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삼성 특허분쟁이 파국으로 간다면?


인텔·TSMC 등 삼성 경쟁업체 반사이익 기대

[로스앤젤레스=이균성 특파원] 애플과 삼성전자의 협력 관계는 결국 파국으로 치달을 것인가. 삼성전자와 애플의 특허 분쟁이 갈수록 격화되면서 이 문제가 세계 모바일 기기 시장은 물론이고 부품 시장까지 크게 흔들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애플이 부품 분야에서 삼성전자와의 협력 관계를 약화시키거나 완전히 단절할 경우 한 해 수조원에 달하는 새 시장이 인텔, TSMC, 도시바, 마이크론, 하이닉스, 세미컨덕터 등 삼성전자의 경쟁업체로 넘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와 애플이 특허 분쟁을 시작한 초기에만해도 애플과 삼성의 협력 규모가 워낙 크기 때문에 두 회사가 결국 합의를 통해 특허 분쟁을 해결하고 부품 분야의 협력 관계를 유지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실제로 팀 쿡 애플 최고운영책임자는 지난 4월 삼성전자를 처음으로 제소한 뒤 "삼성전자 모바일 사업부가 도를 넘었지만 두 회사의 협력 관계는 계속될 것"이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두 회사의 특허 법적 분쟁이 갈수록 격화되고 있고, 두 회사가 세계 모바일 기기 시장에서 최대 적수로 부상한 상황을 감안하면 최근의 갈등이 결국에는 두 회사의 협력 관계를 파국으로 몰아갈 것이라는 전망도 커지고 있다.

이 때문에 향후 부품 시장에 미칠 영향에 대한 분석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경쟁과 협력 사이의 애매한 줄타기

두 회사는 묘한 관계에 있다. 삼성전자의 핵심 사업부 가운데 한 곳은 애플과 세계 모바일 기기 시장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고, 다른 한 곳은 애플을 세계 두 번 째 고객으로 모시고 있을 만큼 큰 협력 관계에 있다.

삼성전자 입장에서 보면 한 사업부에게는 애플이 최대 적이지만, 다른 사업부에게는 두 번째로 큰 고객인 것이다. 애플 입장에서 봐도 삼성은 최대 적인 동시에 애플 기기 사업의 성장을 도와준 최대 협력업체이기도 하다.

두 회사의 관계가 복잡해진 것은 애플의 모바일 기기 사업이 급속히 커지면서부터다. 그동안 세계 휴대폰 시장은 핀란드의 노키아가 부동의 1위였고, 삼성전자가 이를 맹추격하는 국면이었다. 그런데 애플은 아이폰을 내놓은 뒤 불과 몇 년 지나지 않아 이 시장의 '게임의 룰'을 바꿔버렸다. 노키아는 스마트폰 시장에서 크게 밀리며 세계 1위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

삼성전자에게도 애플은 중대한 위협이었다. 세계 휴대폰 시장의 '게임의 룰'이 애플이 주도하는 터치스크린 형태의 스마트폰으로 바뀌면서 노키아와 마찬가지로 삼성전자 또한 한 때 휴대폰 사업이 중대한 위기에 빠지기도 했다.

삼성전자는 그러나 노키아와 달리 스마트폰 시장의 경쟁력을 재빨리 회복했고 대규모 반격에 나설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지금은 오히려 노키아가 빠진 스마트폰 시장에서 애플을 능가하며 세계 1위 자리를 넘보는 상황이다. 애플로서는 불과 1년여 만에 삼성전자를 견제하지 않으면 안될 상황이 된 것이다.

지난 4월부터 시작된 특허 소송 분쟁은 두 회사가 세계 스마트폰 시장의 왕좌를 향해 나아가면서 부닥칠 수밖에 없는 숙명과도 같은 것이다. 서로 상대의 예봉을 꺾지 않는 한 스마트폰 시장의 왕좌를 차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애플은 지난 4월 특허 침해 혐의로 삼성전자를 제소하면서 이 싸움을 시작했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는 맞소송을 통해 즉각 반격했다. 두 회사는 이후에 소송 지역, 소송 품목, 소송 내용 등을 확대하며 양보 없는 격투를 벌이고 있다.

◆협력보다 경쟁에 더 무게 중심 실려

두 회사가 협력과 경쟁의 와중에서 결국 경쟁을 택할 수밖에 없는 까닭은, 협력은 대안이 존재하지만 경쟁은 피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이치와 무관하지 않다. 두 회사 서로 상대를 넘어서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 처해 있고, 협력 관계는 다소 시간이 걸릴지라도 얼마든지 대안을 찾아낼 수 있는 상황이라는 뜻이다.

특히 삼성전자가 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 1위 자리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이 갈수록 커지면서 애플로서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최근들어 미국의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런 견해를 보이는 사람이 늘고 있다.

