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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미의 명랑한 경제]불황, 등록금 천만원 그리고 '텐프로'


"아버지는 잦은 술에 무직이고… 빚이라도 갚아주고 싶어요. 어떻게 해야 그 직종에 취업할 수 있는지…"

착한 소녀가장의 애틋한 마음이 읽히는 글. 경제위기 이후 유력 포털사이트에선 어렵잖게 이런 글들을 찾아볼 수 있다. 반전은 '그 직종'에서 시작된다. 대개 아이디를 비공개처리한 질문들. 여기서 지목하는 '그 직종'은 유흥접대업, 구체적으로는 '텐프로'다. 어리고 예쁜 그녀들이 지금 인터넷에서 '텐프로 가는 길'을 더듬고 있다.

텐프로란, 대한민국 상위 10% 안에 들법한 미모의 접대부들이 모인 고급 룸살롱을 이른다. 본래 룸살롱에서 접대부들의 수입 10%를 떼어가던 데서 비롯된 이 말은 이제 강남 일대 고급 술집에서 일하는 접대부를 통칭하는 은어가 됐다.

화류계에선 텐프로의 성쇠가 2000년대 초반 벤처 붐과 무관치 않다고 주장한다. 젊은 벤처인들이 호시절을 보낼 때 그 열매를 텐프로와 나눴다는 비사(秘史)다. 물론 '카더라' 통신일 뿐 근거도, 확인할 길도 없는 얘기다. 다만 후일담을 기억한다. IT 거품이 빠지자 텐프로 업계에서도 곡소리가 났다는.

그렇게 돈 줄을 따라 텐프로 업계도 흐름을 탔다. 간혹 TV가 그들의 존재를 환기할 뿐, 테헤란로에 돈이 마르면서 그들에 대한 관심은 서서히 잦아들었다.

실물과 지표 어느 쪽을 봐도 경제 상황은 여전히 빙하기. 그런데 요사이 포털 사이트를 보면 어느새 시중에 돈이 넘치던 '텐프로 전성시대'가 돌아온 것만 같다.

통계를 보자.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지식iN(이용자간 문답이 이뤄지는 정보공유 게시판)' 코너에서 성인인증 요구 단어 '텐프로'를 검색하면 2003년 3월 최초 질문 이후 2009년 4월 현재까지 총 310개의 질문이 올라와 있다.

간혹 선이자 10%를 떼는 사채 관련 질문이나 게임 관련 얘기도 섞여 있지만, 95% 이상은 앞서 말한 '그 텐프로'에 관한 얘기들이다.

특징은 7년 새 누적된 텐프로 관련 질문 중 절반이 넘는 156개가 2008년 이후 게시됐다는 점이다. 여기서 다시 절반인 78개가 작년 10월부터 올해 4월 사이에 접수됐다. 미국발 금융위기가 시작돼 경제 상황이 급격히 악화된 기간과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다.

그래서일까.

요사이 텐프로 관련 질문들은 참 경제적이다. '수질'을 을 묻던 치기어린 질문이 사라지고 '구직'을 원한다는 진지한 글이 올라온다. 급격한 가세 몰락, 가족의 병치레, 학업 중단… 코드화 된, 그러나 가슴아픈 사연의 릴레이다. 장고의 결론은 역시 텐프로라고 했다.

질문 아래엔 답변들이 무성하다. 젊은 날 후회할지 모르는 판단을 말려보려는 이들도 적지 않지만, 훌륭한 '예비 선수'를 선점하려는 브로커들도 눈을 번득이고 있다. 이들의 답변은 현실적이다. 원하는 미모 수준, 요사이 화류계의 시세처럼 상세한 '그 쪽 정보'를 준다. 텐프로부터 보도(보조 도우미)까지 버젓이 포털에 비용을 치르고 등록한 화류계 구직 알선 사이트들도 성업 중이다.

포털사이트 다음이 밝힌 성인인증 요구 검색어는 약 3만여개. 네이버는 수치 제공을 거부했지만 "추세적으로 성인 인증을 거쳐야 결과를 볼 수 있는 검색어들이 늘고 있는 건 사실"이라고 했다. 그리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 참 가까이에 있었다.

여기까지 쓰다 포털에 한 눈을 팔았다. 참 풋풋하고 예쁜, 그런데 삭발한 여대생 인터뷰가 눈에 들어온다.

서울 소재 4년제 대학 총학생회장이라는 그녀. 한창 가꿀 나이에 취업을 앞둔 대학 4학년이 왜 머리를 박박 밀어버렸을까.

등록금 연간 천 만원 시대를 사는 학생의 바람은 단순했다. 그는 "낼 수 있는 수준의 등록금을 책정하라"고 말한다. 내리 5일까지 쉴 수 있는 5월 초 황금 연휴엔 범국민대회, 전국대학생 공동행동을 준비해 거리로 나서겠단다. 앞서 빚을 지고 스스로 숨을 끊은 명문 사립대 남학생과 피싱 범죄로 등록금을 털린 뒤 세상을 버린 여학생의 사연이 겹쳐졌다.

삭발한 여대생과 텐프로 가는 길 언저리의 그녀들. 근거도 없이 그들 사이의 거리가 그리 멀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심증이 든다. 다른 점이 있다면 전자는 저항하고, 후자는 순응한다는 것 정도일까.

찬란한 5월, 거리로 나서거나 네온사인 아래로 들어가겠다는 젊음들을 말리지도, 권하지도 못하고 그저 비겁하게 바라만 본다.

/박연미기자 change@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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