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번 칼럼에 인터넷 종량제와 관련한 문제를 언급했다가 많은 독자들의 빗발치는 사랑(?)을 받았다. 감정어린 막말에서부터 진지한 제언까지 수 십여 건의 예기치 못한 반응이 몰려와 내심 당혹스러웠다. 내가 쓴 글을 다시 살펴보았는데, 문제의 사안에 대해 너무 가볍게 지나친 점이 독자들의 심기를 건드린 듯 싶다.
나는 이곳 칼럼에서 주로 ‘인터넷 문화’를 주제로 글을 써 왔다. 따라서, 종량제 문제를 언급하면서도, 제도 자체의 찬반을 떠나 제도의 수용이 가져올 수 있는 문화적 변동상황에 대해서 한번쯤 생각해 보자는 뜻을 피력해 보고 싶었는데, 지면의 한계와 매끈하지 못한 글쓰기 논리로 독자들의 원성을 산듯 싶다.
여하간 이번 상황으로 인터넷 종량제에 대한 네티즌의 실감나는 반응을 경험했기에 조금 더 객관적 시각을 정리할 수 있는 기회로 삼고자 한다. 기왕에 내친 김에 인터넷 종량제와 연관된 몇 가지 이야기를 더 나누어 보자. 참고로 나는 종량제 찬성론자가 아니다. 그러나 시장논리상 이 제도는 부분적으로라도 시행될 가능성이 높다는 예측을 하고 있다.
먼저, 종량제에 대한 대다수 네티즌의 민감한 반응에 대해, 사업자는 “인터넷 없이는 못산다” 는 고백으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다. 고객의 인터넷 의존성이 확인된 이상 이 제도는 어떠한 형태로든 도입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인터넷은 이미 단순한 편의차원을 넘어선 일상적 서비스로 자리 매김 했다. 따라서 사업자의 입장에서는 대다수가 원하지 않으므로 시행하기 어려운 문제가 아니라, 반대가 크면 큰 대로, 작으면 작은 대로 추진만 하면 성과를 기대할 수 있는 현실이 되었다는 점이다.
대다수 네티즌은 인터넷 종량제 도입의 문제를 지적하고, 여러 가지 사례와 논리를 통해 이의 부적합성을 입증하고자 애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러한 사실은 통신사업자도 익히 알 뿐만 아니라 도리어 그 때문에 이 제도를 추친 하고자 하는 판단의 근거로 삼는다. 5%의 매니아가 인터넷 발전의 시금석이 된 것은 사실이지만 사업자는 도리어 그들을 문제해결의 핵심으로 지목하니 말이다.
인터넷 종량제 논의는 워낙 민감한 관심사이기에, 도입여부의 논의 조차도 조심스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예민한 문제가 통신사업자를 시발점으로 회자되기 시작한다는 것은 이 제도의 시행을 뒷받침 해 줄만한 사회적 정황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해 볼 수 있다.
먼저 의심해 볼 수 있는 것이 불균형의 문제이다. 인터넷 관련산업이 경제발전에 기여도가 큰 것은 사실이지만 그 실체는 심각한 불균형을 드러내고 있기도 하다. 지난해 한 국가 연구기관에서 우리나라의 IT산업 국제 경쟁력을 OECD 국가를 중심으로 비교 평가한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정보 및 인터넷 인프라는 외적인 측면에서는 OECD 최고 수준에 해당했다.
그러나 인터넷 활용의 질적 수준을 나타내는 지표들은 최하위권에 머물러 있었다. 이는 인터넷 인프라의 활용이 생산적 관점 보다는 소비적 분야에 집중되어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또한 인터넷의 사회적 기능에 대해서도 역기능과 오•남용이 워낙 부각되다 보니 순기능적인 요소가 상대적으로 묻혀버리는 상황이다. 인터넷 산업의 경제가치가 성장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이에 못지않은 역기능으로 인해 사회적 가치까지 증가하는지에 대해선 의구심이 많다. 때문에 우리들은 인터넷 접속 서비스에 대해 공공서비스와 같은 인식을 하고 있지만 정작 ‘공공성’을 충분히 입증하기에는 무엇인가 매끈하지 못한 구석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네티즌으로서 종량제 도입이 반가운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가 논의되는 시점에 우리가 한번쯤 우리가 인터넷에 대해 어떠한 관점을 갖고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 동안 수 많은 시간을 인터넷 속에서 보내며 우리 인터넷 발전의 주역임을 자임했던 우리들이 통신사업자의 태도변질에 분노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 동안 인터넷 속에 투자한 시간과 사고력이 어느 정도 의미가 있었는지 반추해볼 만한 시기라는 것이다.
앞으로도 많은 시간을 인터넷 속에서 보낼 것이고, 또 그리할 것으로 생각하는 입장에서 경제적인 부분만을 헤아리기에 앞서, 우리 자신이 큰소리 치는 것과 무관하게 어느새 통신 사업자들의 “봉”으로 취급 받게 되었는지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겠는가. 우리가 인터넷으로부터 조금만 더 자유로워질 수 있다면 종량제가 언급될 시기가 아닐 터이니 말이다.
통신사업자가 종량제를 준비한다는 것을 우리들의 인터넷에 대한 절대적 의존성을 반증하는 결과로 생각해 보자는 뜻이다.
/홍윤선 웹스테이지 대표 yshong@webstage.co.kr
--comment--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댓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