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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노숙자의 희망이 되다


 

행복한 아이비(Ivy)가 집이라고 부르는 버스 안에는 화장실도 주방도 없다. 그러나 비디오 편집실은 있다.

캘리포니아 필모어(Fillmore)의 한 오렌지 과수원에 주차된 허름한 우드스톡(Woodstock) 스타일의 버스 안에서 살고 있는 올해 53세의 이 노숙자는 다용도 창고에서 발전기를 충전하고 근처 무선접속장치가 설치된 곳에서 와이파이(Wi-Fi) 서비스를 사용한다. 이 보잘 것 없는 숙소에서 그는 오렌지와 아보카도로 연명하며 24시간 인터넷 TV스튜디오를 운영하고, 대중 정치운동을 결집하며, 앨범을 녹음하고, 자서전을 쓴다.

그는 자신이 최초의 휴대용 컴퓨터 스캐너 중 하나를 만들었고 1990년대 초반에는 데이터 전송업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고 주장한다. "나는 늘 인터넷 기술의 선봉장이 되려고 노력해왔다."고 아이비가 말했다.

요리된 음식을 얻기 힘든 상황에도 가정용 도구들을 바로 쓸 수 있게 준비해놓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는 노숙자는 비단 아이비뿐만이 아니다.

집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 중에서도 주머니에 휴대폰을 가지고 다니거나 엉덩이에 노트북을 깔고 앉아있는 사람들이 많다. 수용시설이나 길거리에서 사는 사람들은 사회적 단절을 뛰어넘기가 힘든 반면, 디지털 세계에서의 단절은 길거리에서 사라진 듯 보인다.

전국노숙자연합의 이사인 마이클 스툽스(Michael Stoops)에 의하면, 거의 모든 노숙자들이 이메일 주소를 갖고 있다고 한다. "우편함보다 이메일 주소를 가진 사람들이 더 많다."고 스툽스는 말한다. "인터넷은 노숙자들에게 큰 도움이 되어왔다."

노숙자들에게 이메일 주소를 갖게 해주려는 움직임은 오랫동안 전국의 수용시설에서 최우선과제가 되어왔다. 그리고 미국 전역의 대다수 공공도서관에서 인터넷 접속이 가능해진 이 시대에, 인터넷은 현실 세계에서 일정한 주소가 없는 사람들에게 완벽한 연락수단이 되었다.

"기술 덕분에, 사람들은 가족들과 연락할 수 있게 되었다." 스툽스가 말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사회와 거리감을 느끼는 것과는 상관없이 어느 정도의 사회적 기반을 얻게 되었다는 점이다.

테리 헬레리치(Terri Hellerich)에게 있어 정보의 초고속망에 접속하는 것은 떠돌이 생활을 지탱해주는 삶의 보람이다. "제 정신을 차리고 살아가게 해주고 수입도 준다." 그녀의 말이다.

세크라멘토(Secramento) 서부지역에 살던 헬레리치는 집주인이 그녀를 내쫓고 부채 상환을 위해 그녀의 소지품들을 압류하면서 떠돌이 신세가 되었다. 그녀는 갈아입을 옷도 하나 없지만, 이메일 수신함을 확인하기 위한 용도의 낡은 휴대전화는 갖고 있다.

헬레리치는 벤치에서 잠을 자지만, 인터넷에 연결된 컴퓨터를 사용하기 위해 여자 노숙자수용시설에 자주 들른다. 보통 그 곳의 컴퓨터는 엄마를 따라 이 안전한 보금자리에 들어온 아이들 차지다. 그녀는 블로그를 통한 사업을 시작했다. 인터넷 자영업자로서, 그녀는 은행계좌를 유지하고 기존 고객과의 관계를 다지며, 새로운 사업 관계도 만들어갈 수 있었다. 이 사업으로 그녀가 벌어들이는 수입은 매달 100달러 정도밖에 안 되지만 삶을 다시 추스르기에는 충분하다.

