말합니다.

한편, 박재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국주택금융공사로(HF)부터 제출받은 '특례보금자리론 연령별 신청 현황'에 따르면 지난 3월 말 기준 30대의 신청 금액은 11조3천267억원으로 전체 신청액(25조5천634억원)의 44.3%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김서온 기자(summer@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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