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의 월드컵 예선 탈락의 충격 속에 프랑스 대표 기업 중의 하나인 비방디의 급락은 유난히 그들 나라에 대해 자긍심 높은 프랑스인들에게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건이었다. 그러기에 프랑스 대표적 미디어 그룹 비방디 유니버설의 CEO 장 마리 메시에르 (Jean-Marie Messier)의 퇴진은 아직도 긴 여운을 남기고 있다.
7월 2일 장 마리 메시에르가 주주들의 그에 대한 불신과 달리 그를 따르던 직원들의 박수 속에 퇴임하였다. 그는 비방디 유니버설을 미국 AOL 타임워너, 독일 베텔스만( Bertelsmann) 등과 함께 세계 미디어 업계를 리드하던 기업으로 성장시키면서 한때 프랑스 젊은이들의 상징적 존재이기도 하였다.
매각 운명 속의 ‘비방디 유니버설’
지난 2년 여 동안 공격적 경영을 통해 세계 2위 미디어 그룹이 된 비방디가 이제 200억 유로의 부채와 회사 자산 가치 폭락으로 기업 매각이 서서히 표면화되면서 구조 조정의 첫 단계로 지난 7월 23일 자회사 중 비교적 수익성이 좋은 유료 텔레비전 회사 카날 플러스(Canal Plus)의 국제 사업을 매각하고 지분의 49%을 처분할 것이라고 발표하였다.
그러나 이번 구조 조정안에 카날 플러스의 필름과 TV 제작 업체인 스튜디오 카날 등의 핵심사업은 제외되기 때문에 이번 매각안은 당초 전문가들이 분석한 30억 유로의 자금 조달에는 못 미칠 것이라고 전망되고 있다. 범 유럽 미디어를 표방하던 비방디는 본격적인 구조 조정이 시작된 것이다.
매각이 표면화되고 있는 비방디 그룹은 Universal Music Group, Universal Entertainment, Canal Plus, Vivendi Environnement, Cegetel, Vivendi Universal Publishing, Vivendi Universal Net 등을 거느리고 있다.
‘Universal Music Group’은 Decca, MCA, Polyder 등의 15개의 음반 제작사를 보유하고 있으며 미국 대표 힙합 가수인 Eminem, 록밴드 U2 등의 스타들이 소속되어 있다. 2000년 만2천명의 직원에 6억6천00
만 유로의 매출을 기록하였다. 유럽 연합은 유니버설 뮤직의 매각이 음악산업에 미치는 파장을 예상하고 이미 세계 5대 음악회사들에게 유니버설 뮤직과의 합병에 참여하지 말 것을 종용하였다.
‘Universal Entertainment’는 유니버설 영화 스튜디오, 유니버설 테마파크, 최근 게이머들의 관심을 불러 일으킨 ‘워크래프트 3’의 브리자드 엔터테인먼트, 하바스 인터랙티브, 시에라 온라인 등 게임 업체를 비롯한 각종 엔터테이먼트 업체들을 소유하고 있다. 이전 소유자 브론프만(Bronfman) 패밀리, AOL 타임워너, 머독의 News Corporation이 유니버설 엔터테인먼트 매각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앞서 이야기한 유료 TV ‘Canal Plus’는 프랑스에 460만, 이탈리아에 150만, 스페인에 120만 등 유럽 11개 국에 1천600여만 가입자를 보유하고 있다. 국제 사업을 매각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프랑스 미디어 그룹 TF1 과 몇몇 프랑스 미디어 회사들이 관심을 기울이고 있으며 현재 프랑스 정치계가 관심을 갖고 지켜 보고있다.
‘Vivendi Environnement’는 프랑스의 수도, 전기 가스 등의 에너지 사업, 쓰레기 관련 환경 사업, 건설 사업, 교통 관리 운영 사업 등에 30만명의 종사자가 근무하고 있다. 현재 비방디 그룹이 63%의 지분을 확보 하고 있으며 독일 수도, 전력 회사인 RWE, E.ON이 매각에 관심을 갖고 있으나 프랑스 정부는 외국 업체의 인수 참여에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
‘Cegetel’은 프랑스의 최대 민간 텔레콤 회사로 현재 비방디가 44%의 지분을 갖고 있다. 세계 최대 이동 통신 회사인 ‘보다폰’이 ‘Cegetel’의 이동 통신 부문 SFR 지분의 20% 인수에 적극적인 관심을 기울이고 있으며 경영권까지 기대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비방디 그룹 계열사 중 가장 작은 부문인 ‘Vivendi Universal Publishing’은 ‘Chambers’와 ‘Larousse’ 브랜드의 세계 최대 백과 사전 출판 회사이며 영국의 Pearson과 Reed Elsevier가 매각에 관심을 갖고 있다. 비교적 적은 규모의 사업임에도 불구하고 구매자들이 가장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고 한다.
‘Vivendi Universal Net’은 비방디 그룹의 전략 사업으로 메시에르가 그룹의 핵심 역량을 기울인 사업이다. 온라인 음악 서비스인 mp3.com과 영국 보다폰과 조인트 벤처로 세운 유무선 포털 Vizzavi는 2001년 말 600만명의 가입자를 기록하였다. 보다폰이 Vizzavi를 인수하고 mp3.com은 메이저 음악 회사들이 인수 경쟁에 뛰어 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비방디 유니버설과 함께 한 ‘장 마리 메시에르’
메르시에가 7월 3일 사임하면서 미리 준비한 비방디 유니버설의 직원들에게 보낸 메시지는 유럽 경영인으로서는 드물게 미국식 글로벌 경영을 지향하였던 그의 사고를 엿볼 수 있다. 전통적으로 보수적인 성향의 유럽 기업인들에게 지난 수년 동안 보여 준 그의 경영 방식은 관심의 대상이었다.