이제 헬레리치는 북부 캘리포니아에 방을 하나 얻었으며, 낡은 컴퓨터 한 대를 사서 마이스페이스(MySpace)와 플리커(Flickr)로까지 온라인 영역을 넓혔다. 그러나 그녀는, 환경이 언제 그녀를 다시 도시의 황야로 내팽개칠지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서 살아간다.

많은 노숙자들이 인터넷의 막강한 속성에 대해 입을 모으는 반면, 전문가들은 인터넷이 애당초 그들을 거리로 내몬 개인적 삶의 측면들까지 제거할 수는 없음을 강조한다. "사람들은 정보는 막강하다고 믿고, 또 사실 그럴 때도 있긴 하지만, 인터넷은 여전히 복잡한 시스템이다." 스툽스의 말이다. 오로지 기술만으로 습관적인 노숙자 생활의 순환으로부터 누군가를 빼낼 수 있는 경우는 드물다.

그러나 인터넷이 노숙자들에게 해결책을 제시해주지는 못한다 해도, 적어도 탈출구는 제공해줄 수 있다. 스툽스는 현대 첨단기술이 노숙자들에게 귀중한 기회를 제공했던 사례들을 많이 알고 있다.

라스베가스의 부랑자 케빈 바비외(Kevin Barbieux)는 블로그를 운영하여 디지털 스타덤에 올랐다. 그는 2002년부터 '집 없는 사나이(The Homeless Guy)'라는 글을 올려왔다. "지금껏 살면서 처음 누려본 성공이다."라고 그는 말한다.

그의 사이트가 길거리에서의 삶을 기록한 유일한 사이트는 아니다. 완더링스크라이브(WanderingScribe)는 영국에 사는 한 노숙자 여인의 방랑을 잘 보여주고 있다.

피오리아(Peoria)에서는 윌리 요크(Willie York)가 거리의 삶에 대해 조언해주는 사이트를 운영한다. 그리고 그 외에도 뉴욕에서 캘리포니아까지, 지난 몇 년 동안 여러 지역에서 많은 온라인 사이트들이 주목받아왔다. 바비외의 사이트에는 한 달에 12,000명에서 15,000명의 방문객들이 찾아온다.

그는 자신만의 소소한 일상뿐 아니라 수용소와 도시 공원에서 지내는 동료 노숙자들의 삶 역시 세세히 묘사한 점을 인기 요인으로 꼽았다. 또한 노숙자들에 대한 대중의 인식과, 동료 노숙자들이 거칠 수밖에 없는 빈곤의 경로에 대해서도 견해를 밝혔다.

"내가 블로그에서 하는 일은, 나 한 사람뿐 아니라 모든 떠돌이들의 이야기를 말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의 말이다. "만약 나 한 사람의 이야기라면, 그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다. 나는 정말 세상을 바꾸고 싶다." 그것이 그 자신의 삶도 좀 바꿀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거주지가 없는 바비외는 공공도서관 컴퓨터 단말기에서 제한된 1시간 내에 블로깅을 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사이트를 통해 와이파이가 내장된 노트북 컴퓨터를 기증 받았지만 그것이 고장 난 후로는 대체할 컴퓨터가 없는 실정이다.

바비외는 라스베가스가 와이파이를 하기에 안성맞춤인 도시라고 말한다. 대부분의 호텔이나 카지노 밖에서 와이파이에 접속할 수 있는데, 노숙자들은 최고의 와이파이 서비스구역에 대한 정보를 서로 공유한다. 첨단기술 덕분에 그는 직접 구걸할 필요 없이 홈페이지의 '페이팔' 버튼을 통해 기부도 받을 수 있다.

1997년 처음으로 인터넷을 접했을 때, 그는 불편한 시선을 받지 않고도 사람들과 상호작용할 수 있으며 까다로운 사교 행위 없이도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세계를 목도했다.

