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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박용곤 명예회장, ‘침묵의 거인’ 수식어 붙은 배경은


“말을 줄이고 지키지 못할 말은 하지 말아야”

[아이뉴스24 양창균 기자] 재계에서도 ‘침묵의 거인’이란 수식어가 따라붙었던 박용곤 두산그룹 명예회장이 3일 소천했다.

고인은 생전에 말을 많이 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말을 많이 하다 보면 쓸데없는 말을 하게 됩니다. 또 내 위치에서 무슨 말을 하면 그 말은 모두 약속이 되고 맙니다. 그러니 말을 줄이고 지키지 못할 말은 하지 말아야죠.”

고인이 침묵을 덕으로 삼았던 배경에는 어려서부터 선친에게서 “늘 겸손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받고 자란 영향도 컸다. 박 명예회장은 “내가 먼저 양보하면 된다”는 말을 자주 했다. 그는 또 ‘분수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을 항상 품고 살았다. 고인은 ‘수분가화(守分家和)’를 가훈으로 삼았고, 형제와 자녀들에게 ‘수분가화’라는 붓글씨가 적힌 액자를 선물하면서 분수에 맞는 삶을 강조하기도 했다.

‘수분가화’는 ‘자신의 분수를 지켜야 가정이 화목하다’는 뜻이다. 더 나아가면 ‘능력 범위 안에서 행동하라’는 뜻이며 ‘조금씩 양보하고 참아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고(故) 박용곤 두산그룹 명예회장

하루는 박 명예회장이 직접 차를 몰고 회사로 출근했다. 운전기사가 아파서 결근을 했던 것이다. 주차장에서 이 모습을 본 직원의 보고에 사무실은 난리가 났다. 하지만, 박 명예회장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조용히 집무실로 들어갔다. 그 운전기사는 선대 때부터 일을 한 사람으로 박 명예회장과도 40여 년을 함께 했다.

소탈한 성격과 배려는 어린 시절 일화에도 드러난다. 유치원에 다닐 때 집안이 큰 포목상을 하는 데도 무명옷을 색이 바랠 때까지 입었고 고무신도 닳아서 물이 샐 때까지 신었다. 경성사범학교 부속보통학교 다닐 때는 끼니를 제대로 못 잇는 급우들을 위해 어머니가 챙겨준 도시락을 한 가방씩 들고 등교했다.

가정에서의 모습에 대해 유족들은 “아내에 대해 평생 각별한 사랑을 쏟은 남자”로 기억한다. 부인 고(故) 이응숙 여사와는 1960년 부부의 연을 맺었다. 이 여사는 박 명예회장에게 있어 인생의 ‘동반자’이자 ‘조언자’였다. 하지만, 이 여사는 1996년 먼저 세상을 떠났다. 박 명예회장은 암 투병 중이던 부인의 병실 소파에서 쪽잠을 자며 오랜 기간 간병을 하기도 했다. 그는 일찍 떠나 보낸 아내를 한결 같이 그리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며 23년 간의 ‘사부곡(思婦曲)’을 써내려 왔다.

고인은 야구에 대한 각별한 사랑으로도 유명하다. 한국 프로야구 출범 때 가장 먼저 야구단(OB베어스)을 창단했고, 어린이 회원 모집을 가장 먼저 시작했으며 2군을 제일 먼저 창단했다.

거동이 불편해진 뒤에도 휠체어를 타고 베어스 전지훈련장을 찾아 선수들 손을 일일이 맞잡았으며, 이전 시즌 기록을 줄줄이 외우며 선수들을 격려했다. 2008년 4월 17일 77세 희수연 때 자녀들로부터 등번호 77번이 찍힌 두산베어스 유니폼을 받아 든 그는 그 어느 때보다 환한 웃음을 지었다.

/양창균 기자 yangck@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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