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서비스 피해에 따른 소비자 구제방법을 담을 손해배상 표준약관 제정의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법 제정의 주체가 공정거래위원회여야 하느냐 정보통신부여야 하느냐를 놓고 논쟁이 일고 있다.
지난해 1월 25일 전국의 인터넷이 한 순간에 멈추는 소위 '1.25인터넷대란'이 발생한뒤 통신회사들은 이용약관을 개정했다. 이용자에게 이용요금 납부나 공공의 안녕질서, 미풍양속을 지켜야 한다는 의무만 부과했던 것에서 컴퓨터 바이러스와 해킹 방지에 대한 의무를 추가한 것.
개정 약관에는 이용자가 컴퓨터 바이러스 프로그램을 유포하는 경우 통신사가 이용을 제한할 수 있고, 이용자 스스로도 보호조치를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불특정의 PC를 경유지로 삼아 바이러스가 유포되는 게 추세인 만큼, 국가통신망을 지키기 위해 이용자들에게 보안 의식으로 무장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하지만 IT사고, 특히 해킹 바이러스 사고는 사용자 자신이 침해받았는지 혹은 침해했는지 알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이를 이용자 의무로 약관에 규정한 것은 이용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려는 의도가 있지 않느냐는 의혹도 시민단체들이 제기하고 있다. 이 조항이 통신회사와 이용자간에 법정 공방이 벌어졌을 때 사업자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것.
이에따라 천재지변이 아닌 형태의 사고가 났을 때 책임의 소재를 가리고, 책임과 배상의 범위를 규정할 표준약관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른바 '통신이용자 손해배상 표준약관'이다.
그동안 표준약관에 대한 관할은 공정거래위원회가 갖고 있었지만, 공정위의 '전자상거래표준약관'만으로는 통신 이용자들이 겪는 실제 피해를 구제하기 어렵다는 지적에 따라 표준약관의 필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특히 유비커터스 환경으로 통신서비스가 다양해지면서 통신의 특수성과 전문성을 담은 표준약관의 필요성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사업자들에게 주요 약관 내용을 고지하는 것을 의무화하고, 대리점의 무분별한 신규서비스 가입을 막기 위해 해당 통신회사 DB 관리부서에서 가입자를 최종 확인한뒤 처리될 수 있도록 의무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문제는 '표준약관' 제정의 주도권이다.
통신업계 한 관계자는 "공정위가 규제하는 표준약관은 약관규제에관한법률에 근거해 사업자의 약관이 소비자 이익에 저해되는 지 살피는 것"이라면서 "하지만 이같은 경우 기지국에서 사고가 발생했을 때 등 불가항력적인 내용을 담기 어려워 기술흐름을 파악하고 있는 정보통신부가 표준약관을 만드는게 낫다"고 말했다.
현재 정통부는 KT나 SK텔레콤같은 시장지배적 사업자에 한해 약관을 인가해주고 있다. 나머지 사업자들의 경우 약관은 신고만 하면 된다. 정통부가 초고속인터넷을 기간통신역무로 지정한 만큼, 시장지배적사업자가 지정되면 이 사업자는 초고속인터넷 이용약관도 정부로부터 인가받아야 한다.
그러나 정통부가 표준약관을 만들게 되면, 이 약관을 시장지배적사업자뿐 아니라 모든 통신사업자에게 권고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근거법령에 표준약관 위배시 처벌조항을 둔다면 이를 현실적으로 강제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이에 대한 반대도 만만찮다.
전응휘 녹색소비자연대 정책위원은 "통신이용자 보호를 위해 표준약관이 필요하다는 점에는 공감하나, 현행 전자상거래표준약관으로 규제할 수 없는지 살펴봐야 한다"면서 "만약 통신이용자 보호를 위해 표준약관이 별도로 필요하다면 약관규제에관한법률에 따라 공정위가 맡는게 옳다"고 말했다.
그는 또 "사업자에 대한 행정규제를 높인다고 소비자보호가 되는 것은 아니다"면서 "별도로 표준약관을 만들지 않아도 전기통신사업법 등의 관련 규정을 개정하는 것으로도 효율적인 이용자보호가 가능해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현아기자 chaos@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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