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의 미래일까, 제2 냅스터 될까?"


미국, '광고 뛰어넘는 DVR' 놓고 열띤 법정 공방

[김익현기자] "텔레비전의 새 전형을 만들어낼까? 아니면 '제2의 냅스터' 같은 운명을 맞을까?"

요즘 미국에선 광고를 건너뛰고 볼 수 있는 디지털 영상저장장치(DVR)를 둘러싼 법정 공방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판결 결과에 따라선 미래 텔레비전 방송 지형도에 큰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커 관심이 쏠리고 있다.

단초를 제공한 것은 미국 위성방송사업자인 디시 네트워크였다. 디시는 2주 전 광고를 빼고 방송 콘텐츠만 저장할 수 있는 '오토 홉(Auto Hop)'이란 DVR를 선보였다.

그러자 폭스, NBC, CBS 등 미국 주요 방송사들이 곧바로 법적 조치에 나섰다. 이들은 지난 24일(현지시간) 저작권 침해 혐의로 디시를 캘리포니아 연방법원에 제소한 것. 특히 폭스는 디시가 광고 없이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것을 라이선스 계약 위반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디시도 그냥 있지는 않았다. 다음 날인 25일 뉴욕 지역법원에 자사 DVR이 저작권을 침해한 것이 아니라는 확인 판결을 요청했다.

◆지상파 방송사들 일제히 법정 공세

미국 주요 방송사와 디시 간의 공방은 표면적으로는 신기술을 둘러싼 다툼이다. 하지만 그 이면을 파고 들어가면 기득권을 지키려는 방송사와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려는 위성방송사업자 간의 헤게모니 싸움이라고 볼 수 있다.

양측은 법적인 조치와 함께 열띤 논리 싸움을 벌이고 있다. 서로의 정당성을 주장하면서 여론 몰이에 나서고 있는 셈이다.

CBS의 레스 문베스 최고경영자(CEO)는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찰리 어겐은 어떻게 우리가 광고 없는 CSI를 만들 것으로 기대할 수 있는 지 이해할 수가 없다"고 비판했다. 찰스 어겐은 디시 CEO이다.

반면 디시는 사람들은 이미 텔레비전 광고를 건너뛴 지 오래됐다고 맞서고 있다. 디시가 이번에 내놓은 '애드 홉'은 소비자들의 이런 과정을 좀 더 촉발시켰을 뿐이란 것이다.

여론이 어느 쪽으로 모아질 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디시의 '애드 홉'이 특별할 것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미 사람들은 텔레비전 광고를 잘 시청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재니 캐피털 마켓스의 토니 위블 애널리스트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애드 홉은 전형적인 텔레비전 시청 방식과 큰 차이가 없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애드 홉은 방송 다음 날 오전 1시부터 광고를 빼고 녹화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방송 당일 녹화 시청할 경우엔 광고를 봐야만 한다. 따라서 케이블이나 위성방송 시청 관행을 감안할 경우 광고를 건너 뛰는 경우가 그다지 많지는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기존 텔레비전 시청 관행과 큰 차이 없어

실제로 닐슨 자료에 따르면 지상파 방송의 82%, 케이블 방송의 90%가 방송 당일 시청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동안의 시청 관행을 감안하면 방송사들이 그렇게 긴장할 부분은 아니란 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송사들은 디시의 새로운 DVR을 쓸 수 없도록 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일 것으로 전망된다. 헤게모니를 넘겨줄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10년 전 'P2P'란 새로운 영역은 개척했던 냅스터는 미국 음반산업협회(RIAA)의 집중 포화를 견디지 못하고 결국 몰락했다.

과연 '광고 뛰어넘기'란 새로운 기술을 내놓은 디시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시청 관행을 조사한 자료만 보면 큰 문제는 없어 보인다. 하지만 늘 그렇듯 엔터테인먼트 분야의 신기술 경쟁은 '영역 지키기' 성격이 강하다.

거대 방송사와 디시 간의 법정 공방의 결과에 더 관심이 쏠리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김익현기자 sini@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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