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무려 270억원에 달하는 시스템 구축 비용을 들여 정보화 사업을 펼쳤으나, 시스템 자체가 무용지물로 전락하고만 정말 어처구니 없는 사태가 최근 벌어져 주위를 놀라게 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27일 대국민 사과와 함께 "민간 시스템구축(SI) 사업자인 삼성SDS에 무려 360억원을 배상해 주기로 했다"는 발표였다.
복지부는 '의약품유통종합정보시스템 사업 실패'를 둘러싸고 삼성SDS와 2002년 6월부터 4년동안 끌어온 법적 분쟁의 패배를 인정하고 무릅을 끓었다.
복지부가 360억원을 물어 주게 된 것은 애초 시스템 구축 비용 270억원 외에도 추가 운영비나 이자비용 등이 눈덩이처럼 불어났기 때문. 복지부는 승산이 없는 소송을 끌어 국민혈세를 더 이상 낭비하지 말아야겠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흥미롭게도, 이 사태를 지켜 봐 온 SI 전문가는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담당 공무원이 정말 불쌍합니다."
360억원에 달하는 국민혈세를 낭비하게 한 담당 공무원에게 동정표를 던진 것이어서, 왜 그렇게 생각하는 지 연유를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답변은 이랬다.
보통 공공 정보화 프로젝트는 민간 SI 관련 업계에서 아이디어와 기획안을 받아 추진되는 일이 대부분인데, 나중에 탈이 나면 결국 그 화살을 공무원 자신이 맞을 수 밖에 없어 불쌍하는 얘기였다.
충분히 일리가 있는 얘기였다.
또 그 얘기를 곱씹어 보니까, 이번 사태가 사실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지도 모르겠다는 우려가 든다.
최근 만난, 전자정부 사업 자문 역할을 오랜 동안 해 왔던 대학 교수의 얘기가 떠올랐다.
그는 자신이 위원으로 일하면서 느낀 전자정부 사업의 심각한 문제점 중 하나로, 대부분의 사업 성과 평가가 '시스템 구축을 끝냈느냐, 아니냐'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했다.
즉, '정보시스템 구축만 마치면 만사 OK'라는 식으로 정보화 사업을 진행하고 평가하는 '본말 전도'의 사례가 수두룩했다는 얘기였다.
뒤집어 보면, 구축된 시스템을 활용해 얼마나 정책적 목표를 달성했는가를 따지는 본연의 성과평가는 거의 찾아볼 수가 없었다는 문제제기였다.
결국 대부분의 국가 정보화 프로젝트가 '유명무실' 상태인지 아닌지 확인할 도리가 없다는 걱정이었다.
복지부 사건처럼 민자 방식으로 사업을 추진했다가 나중에 사업자체가 무용지물로 전락한 뒤 그 구축 비용을 놓고 SI업체와 발주처가 법적 분쟁을 벌이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나지 않고서는 대부분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사업자는 시스템을 구축해 주고 발주처는 그 대금을 지불하고 헤어지기 때문에, 나중에 문제될 일이 거의 없고, 발주처 역시 시스템 구축 그 자체로 사업 목표를 달성한 것으로 평가 받기 때문에, 더더욱 문제될 일이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떨어진 국가 정보화 수준을 단기간에 끌어 올리려다 보니까, 시스템 도입 그 자체에 치중한 '양적 중심'의 성급한 사업 전개가 결국 이제는 'UN 전자정부 지수 5위' 국가에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어디선가 무용지물로 전락해 있을 국가 정보화 과제들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을 초래한 것이다.
늦은 감이 있지만, 전자정부 주관부처인 행정자치부가 이제라도 수단(정보화)과 목표(정책효과)의 괴리를 좁히기 위해 새로운 질적 평가 시스템을 도입하기 위해 준비중에 있다는 것은 그나마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다.
행자부는 이 같은 정책 변화의 배경으로 '양적성장' 단계에 지나 '질적성장'으로 전환하는 중이라고 설명하곤 한다.
다만, 만일 처음부터 조직의 사명과 비전을 명확화한 뒤 그에 맞춰 정보화라는 수단을 도입하기 위한 계획을 적절하게 세웠다면 굳이 지금와서 질적성장을 운운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을 지울 수 없다.
최근 정부가 앞다퉈 조직의 목표 달성을 위해 정보 자원을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엔터프라이즈 아키텍처(EA)' 'IT 거버넌스' '정보자원관리(IRM)' 등의 기법 도입에 나서고 있는 데, 결국 그같은 노력을 처음부터 했더라면 양적성장과 질적성장을 처음부터 견인하지 않았을까.
김창곤 한국전산원장은 평소 미래 정보화 사회를 얘기하다 보면 "후진국일수록 설계 단계에 투자하는 것에 인색하다"는 얘기를 자주 한다. 설계를 제대로 하면 그만큼 기회비용을 줄일 수 있기 때문에, 설계 과정에 최대한 노력을 다해야 한다는 얘기다.
'제2의 복지부 사태'를 막기 위해서는 지금이라도 설계단계에 대한 투자를 강화해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자명한 이치다.
현장에서 정보화 사업을 진두지휘하는 정보화책임관 스스로가 해당 사업을 준비하면서 과연 조직의 사명 달성에 필요한 것인가, 또 그 구현 방법이 적절한가에 대한 물음을 끊임없이 스스로 던지고 그 답을 찾도록 하는 분위기와 환경을 서둘러 조성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관범기자 bumie@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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