로이터는 11일자 보도를 통해 한 해 5조원에서 6조원에 달하는 두 회사의 협력관계가 파국으로 치닫고 반사이익을 보는 업체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파국 가능성을 점치는 것은 스티브 잡스 애플 최고경영자(CEO)의 스타일과도 무관하지 않다. 애플은 마이크로소프트(MS)에 맞서 구글과 긴밀한 협력 관계를 맺고 있었다. 에릭 슈미트 구글 회장이 애플의 이사회 멤버를 지낼 정도였다. 또 스티브 잡스는 레이 페이지 등 구글 창업자의 멘토를 자처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구글이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를 내놓으며 이 관계는 급속히 악화됐다. 협력 관계가 아니라 적이 된 것이다. 스티브 잡스는 이 과정에서 구글의 진의를 파악하기 위해 몰래 구글 사옥을 방문했다는 일화까지 알려졌다. 잡스는 구글을 방문하고 나서 구글과 창업주 등에게 심한 배신감을 느낀다고 토로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런 여러가지 정황 때문에 미국의 전문가들은 애플이 장기적으로 부품에 대한 삼성 의존도를 줄이고 대안을 찾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글리처 앤 코의 애널리스트인 브라이언 마샬은 "두 회사의 협력 관계는 줄어들고 경쟁 관계는 커지고 있다"며 "애플이 삼성전자를 낸드 플래시의 영원한 파트너로 생각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그는 특히 "애플이 미래 모바일 프로세서로 공급처로 삼성보다 다른 회사를 택할 것으로 본다"고 예상했다.

스턴 에이지의 애널리스트 쇼 우는 "애플은 이미 삼성전자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부품 공급처를 다각화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애플은 디스플레이 공급 업체로 최근 대만의 '치메이 이노룩스'를 추가했다"는 것이다.

◆애플-삼성 파국으로 반사 이익을 보는 곳은?

스마트폰과 태블릿의 표준격이 된 아이폰과 아이패드에 부품을 공급한다는 것은 반도체 분야 등의 부품 업체에게 명실공히 큰 도움이 된다. 첨단 부품을 앞서서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고 당연히 매출 확대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애플과 부품 공급 계약을 체결하고 애플이 원하는 만큼 부품을 대량으로 공급하기는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애플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반도체 생산 규모나 생산 노하우가 상당한 수준에 올라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애플이 채택하는 부품이 늘 최첨단 제품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이 점에서 대만의 TSMC와 인텔이 특히 가능성이 높은 수혜 업체로 예상되고 있다.

TSMC는 세계에서 가장 큰 대만의 칩 수탁생산 업체이다. TSMC는 반도체 생산 기술과 장비를 업데이트하기 위해 올해 78억 달러를 투자하기로 한 바 있고, 애플의 모바일 기기에 주로 사용되는 ARM 아키텍처의 제품을 다룬 경험이 많다는 등의 이유로 애플과 머잖아 계약을 체결할 가능성이 많은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대만의 푸본(富邦) 리서치는 이런 상황을 감안하여 "만약 TSMC가 애플이 다음에 내놓을 예정인 차세대 A6 칩을 수탁생산하게 될 경우 여기서 일으키는 매출이 내년 총매출(180억 달러)의 3% 정도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인텔은 이미 맥북에 프로세서를 공급하고 있고, 모바일 아톰 칩을 개선하기 위해 수십억 달러를 쓸 만큼 모바일 분야에 집중하고 있다는 점에서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시티그룹은 "만약 인텔이 애플과 (칩 분야에서) 새로운 계약을 체결할 경우 그 규모는 인텔의 2012년 매출에서 1.4%를 차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인텔의 2012년 매출은 약 56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게 될 경우 삼성전자 해당사업부로는 큰 고통이 아닐 수 없다.

◆협력 관계의 완전한 단절은 불가능할 수도

두 회사의 분쟁이 격화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협력관계가 무 자르듯 일시에 중단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는 견해 역시 많다. 우선 애플이 삼성과의 협력 관계를 중단하려면 많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고 신경 쓸 것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새로운 수탁업체가 애플의 새 칩을 생산하기 위해 생산과정을 바꾸고 새로운 단말기에서 그것들을 테스트하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린다. 첨단 제품의 경우 출시 타이밍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와 같은 시간 낭비는 애플로서도 도박일 수밖에 없다.

비용 측면에서도 애플에게 불리할 수 있다. 디스플레이, 플래시 메모리, 응용 칩 등을 삼성전자에서 모두 구매할 경우 대량 주문에 따른 '바잉 파워'로 단가를 낮출 수 있지만 이들 부품을 제 각기 분리 발주할 경우 비용이 더 높아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삼성과 애플이 부품 공급에 관한 장기 계약을 했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 경우 애플은 삼성에 대해 위약금까지 물어야 할 가능성이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삼성과 애플은 제한적으로 분쟁을 하되 가능한 한 부품 협력관계는 유지하려 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특히 애플로서는 부품 공급처를 서서히 다각화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단기적으로는 삼성과의 협력이 불가피한 상황이기도 하다.

지난해 애플은 삼성으로부터 57억 달러의 부품을 구매한 바 있다.

/로스앤젤레스(미국)=이균성 특파원 gslee@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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