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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서는 정유업계...15년 전 '원적지 담합' 악몽 소환


정유 4사 담합 혐의로 재판행…가격 담합 규모 14조원대
'원적지 담합' 4년 공방 끝 정유사 승소…과징금 2862억원 환급
15년 시차 두고 닮은꼴 사건…이번엔 검찰 직접 수사·기소
검찰, 가격 모의 메신저 확보…일부 정유사 혐의 다툴 듯

[아이뉴스24 이한얼 기자] 국내 정유사들이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무더기 재판에 넘겨지면서 15년 전 업계를 뒤흔든 ‘원적지 담합사건’이 다시 소환되고 있다. 당시 정유사들은 4년에 걸친 법정공방 끝에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했다. 이번에도 일부 정유사가 혐의를 다투겠다는 입장이어서 장기 법정공방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제기된다.

사진은 서울 시내 한 주유소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나희석 부장검사)는 지난 6일 HD현대오일뱅크 법인과 가격결정부서 직원 2명을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검찰에 따르면 HD현대오일뱅크와 SK에너지는 2024년 7월부터 가격결정부서 간 입금가 정보를 교환하며 가격을 결정해 온 혐의를 받는다. 특히 미국과 이란 간 전쟁이 발발하자 가격 인상 시기와 규모를 협의하고 석유제품 가격을 일시에 인상한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검찰이 파악한 HD현대오일뱅크와 SK에너지의 담합 규모는 총 14조2000억원이다. GS칼텍스와 에쓰오일이 양사의 가격을 참고해 가격을 올린 효과까지 포함하면 약 26조원 규모의 경쟁 제한 효과가 발생한 것으로 검찰은 추산했다.

다만 SK에너지 법인과 담당 직원은 자진신고자 감면제도(리니언시)에 따라 가격 담합 혐의 기소 대상에서 제외됐다. GS칼텍스와 에쓰오일 역시 직접적인 가격 합의 증거가 확인되지 않아 가격 담합 혐의로는 기소되지 않았다. 가격 담합과 별개로 검찰은 유가 상승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 '전량구매계약'과 '사후정산제' 관행에 대해서도 수사를 벌였다. 이에 따라 정유 4사 모두 관련 혐의로 재판을 받게 됐다.

정유업계 안팎에서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2011년 공정거래위원회의 대규모 제재로 이어졌던 원적지 담합사건도 다시 거론되고 있다. 정유사 간 담합 의혹에 대한 대규모 제재라는 점뿐 아니라 참여 업체의 리니언시가 사건의 향방을 가르는 변수로 작용했다는 점에서 두 사건이 닮았기 때문이다.

원적지 담합사건의 발단은 지난 201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4월 국민권익위원회가 개최한 토론회에서 한국주유소협회 측이 폴 사인제(정유사 상표표시제도)가 폐지됐음에도 주유소들이 거래 정유사를 자유롭게 변경하기 어렵다며 정유사 간 주유소 나눠먹기 의혹을 제기했다.

이후 조사에 착수한 공정위는 정유 4사가 지난 2000년부터 10년 동안 다른 회사의 기존 계약 주유소인 이른바 '원적 주유소'를 서로 선점하거나 유치하지 않기로 합의했다고 판단했고 정유 4사(SK이노베이션, 현대오일뱅크, 에쓰오일, GS칼텍스)에 총 4319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정유사들이 일종의 시장 분할을 통해 주유소 유치 경쟁을 제한했다는 것이다. 당시 과징금 규모는 액화석유가스(LPG) 가격 담합 사건(약 6700억 원)에 이어 두 번째로 컸다.

공정거래위원회 청사 전경 [사진=연합뉴스]

이 과정에서 GS칼텍스는 담합 사실을 자진 신고해 리니언시를 적용받았다. GS칼텍스가 과징금을 면제받으면서 나머지 정유사들은 공정위 처분에 불복해 법정공방에 들어갔다. 이번 사건에서 SK에너지가 리니언시를 통해 가격 담합 혐의 기소 대상에서 제외된 것과 유사한 구도다.

그러나 원적지 담합사건은 공정위의 패소로 끝났다. SK이노베이션과 현대오일뱅크(현 HD현대오일뱅크), 에쓰오일은 각각 4년에 걸친 법정공방 끝에 2015년 대법원에서 과징금 취소 판결을 확정받았다. 이에 따라 공정위는 3사에 과징금 원금과 환급가산금을 더해 총 2862억원을 돌려줬다.

당시 재판에서는 정유사들이 주유소 유치 경쟁을 자제한 정황만으로 담합에 대한 명시적 합의가 있었다고 인정할 수 있는지가 쟁점이 됐다. 공정위가 리니언시 신고자의 진술 외에 담합 합의를 뒷받침할 직접적인 증거를 충분히 제시하지 못하면서 결국 정유사 측의 승소로 사건이 마무리됐다.

두 사건은 15년의 시차를 두고 벌어진 사건으로 닮은 듯 하지만 결정적인 차이가 존재한다. 당시 사건이 공정위의 과징금 부과에 대한 정유사들의 행정소송이었다면 이번 사건은 검찰이 직접 수사를 거쳐 정유사 법인과 관련 임직원을 형사재판에 넘긴 사안이라는 점이다.

특히 이번 사건의 경우 '원적지 담합 사건'과 다르게 가격결정부서 관계자들이 가격 인상과 관련해 대화를 나눈 메신저 자료 등을 확보했다는 점도 큰 차이점이다. 검찰이 공개한 대화방에는 "오늘 가격 100원 더 올린다. 우리 올해 2조벌 듯", "역시 전쟁으로 먹고사는 회사. 트럼프 만세" 등의 대화가 담겼다.

기소 대상에 오른 일부 정유사는 양형을 낮추는 데 집중하기보다 혐의 자체의 성립 여부를 다투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15년 전 원적지 담합사건과 마찬가지로 이번 사건 역시 대법원까지 이어지는 장기 법정공방으로 번질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한얼 기자(eol@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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