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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균성]치사량에 이른 말과 글의 악용


의도적으로 상대를 욕보이려는 게 아니라면 말과 글을 제대로 가리는 게 배운 사람의 도리다. 옛 사람들은 그것을 군자(君子)의 중요한 덕목으로 여겼다. 애써 말과 글을 깨우치는 목적이 그렇다. 서푼 지식을 뽐내고자 함이 아니다. 사리를 제대로 분별하기 위함이다. 사리(事理)는 격물(格物)에서 비롯되며, 격물은 자연과 인간이 가진 본래의 숭고한 가치를 정연하게 깨닫는 과정이라고 봐야 한다.

최근 온 국민을 충격의 도가니로 몰아간 연예인의 잇따른 자살 사건은 ‘말과 글의 오용에 대한 사회적 성찰’을 요구하고 있다.

우선 가장 저급한 형태의 오용부터 보자. 말과 글의 의미를 모르고 쓰는 경우다. 이 경우 말과 글이 가져올 파장을 고려하지 않는다. 형태와 소리는 글이고 말이겠으나 그것은 사나운 맹수의 울부짖음과 아무런 차이가 없다. 연예인 자살 사건의 경우 아무 이유 없이 험담을 재생산하는 많은 네티즌의 헛소리가 여기에 해당된다. 이런 형태의 오용된 말과 글은 한마디로 ‘치어(癡語)’라 할 수 있겠다.

중급의 오용은 진어(瞋語)라 부르고 싶다. 진어는 치어와 달리 다분히 의도적이다. 말과 글이 가져올 결과를 충분히 예상하면서도 잘못 쓰는 경우다. 대개 욕설을 동반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이런 말과 글은 대부분 불만에서 비롯된다. 만만치 않은 현실의 원인을 나 아닌 다른 곳에서 찾을 때 주로 나타난다. 일종의 엉뚱한 화풀이다. 연예인 자살 사건의 경우 많은 의도적 욕설이 여기에 해당된다.

실명제와 사이버 모욕죄 같은 규제 조치로 인터넷에 족쇄를 채울 수 있도록 명분을 제공하는 것이 이러한 치어와 진어다. 치어와 진어가 존재하는 게 현실이고 그로 인한 피해가 만만치 않은 것 또한 현실이다. 그것은 수정될 것을 요구받고 있고 바뀌어야 한다는 게 상당한 수준의 사회적인 합의다. 결과적으로 ‘표현의 자유’라는 또 다른 소중한 헌법적 가치는 언제든 양보돼야만 할 위기에 처했다.

그동안 불장난에 빠져 ‘치어 놀이’를 즐겼던 사람들이나 자신을 위해 전혀 이롭지 못한 적개심에 빠져 ‘진어 게임’을 했던 사람들은 모두 이 사실을 뼈저리게 느껴야 한다. 단순한 재미나 스스로에게 아무 도움도 되지 않은 쓸 데 없는 적개심이 고귀한 생명을 앗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또 많은 사람의 소중한 헌법적 권리를 제한한다는 사실을.

그러나, 현실이 그렇다 해도, 제대로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다. 말과 글의 오용 가운데 으뜸은 아무래도 ‘탐어(貪語)’라고 부를 만한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치어와 진어는 탐어의 새끼에 불과하다. 치어와 진어는 탐어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탐어야 말로 가장 시급하게 고쳐져야 할 잘못된 말과 글이다. 탐어는 무엇보다도 교묘하게 포장돼 있기 때문에 그 폐악이 커도 잘 드러나지 않아 더 문제다.

탐어는 사심과 정파의 이익을 위해 본래의 사실과 의미를 왜곡하는 말과 글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탐어는 대개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큰 조직이나 사람에 의해 생산된다. 그 파급력이 치어나 진어에 비할 바 아니다.

최근 한 연예인이 자살하자 며칠 만에 8천여 개의 기사가 쏟아졌다. 앞으로도 수천개의 기사가 더 쏟아져 나올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의 자살이 그만큼 사회적으로 중요한 지는 논외로 하더라도, 무슨 대목이나 만난 듯 대대적으로 그의 죽음을 팔아 자신의 배를 채우고서도 겉으론 ‘알권리’라고 주장하는 게 이를 테면 ‘언론의 탐어’다. 그 탐어에 기대 치어와 진어가 기생한다. 격물을 궁구하는 대신 말과 글을 요리조리 배치해 피아를 대결시키는 것도 ‘언론의 탐어’다. 치어와 진어 밖에 모르던 국민들이 ‘언론의 탐어’를 간파하고 질타한 건 이미 오래 전이다.

다양한 정치적 반대 의견에 족쇄를 채우기 위해 인터넷을 규제하고 싶었으면서도 반대 여론이 극심해 머뭇거리고 있다가 연예인 몇이 자살하고 아직 밝혀지지도 않은 그 많은 이유 가운데 하나가 치어와 진어일 수도 있음으로 알려지자 이때다 싶어 연예인을 순교자로 치켜세우고 고인의 이름까지 빌려 법을 만들어 잇속을 챙기려는 말과 글의 경우 이를테면 ‘정치의 탐어’다. 선거 때마다 온갖 헛소리가 판을 치고 입버릇처럼 세상의 모든 감언이설을 되뇌는 ‘정치인의 탐어’를 누구라서 모르겠는가.

어디 탐어가 언론과 정치 분야에만 있겠는가. 그럴듯한 겉포장으로 소비자를 농간하는 기업, 먹거리에 몹쓸 장난을 치면서도 건강과 웰빙을 내세우는 장사치들, 사적 이득을 위해 너푼짜리 학문을 치장해 창녀처럼 정신을 파는 학자들…, 더 열거한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상황이 이런데 격물은 생각하지도 않고 수신제가(修身齊家)마저도 내팽개친 분들이 오로지 교활한 탐어에 의지해 치국(治國)과 평천하(平天下)를 논하며 치어와 진어만 일망타진 하겠다 하니, 이보다 더 답답한 일이 있을까.

이균성기자 gslee@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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