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규제는 '미봉책'…가정·지역사회 나서야


[게임 죽이기의 진실-5] 게임업계도 막중한 책임감 있어야

"초보자 사냥터에서만 놀던 내가 꿈에도 그리던 고급 아이템을 확보하기 시작하자 레벨업은 당연히 빨라졌고 노는 물이 달라졌다. 여기저기서 '고수' 소리를 듣게 되자 더욱 신이 났다. 어디에서도 들어보지 못했던 '칭찬'을 게임을 하는 동안은 물릴 정도로 들을 수 있었다." (게임중독 상태에 있던 한 고등학생)

"좋은 학교를 나와서 기대 받는 직장에 들어갔지만 어느 순간 모든 의욕이 사라졌다. 2년 동안 아무 일도 하고 싶지 않았다. 할 일이 없으니 게임을 시작했다. 결국 가족들이 나를 정신의학과로 데려왔다. 세상에서 제일 무기력한 상태였던 내가 우울증약을 먹기 시작하자 차츰 기분이 좋아지고, 의욕도 생겼다." (20대 게임중독자)

한국콘텐츠진흥원과 게임문화재단에 따르면 전체 청소년의 6.5%가 게임으로 인한 문제를 겪고 있으며, 지난 5일 행정안전부와 한국정보화진흥원이 발표한 '2011 인터넷중독 실태조사'에 따르면 만 10세~19세 청소년의 인터넷 중독률은 10.4%였다.

청소년 외에도 29.9%의 성인들이 여가시간에 즐겨 하는 활동 1위로 게임을 꼽고 있다. 30대 미만의 경우 연령층이 낮아질수록 게임을 선호하는 비율이 높게 나타난다.

게임이 주요 여가 문화로 정착한 만큼 게임과 관련된 여러 가지 문제들도 필연적으로 생겨난다. 그러나 게임이라는 미디어와 게임중독이라는 사회현상은 결코 동일하지 않다. 사회 문제는 단선적인 원인 때문에 일어나지 않는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이 청년들의 버릇없음을 '시' 탓으로 돌렸던 것처럼, 사회는 새로 등장한 미디어에게 책임을 전가시키는 경향이 있다.

게임중독의 원인을 게임으로만 돌리면 문제와 해결책 모두 간편하다. 이는 곧 정부가 택한 방법이기도 하다. 여성가족부의 강제적 셧다운제, 교육과학부의 쿨링오프제, 그리고 문화체육관광부의 선택적 셧다운제 및 사전 등급분류제로 인해 한국은 '게임규제 공화국'이 되어가고 있다.

그러나 학교폭력·'왕따' 등 사회 문제를 게임으로 돌리는 것은 우리의 눈을 가리는 미봉책에 불과하다. 본질적인 문제에 접근해서 게임에 중독된 사람들을 구하고 싶다면 구체적으로 누가 어떻게 게임에 중독되는지를 살펴야 한다.

'2011 인터넷중독 실태조사'에 따르면, 청소년 10명 중 한 명이 인터넷에 중독됐다. 그 중 고등학생의 중독률이 12.4%로 가장 높았다. 특히, 고위험군은 4.1%로 초·중학생 고위험군 2.1%의 무려 두 배였다.

또한 월 평균 가구소득 200만원 미만의 저소득층 가정의 청소년층은 13%가 인터넷에 중독됐으며, 다문화가정은 14.2%, 한부모가정은 10.5%의 중독률을 기록했다.

학업 스트레스가 높은 고학년일수록, 부모가 자녀에게 많은 관심을 기울일 수 없는 환경에 처한 아이들일수록 인터넷에 중독되는 비율이 높았다. 성인의 경우에도 평균적인 중독률이 6.8%인데 비해, 성인 무직자의 중독률은 10.1%였다.

정신의학 전문가들은 "인터넷 중독에 걸린 사람들에게서 주요 우울장애, 조울증,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 증후군)와 불안 장애를 포함한 여러 공존 정신 질환율이 상대적으로 높다. 또한 비정상적인 가족 구조가 인터넷과 온라인 게임중독의 중요한 위험 요인을 구성한다"고 조언한다.

