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대부분의 성인들중 중·고교 시절 이성에 대한 환상은 도서와 비디
오등의 변질된 형태(포르노)로 한두번의 시청각 경험을 했을 것이다. 필자
또한 포르노라 불리울 수 있는 거의 모든 매체를 어린 시절부터 접했던 부
분은 지금에 와서 많은 것을 느끼게 해준다.
포르노가 나쁜(?)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다. 아니 왜 갑자기 이 친구가 이
렇게 변했나 생각할 친구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 이야기하고자 하
는 부분은 그런 논지는 아니다.
나쁘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더 이상 꿈꿀 수 없도록 하기 때문이다. 꿈 꾸
던 남과 여의 만남과 사랑은 아름다운 것이고, 그리고 그것이 아름다울 수
있는 이유는 꿈꾸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사람과 동물이 다를 수 있는 것은 몸이 교접하면서 꿈꿀 수 있다는 사실
일 것이다. 섹스는 더없이 훌륭한 꿈의 커뮤니케이션이다. 섹스처럼 꿈꿀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도 없다.
그러나 포르노는 꿈꿀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으로서의 섹스에서 꿈을 도려
낸 것이다. 상상을 거세한 그래서 뻔하게 돌아가게 만드는 그 내용이 그내
용인 것이 되는 것이다.
최근 모 연예인이 원조교제로 구속이 되었다고 한다. 초등학생과 중학생
이 임신을 한다.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도 모른다. 배만큼 커져도 시원치 않
을 그들의 꿈은 오히려 반비례해서 줄어만 가고 결국에는 사라지게 된다.
아니 그들은 꿈 같은 것에 관심조차 없었는지도 모른다. 애초에 세상이 그
들에게서 꿈 자체를 거세해 버렸기 때문이다. 누가 그들을 다시 꿈꿀 수 있
게 할 수 있을까?
--comment--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댓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