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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통신시장 빅뱅-하] 합병 이후 주목할 이슈


 

미국 통신시장은 그동안 인수 합병 바람이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의 대규모 인수합병은 시사하는 바가 남다르다. 무엇보다 오랜 기간 통신업계를 지탱해왔던 패러다임의 변화를 상징한다는 점에서 그동안의 합병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 중 특히 눈길을 끄는 대목은 전통적인 통신 서비스 구분 경계가 무너지고 있다는 점. 이는 곧 '통-방 융합' 대세를 여실히 드러내는 것이라고 해석해도 무방하다. 즉, 디지털 기술이 발전하면서 초고속 인터넷망 보급이 확산되고, 통신과 방송의 사업영역이 공통분모를 넓혀가면서 통방융합이 가속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와 함께 지난 1996년 개정된 통신법을손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일고 있기도 하다. 비록 이 법이 통신과 방송을 아우르고 있기는 하지만 당시는 인터넷이 많이 대중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규제범위나 정도가 현실과는 동떨어진 측면이 있다는 설명이다.

또한 규제완화를 기조로 시내전화사업 경쟁체제를 허용했던 미국 통신법이 손질된지 10년만에 통신시장이 SBC와 버라이즌의 양강구도로 재편됐다는 것은, 생존을 위해서는 어느 정도 몸집키우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말해주기도 한다.

◆ 경쟁 줄어 독점 폐해 우려도 일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신시장의 '대어'가 두 곳으로 좁혀지자 벌써부터 독점 폐해를 우려하는 주장도 있다.

지난 16일 워싱턴포스트는 장거리전화사업자(AT&T, MCI)의 인터넷 기간망(백본망)을 확보한 두 업체의 장악력이 상당히 커질 것이라 우려가 일고 있다고 전했다. 지금까지 지역전화사업자는 인터넷 기간망 사용에는 접속료를 내고 기간망에서 각 가정으로 직접 들어가는 네트워크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이제 기간망 접속 문제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미국 전자상거래 및 통신사용자 그룹(EC&CG)에 있는 브라이언 R. 모어 변호사, 연방통신위원회(FCC) 전(前) 관리이자 투자회사 레그 메이슨의 통신분야 애널리스트인 블레어 레빈이 합병의 폐해를 걱정하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이들은 과점체제 하에서 혁신이 없어지고 투자유인이 저하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모어 변호사는 "MCI와 AT&T의 인터넷 기간망을 버라이즌과 SBC가 각각 인수하면 두 회사는 지역전화 네트워크가 인터넷 기간망에 접속하면서 지불해야 하는 접속료를 내지 않아도 된다"며, "이로 인해 얻은 엄청난 이익은 통신시장 진입장벽을 쌓고, 곧 다른 사업자들과의 경쟁을 방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레빈 역시 "AT&T는 이전에 지역전화사업에 진입하면서 자사가 운영하는 지역전화망은 자사의 기간망에 바로 접속하게 했는데, 합병 이후에는 이러한 (일종의 특혜를) 없애는 조치도 고려해야 할 지 모른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업체간 경쟁을 한다 해도 서비스 가격은 크게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비슷한 예로 케이블TV와 위성TV회사간 경쟁이 불붙었을 때도 서비스 가격은 별로 인하되지 않았다는 자료가 있다. 미 연방 의회 산하의 회계감사원(GAO)이 지난 2003년 10월 펴낸 자료에 따르면 위성TV 사업체가 케이블TV 사업체보다 가입가구수를 10% 더 많이 확보한 지역에서 케이블업체들은 서비스 가격을 고작 월 15센트 인하하는 데 그쳤다.

또 저소득 가구의 경우, TV와 전화,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를 함께 묶어 판매하는 통합서비스, 이른바 '트리플 서비스' 가격이 부담스러울 수 있다. 통합서비스 가격은 대체로 월 100달러 이상이 될 것으로 보이는데, 필요하지 않은 서비스를 위해 돈을 내야 할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일반 유선전화보다 더 싼 인터넷전화를 사용하려고 하면 케이블업체나 통신업체가 제공하는 초고속인터넷망이 깔려 있어야 한다. 곧, 인터넷전화를 사용하려면 인터넷전화요금 외에도 케이블요금 아니면 전화요금을 내야 한다는 의미다.