1956년 출생한 메르시에는 현 자크 시라크 대통령과 전 조스팽 총리 등 프랑스 정관계와 재계를 이끌어 가는 엘리트들이 수학한 프랑스 국립 행정 학교를 졸업한 후 82년 프랑스 경제성의 재무 감독관, 86년에는 당시 경제성에서 주관하던 프랑스 국영 기업의 사유화 프로그램의 핵심 멤버로 참여하기도 하였다.
1989년 Lazard Freres 투자은행의 최연소 파트너 임원을 거쳐 39살의 나이인 96년 비방디 전신인 150년 역사의 ‘제네랄 데조 (General des Eaux)’의 CEO에 자리에 오른 것이다. 메르시에가 CEO에 오른 것은 그의 능력이 인정받았기 때문이겠지만 당시 사회당 내각의 조스팽 전 총리의 후원이 있었다는 후문도 있다.
1998년 45억 유로에 달하는 프랑스 하바스 미디어 그룹과 Canal Plus도 인수하면서 본격적인 범 유럽 미디어 그룹으로 탈바꿈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는 영어로 ‘live’의 의미인 라틴어 ‘Vivere’에서 연계된 ‘Vivendi’라는 그룹 이름을 세상에 알리게 된 것이다.
99년에는 세계 언론 재벌 루퍼트 머독의 BSkyB의 23%의 주식을 사들이며 머독과 미디어 사업의 자존심 대결도 벌였다. 2000년에는 유니버설 스튜디오를 소유하고 있던 카나다의 음료 기업인 시그램그룹을 약 950억 유로에 인수하였으며 보다폰과 함께 유무선 포털 사이트인 비자비를 설립하기도 하였다.
지난해 5월에는 4억 유로에 온라인 음악 서비스 회사인 mp3.com을 합병시켰으며 전문가들이 인수 배경을 의문시하던 교육 출판 기업인 휴톤 미프린을 20억 유로에 사들이기도 하였다.
나스닥 상장 기업인 USA Neworks의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위해 110억 유로에 해당되는 주식과 현금을 투자하였다. USA Network 과 Sci Fi 케이블 채널, 유니버설 영화와 TV 프로그램 제작 사업 등의 미국 내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대한 메르시에의 집념은 남달랐다.
결국 그의 공격적 경영은 2001년 프랑스 기업 사상 최대인 120억 유로에 달하는 적자를 기록하였다. 투자가들의 메르시에에 대한 불신이 깊어진 가운데 금년 4월 카날 플러스의 전설적인 CEO 피에르 레스큐의 해고는 프랑스 사회 문화계와 지식인들의 비난을 받으며 메르시에의 종말을 예고하기 시작했다.
금년 5월 비방디 그룹의 이사회는 160억 유로의 부채를 절감하는 메르시에의 전략을 후원하였지만 시장의 반응은 매우 차가웠다. 또한 연초 대비 비방디의 주식 가치는 60% 이상으로 추락하였다. 각 신용 평가 회사의 비방디의 주식을 정크 본드로 하향 조정하고 최하위의 신용 등급을 매기기도 하였다.
6월 24일 메르시에는 가장 절친한 친구이던 프랑스 최고 브랜드인 루비똥 그룹의 베르나르 아놀 회장을 이사회에서 해고하였다. 6월 25일 이사회에서 아주 근소한 차이로 메르시에는 비방디 그룹의 총수 자리에 유임되었으나 7월1일 이사회의 후원을 잃은 후 프랑스 언론들은 메르시에의 퇴임을 알리기 시작했다.
비방디 유니버설 성장에 프랑스 정부의 절대적 후원을 입은 메르시에가 이사회를 통해 유임이 결정 되었지만 다시 사퇴한 배경에는 조스팽 전 총리의 퇴각과 지난 6월 총선에서 르펜 당수가 이끄는 극우파 국민전선(FN)의 돌풍을 잠재우며 강력한 대통령이 된 시라크 대통령의 종용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한다.
그 배경이 무엇이든간에 미국형 글로벌 경영 방식은 당분간 프랑스에서는 뜨거운 감자가 될 것이다. 지금 프랑스 정부가 비방디 그룹 문제에서 가장 염려하는 부분은 비방디의 핵심 사업이 외국인에게 넘어 가는 것이다. 이제 프랑스에서는 미국형 자유주의 경제 정책에 대한 뜨거운 논의가 일게 될 것이다.
90년대 중반 당시 한국의 대우가 프랑스 대표 기업인 ‘톰슨 전자’ 인수가 표면으로 떠 오르자 프랑스 정부와 의회의 강력한 제지로 그 인수 계획은 무산된 적이 있다. 90년대 후반 일본이 미국의 유니버설 스튜디오를 인수하자 미국인들의 자존심이 상한 것과 같이 프랑스인들도 비방디 유니버설 그룹의 핵심 사업이 외국에 넘어가는 것을 결코 쉽게 받아들이지는 않을 것이다.
/하워드 리 시멘텍 부사장 howard@siem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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