게임에 중독되는 사람들의 모습 이면에는 대화부족의 가정, 학업중심의 학교 및 교우관계, 과도한 스트레스 등 우리 사회의 어두운 현실이 자리잡고 있다.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게임은 (사회의) 복잡한 현실을 보여주고 반영하는 하나의 거울"이라며 "게임 이용에 대한 다층적인 결과들이 우리 사회의 문제를 직시할 수 있는 반성적인 거울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부모가 관심 기울이면 불필요한 규제들

게임을 많이 즐기는 청소년들의 문제는 법으로 게임 이용시간을 통제하기 이전에 가정과 지역사회에서 먼저 풀어 나가야 한다.

현재 문화체육관광부가 시행 중인 '선택적 셧다운제'는 부모나 친권자의 요청이 있을 경우 청소년들의 게임 접속을 일정 시간동안 차단할 수 있는 제도다.

청소년들은 이미 부모들의 주민등록번호 정도는 자연스럽게 외우고 있다. 게임 가입자의 주민등록번호로만 이용자의 나이를 판단할 수밖에 없는 온라인게임 특성상 청소년이 성인처럼 게임을 이용하는 것을 원천차단하기 어렵다.

부모들이 선택적 셧다운제에 대해 잘 알게되면 자녀들이 자신의 주민등록번호를 도용하고 있는지 손쉽게 알 수 있다. 청소년의 성인게임 이용을 막을 수 있는 제도다.

문화체육관광부 이기정 게임콘텐츠산업과 과장은 "선택적 셧다운제에 포함될 수 있는 규제들이 다른 이름으로 계속 생겨나고 있다"며 "부모들이 직접 관심을 가지기만 한다면 게임 때문에 생겨나는 역기능을 대부분 예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주위를 둘러보면 게임에 빠진 아이들을 교육하거나 치료할 수 있는 시설이 많다.

각 지역에 위치한 청소년수련원에서 지속적인 상담치료를 받을 수도 있고 인터넷중독을 전문적으로 치료하는 '아이윌'센터도 서울 광진구와 서대문구·동작구·도봉구에서 운영되고 있다. 게임문화재단에서 운영하는 게임과몰입 상담치료센터도 수도권과 호남권, 영남권에 각 1개소씩 개설됐다.

마포청소년수련원 창의사업팀 장지혜 지도사는 "청소년들이 부모 주민등록번호를 사용해 게임을 즐기는데 셧다운제나 쿨링오프제가 어떤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라며 "실효성없는 규제를 만들어가는 것보다는 대안 놀이 문화 개발이나 올바른 게임 이용 지도 등이 훨씬 효과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게임산업, 문화를 만든다는 책임의식 가져야"

직접적인 책임유무를 떠나 게임업체들도 청소년들의 잘못된 게임 이용을 막는데 힘을 쏟아야 한다.

부모들이 손쉽게 자녀들의 게임시간을 조절할 수 있도록 돕고 청소년 게임의 본인 인증을 강화하는 방식을 확대해야 한다. 특히 무분별하게 도입됐던 확률형 아이템 판매를 중단하거나 성인들만 구매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한 게임업계 관계자는 "청소년들은 복권을 구매할 수 없고 성인들도 복권을 1인당 10만원밖에 구매할 수 없는데 청소년들이 복권과 비슷한 확률형 아이템을 구매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문제"라며 "청소년들에게 매출을 올리기 위해 사행심을 조장하는 아이템을 판매하는 것을 중단하는 등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회 내부에 만연한 게임산업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결국 유능한 인재의 유입을 막는 자충수이기도 하다.

이동연 교수는 "게임산업 종사자들이 산업역군이기도 하지만 문화를 만드는 사람들로서 책임을 가져야 한다"며 "문화적으로 성숙한 콘텐츠, 어떤 문화를 만들어 갈 것인지에 대한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상우 연세대 교수 역시 "'게임을 제작하는 사람들이 돈을 버는 데에만 생각이 머물러 있다'고 판단해 실망한 적이 있다"며 "부모들은 게임을 하면 자녀가 부모와 단절된다고 생각한다. 부모 세대가 게임을 경험해 볼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하고 그 경험을 제공하는 1차적 역할을 게임회사가 좀 더 적극적·자발적으로 해나가야 한다"고 주문했다.

특별취재팀 강호성 팀장, 허준 기자 game@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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