◆ '합병은 통방융합에 따른 자연스런 흐름... 경쟁 거셀 것'

합병을 옹호하는 쪽에서는 AT&T와 MCI가 오래 전부터 소비자용 지역전화 시장에서 수익성 악화 문제로 고민하고 있었다는 점을 꼽는다. 한 마디로 '합병은 예정돼 있던 수순이었다'는 논리다.

합병옹호론자들은 통합서비스를 보다 안정적으로 제공하기 위해선 '짝짓기'가 필수적인 것으로 보고 있다. 장거리전화회사와 지역전화회사의 노하우가 결합되고 네트워크를 통합 관리하게 되면서 더욱 안정적인 서비스가 가능할 것이라는 얘기다.

당연히 고객 입장에서도 전화, TV,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를 한 회사에서 구입하게 되므로 요금청구서와 상담창구를 단일화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가격 인하 압박도 만만치 않다.

컨설팅 회사 어드벤티스의 라울 캐츠 최고경영자(CEO)는 "(통합서비스) 사업 초기에는 공격적으로 가격을 인하하지 못하겠지만 시간이 지나 투자수익을 거둘 때가 되면 모든 업체들이 너나할 것 없이 가격인하에 발벗고 나설 것이다"고 예상했다. 그는 최소 2년에서 4년정도 지나면 업체들이 투자수익을 볼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실제로 통신업체들은 통신업체간 경쟁 외에도 사업영역이 겹쳐지는 케이블업체들과의 경쟁도 감안해야 하기 때문에 생각보다 경쟁은 훨씬 치열할 것으로 보인다.

케이블업체 케이블비전은 최근 뉴욕에서 자사의 트리플 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들에게 서비스가격을 월 140달러에서 월 115달러로 낮췄으며 신규고객은 월 90달러에 가입할 수 있도록 했다. 버라이즌이 지역전화서비스를 하고 있는 지역인 뉴욕을 겨냥해 케이블비전이 대대적으로 서비스가격을 내리면서, 소리없는 가격전쟁은 이미 시작됐다고도 볼 수 있다.

한편 이제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콘텐츠 경쟁'이라는 시각도 눈길을 끈다. 컴퓨터월드는 지난 23일 '통신업체 합병, 경쟁은 계속된다'(Telecom consolidation doesn't hurt competition)라는 기사에서 '수도관과 물'의 비유를 들며 콘텐츠 경쟁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즉, 데이터를 전송망을 가진 업체끼리의 경쟁에서 중요한 것은 '그 망(수도관)에 어떤 콘텐츠(물)를 넣어 제공하느냐'라고 컴퓨터월드는 보도했다. 그러면서 통신업체들의 질좋은 콘텐츠 확보 경쟁이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했다.

◆ 합병 교향곡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디지털 기술은 방송과 통신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

통신서비스간 경계를 나누는 것은 이제 의미가 없다. 장거리전화 따로, 지역전화 따로, 인터넷전화 따로, 케이블 따로 서비스하는 것은 더 이상 효율적이지 않게 됐다. 최근 업체들의 인수합병 추세가 단순히 서비스 지역만 늘리는 것이 아니라 각기 다른 종류의 서비스를 통합하는 방향으로 가면서 시너지를 추구하고 있다는 것이 이러한 흐름을 설명한다.

그렇다면 SBC와 버라이즌의 양강구도로 재편된 미국 통신시장의 인수합병 회오리는 이제 마무리된 것일까.

SK경영경제연구소의 한수용 상무는 "굵직한 합병은 대체로 마무리됐지만 아직 통신시장 합병이 완전히 마무리된 것은 아니다"고 단언했다.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업체들의 합종연횡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여전히 혼란스럽고 복잡한 시장에서 안정적인 지위에 올랐다는 안도감이 들기 전까지 업체들의 인수합병은 이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SBC와 버라이즌의 양강구도를 중심으로 그 밑에 있는 중소규모 통신업체들간의 몸집 키우기는 물론, 통신업체와 경쟁하는 케이블업체간 합병, 통신업체와 케이블업체간의 합병 내지는 통신장비업체와의 합병도 궁극적으로 가능할 것으로 전망했다.

최근 모토롤라, 루슨트 테크놀로지, 노텔 네트웍스 등의 통신장비업체간의 합병 가능성이 조심스레 점쳐지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미국 통신시장의 새로운 강자가 된 SBC와 버라이즌, 그리고 케이블업체들과 펼칠 치열한 경쟁과 함께 앞으로는 또다른 인수합병을 준비한는 업체들의 물밑 움직임도 함께 눈여겨봐야 할 것 같다.

/김지연기자 hiim29@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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