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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호남 반도체, '800조 발표'보다 먼저였어야 할 것


기자수첩 [사진=아이뉴스24 DB]
기자수첩 [사진=아이뉴스24 DB]

[아이뉴스24 권서아 기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참여하는 800조원 규모 호남권 반도체 프로젝트는 지역균형발전의 새로운 실험이다. 인공지능(AI) 확산으로 반도체 수요가 빠르게 늘어나는 만큼 생산능력(CAPA)을 확대해야 한다는 점에도 이견은 크지 않다.

글로벌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2030년 글로벌 반도체 시장 규모가 1조5000억달러(약 2239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AI 반도체가 전체의 50%를 차지할 것이라는 관측도 내놨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대규모 투자를 이어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다만 반도체는 한 번의 호황만 보고 결정하는 산업이 아니다. 팹(공장) 하나를 짓는 데만 수년이 걸리고, 완공 이후에도 수십 년간 운영된다. 지금의 AI 슈퍼사이클이 2030년대까지 이어질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그래서 반도체 투자는 속도보다 준비가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이번 프로젝트는 아쉬움을 남긴다. 정부는 지난달 29일 투자 계획을 발표한 뒤 9일 만에 광주 군공항 부지를 확정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전력과 용수, 인력 문제가 먼저 제기됐다.

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팹이 함께 들어설 경우 전력 수요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왔고, 2022~2023년 광주·전남 가뭄을 겪었던 만큼 안정적인 용수 공급 체계부터 다시 점검해야 한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일부 전문가들은 전북이나 충청, 구미처럼 기존 반도체·소부장 생태계가 형성된 지역도 함께 검토했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정작 기업들이 가장 먼저 언급한 것도 정주여건이었다. 전영현 삼성전자 반도체(DS) 부문 부회장과 곽노정 SK하이닉스 사장은 정부 행사에서 교육과 주거 등 정주여건을 잇달아 강조했다.

현장에서 만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임직원들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평택과 용인 정도가 연구개발(R&D) 인력이 정착할 수 있는 사실상의 마지노선이라는 것이다. 석·박사급 인재는 공장보다 대학과 연구기관, 배우자의 일자리, 자녀 교육환경까지 함께 본다. 공장보다 사람이 먼저라는 얘기다.

기존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프로젝트도 출발선상에 있다. 삼성전자는 용인 국가산단 착공을 준비하고 있고, SK하이닉스도 내년 2월 용인 1기 팹의 첫 클린룸 가동을 앞두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또 다른 800조원 프로젝트를 발표했다면, 기업들이 가장 궁금해한 것은 투자 규모가 아니라 언제 전력이 들어오고, 용수가 확보되고, 사람이 정착할 수 있느냐였을 것이다.

서울권의 한 경제학과 교수는 이를 두고 "주객전도"라고 표현했다. 지역균형발전은 속도가 아니라 완성도로 평가받는다. 반도체는 더욱 그렇다. 800조원 프로젝트의 성공 여부도 결국 성급한 일정 발표가 아니라 전력과 용수, 인재와 협력사 생태계 같은 기본 조건을 얼마나 갖추느냐에 달려 있다.

/권서아 기자([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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