"대인공포증 문제를 겪고 있는 나로서는, 공격받지 않고도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다는 점이 멋지게 느껴졌다. 그리고 사람들과 채팅하면서 나한테도 사람들이 좋아해주는 면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가 말했다.

2002년, 인터넷 토론방 친구들이 그에게 블로그를 시작해보라고 권했을 때 야후는 '새롭고 참신한' 사이트 10선에 그의 사이트를 선정했다. 그는 갑자기 온 세상이 자신을 주목하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그 시간에 다른 일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가 말했다. "하지만 다른 일 중에 내게 있어 그토록 절실한 것이 없다."

바비외처럼, 아이비도 인터넷의 힘을 빌려 세상을 바꾸길 원한다. 지난 3년간 400달러짜리 '어바웃어스버스(About Us Bus)'에서 아내와 함께 살면서, 아이비는 집 없는 사람들, 아니 그가 좋아하는 표현대로 집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들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캘리포니아 이곳저곳을 누비며 다녔다.

그는 머리를 다친 뒤 일정한 직업을 갖기가 불가능해졌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몇몇 첨단기술 관련 사업에 착수했다. 비록 그 일을 하면서 동전 한 푼 구경 못해봤고 동업자와도 연락이 끊겼지만, 그는 자신이 옴니팩스(Omnifax)의 전신이 된 회사의 설립을 도왔다고 주장한다. 현재 옴니팩스는 제록스(Xerox) 산하의 사업부인데, 이에 관한 논평을 부탁했으나 전화를 주지 않았다.

스트리밍 비디오(streaming video)가 호응을 얻기 시작하던 초기 시절, 그는 자신의 버스 안에서 24시간 인터넷TV쇼인 '어바웃 어스 나우(About Us Now)'를 방송했다. 아이비는 해변에서 음악 콘서트를 내보내고 유목민 같은 자신의 삶을 가볍게 소개했던 자신의 방송국이야말로 최초의 성공적인 인터넷 TV방송국이라고 믿는다. 이제 방송은 그만두었지만 그는 여전히 인터넷 비디오 작업을 한다. 올해는 도보 전국횡단을 시작한 노숙자 예술가 단체인 '각성한 하나 된 영혼들(United Souls of Awareness)'을 따라다니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아이비는 자신이 선택에 의해 떠돌이 생활을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아파트에서의 삶을 편안하게 느낀 적이 한 번도 없다는 것이다. "사실, 문 밖에 나갔는데 문들이 다 똑같이 생긴 걸 보면 참을 수 없는 기분이 들곤 했다."고 그는 말했다. 그러나 그는 온라인에서의 자신의 노력이, 1980년대 레이건 행정부 정책과 함께 급격히 그 숫자가 증가한 비자발적 노숙자들의 참상을 일깨워주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

온라인에서의 존재는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자신을 채용하기로 했던 고용주가 구글 검색을 통해 그녀의 홈페이지를 발견하게 되었을 때, 헬레리치는 떠돌이 시절에 쓴 대부분의 블로그 포스트들을 삭제했다(그 때문에 그녀는 그 직장을 놓쳤다). 사람들은 아이비에게 왜 직업도 없으면서 매일 기타만 치고 다니느냐고 묻는다. 그는 마냥 기타를 치고 있을 수만은 없지만 유랑 생활은 자신의 선택이라고 대답한다.

비록 현실 세계에서는 그늘 속에 숨어 있을지 몰라도, 스툽스는 노숙자들 중 다수가 가상의 햇빛 속으로 발을 떼고 있음을 목격한다. "부끄럽다는 이유로 노숙자라는 사실을 숨기려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스툽스의 말이다. "그러나 점점 더, 벽장 밖으로 나오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작가와 시인들이 보인다. 노숙자 작가는 이제 하나의 영역이 되었고 나는 그 사실이 놀랍다. 이는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수단이다."

[와이어드 = Jacob Og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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